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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Dec 10. 2015

《당신에게 몽골을》::여덟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여덟 번째 기록 - 자유를 잊다


  어치르 씨 커플과 함께 볼강(칭군에의 고향)으로 놀러갔다. 많은 사람들이 군락을 지어서 사는 것이 근처에 물가가 있는 것 같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밖에는 우리 말고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시내에 학교가 두 군데 있는데 언덕 너머에 사는 애들은 겨울에 수업 듣는 것이 고역이라고 했다. 수업이 오전 일곱 시부터니까 새벽 네 시에 일어나 2시간을 걸어 학교에 온다고 했다. 나는 그걸 들으면서 언덕을 올라갔는데, 배우려는 애들이 많으면 선생님이 출장 수업을 가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이런 때 온라인 강의를 하는 기업이 인터넷 개통에 힘써서 인터넷 강의를 해주면 안 되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2시간씩 걸어서 공부하러 온 아이들을 생각해보았다. 왕복 4시간을 감수하고도 배우러 오는 아이들. 배운다는 일이 얼마나 간절할지, 얼마나 즐거울지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작은 칭군에(칭군에의 조카)의 학용품이 죄다 한국 거였는데, 아직까지 이런 시골은 발달이 덜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누리는 당연한 것들을 감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 전기, 인터넷 등 당연한 것 하나 없고 모두 감사해야 할 것들이다. 정말이지 나는 복(福)에 겨웠던 것 같다.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몽골에서는 집에 손님이 왔는데 비가 오면 길조(吉兆)라 여긴다고 한다. 가뭄이라 하더니 그간 내리지 않았던 비가 원한을 푸는 듯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또 다른 식구가 와있었다. ‘그러니까 저 할머니가 순산을 하셔서 이 많은 가족을……. 그럼 할아버지는 어디 계시지?’ 주뼛주뼛 거리며 있다가 어치르 씨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니까 어치르 씨. 나담을 맞아 마치 명절처럼 가족들이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오시는 거죠?」

  「그쵸, 명절이죠. 시골이 먼 사람들이 많으니까 축제 기간을 길게 잡고 시골로 가서 먹고 즐기고 해요. 그래서 우리도 시골 왔잖아요.」

  헉. 칭군에의 시골에 온지 이틀째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어치르와 칭군에가 날 할머니 집에 데려온 것은 마치 설날 때 나의 외국인 친구 크리스(호주)를 데려와 인사시킨 거나 마찬가지란 것을. 황송하고 또 황송하다. 심지어 다시 의문이 든다. 이건 호의인가, 동정인가? 아니면 무엇을 바라는 다른 마음인가. 이렇게 잘 먹여주고, 잘 해주고도 더 못 해줘서 미안하다 말하는 어치르 씨다.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더 신기한 건 여자 친구 칭군에의 태도다. 그니까 남자친구가 생면부지의 외국인을 데려와 자기 할머니네 시골 가는데 같이 데려가자고 했을 테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게다가 배려도 엄청 해주고, 한국어로 통역해주느라 나랑 자주 대화하는데 말이다. 스무 살의 칭군에가 엄청 어른스러워 보였다.

  시시탐탐 식탁을 노리는 사마(칭군에 조카, 18개월)가 너무 귀엽다. 사마는 나보다 잘 먹는다. 밥도 먹고, 강정도 먹고 다 먹어 치운다. 우리나라는 6~9개월 차, 12~18개월 차 등의 경계가 있어서 이유식을 할 땐지 아닌지 구별하곤 하는데 이 나라는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그냥 하는 거다. 하고 싶으면 하게 하고, 먹고 싶으면 먹어보게 한다. 못 먹을 것이라면 자기가 뱉을 것이라 믿기 때문일까. 꼭꼭 씹어 먹으라는 당부 이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근데 굳이 젖병에 분유는 왜 타주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밥을 이리도 잘 먹는데 말이다. 게다가 신기한 것은 사마가 바닥에 과일의 씨를 던지든, 먹던 걸 던지든, 뭘 흘리든 할머니는 큰 소리를 내시지 않는다. 그저 덤덤히 치우시면서 타이르신다. 

  그리고 은누(칭군에 동생)와 사마의 첫째 오빠의 나이도 밝혀졌다. 내가 한국에 있는 영어 학원에서 가르쳤던 중학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신 집의 가장으로 힘들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다 한다. 진짜 듬직하고 어른스럽다. 

  아직도 나를 보고 도망가는 작은 칭군에(5살)와 어떻게 놀아볼까 고민하다 ‘종이 접기’를 생각해냈다. 비행기를 접어 시합도 벌였는데 새침데기 같이 굴던 작은 칭군에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것 같았다. ‘맛있다, 고맙다’ 등 말로 표현하지 못해 답답한 게 많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다른 걸 생각해냈다. 그리고 다른 걸 발견할 수 있다. 언어 너머에 있는 그들의 뉘앙스, 분위기.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다. 대체 이런 경험을 어디 가서 해보나. 진짜 진심으로.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이다. 

  2층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은 성난 것처럼 거무죽죽했다. 생각이 구름 지나가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왔다. 그러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고미숙 선생님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났다.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자신이 그걸 모를 뿐만이 아니라 자기도 두려움을 주는 대상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이 잘 이해가 안 됐는데, 다른 의미에서 조금 감이 오는 것 같다. 몽골에 온지 겨우 며칠 만에 나는 자유를 잊었다.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도 없고, 그렇게 외롭지도 않다. 왜냐면 나는 당장 나의 생존에만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이방인인 나는 이곳저곳 관찰하기 바쁘고 여기저기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무엇이 그리울 새가 없고, 외로울 새가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방랑이, 지금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좋다. 그 모든 걸 날려주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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