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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Dec 09. 2015

《당신에게 몽골을》::일곱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일곱 번째 기록 - 몽골어 바보


  드디어 보헬(칭군에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약 7시간 동안 먹는 것 또는 자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내가 소같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우리가 탄 차는 정신없이 풀을 뜯고 있던 소, 양, 말들을 지나쳤는데, 그들이 나와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치르 씨 집에 가서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께서도 우리에게 따뜻한 우유차를 내주셨다. 어릉(몽골어로 우유 기름을 이름)까지 동동 띄워주셨는데 한 모금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장시간 차를 타고 와서 속이 메슥거렸는데 기름이 떠다니는 우유를 마시기가 쉽지 않았다. 이렇게 우유차를 내주는 것이 몽골의 전통이라고 어치르 씨는 말해줬다. 

  집은 아주 아늑했다. 거실 중앙에는 큰 기둥이 있었는데 그 중간에 난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1970년도에 학창 시절을 보냈던 학생들이라면 익숙할 통(군고구마 장수의 손수레 보다는 작은 크기)이었는데, 그마저도 나는 한국 영화에서 봤던 것을 몽골 가정집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텔레비전에는 나담의 씨름 경기가 한창 방송되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몽골 홈스테이가 아니겠는가! 진짜 제대로다. 오랜만에 만난 칭군에와 에메(몽골어로 할머니를 이름)는 정신없이 수다를 떨었다. 어치르 씨는 어색해하는 나를 위해 한국어로 말을 걸어주었다.

   「많이 피곤하죠?」

   「아뇨, 저는 계속 잠만 잤는걸요. 6시간이나 꼬박 운전만 한 칭군에가 더 힘들죠. 운전을 바꿔가면서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에요. 제가 미안하죠. 제가 얼마 전에 눈 수술을 해서 운전을 하면 위험할 것 같아서요.」

   「아, 맞다. 한국에서 수술하셨댔죠. 그래서 우리가 인천공항에서 만났고요, 하하. 고맙습니다.」

   「뭘요, 할머니도 좋아하시네요.」

  한참 손녀와 이야기 나누던 에메(할머니)는 어치르 씨를 보며 몇 마디 하셨다. 그러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을 건네는데, 몽골의 인사말만 아는 나로서는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었고 그저 웃기만 했다.

   「하니 씨, 할머니께서 하니 보고 진짜 대단하대요. 그리고 운이 좋다고 하네요. 몽골에 혼자서 여행 왔다고 말씀드렸거든요.」

   「할머니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이건 한국에서 가져온 전통과자인데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어치르 씨가 통역자로 한몫했다. 할머니께서는 옛날에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셨다고 했다. 영어는 잘 모르시고 러시아어를 조금 하시는데 그마저도 내가 러시아어를 모르니 참 답답했다. 이렇게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말은 안 통했지만 계속해서 먹을 것을 권하시는 할머니가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우리가 묵을 방은 2층 침대 방이었다. 이상한 것은 마당도 으리으리하고 방도 널찍널찍한데 배수시설이 전혀 없었다. 부엌에는 싱크대 자체도 없을뿐더러 양동이에 떠놓은 물을 사용했다. 게다가 손 씻는 세면대는 애들 갖고 노는 장난감처럼 생겨서는 수도꼭지가 귀엽게 달려있었다. 미리 길러둔 물을 한 바가지 퍼서 장난감 통(!) 위쪽으로 넣으면, 검지와 중지 손가락 정도 씻을 수 있는 물줄기가 나온다. 한 방울의 물도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요리조리 재빠르게 씻어야 한다. 아니, 대체 이 근검절약은 뭔가. 수녀원보다 더 수녀원 같다. 머리는 감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1층으로 내려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칭군에 조카들 옆에 멀찍이 앉았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남자아이, 그 옆에 분홍색 원피스를 차려입은 한, 두 살배기 여자 아기, 그리고 양 갈래 머리를 한 꼬마 아이. 좀 더 친해지고 싶은데 그들은 영어를 할 줄 몰랐고, 나는 몽골어 바보였다. 온 전신만신에 몽골어 천지였다. 텔레비전 안에서도 텔레비전 밖에서도. 나도 곧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것이 바로 생존 공부법일까! 알아야 산다. 나만 모르니까 진짜, 정말로, 답답하다. 3박 4일 머무르는 동안 몽골어 공부에 박차를 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귀를 쫑긋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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