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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Jan 12. 2016

《당신에게 몽골을》::열두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열두 번째 기록 - 한 여름 밤의 꿈

  

  구름을 이렇게 가까이 지켜본 적이 있을까. 저 멀리서 흘러와서 저 너머로 사라진다. 바람은 어디서부터 불어오는 걸까. 그리운 내 고향에서부터 일까?   

  우리는 출발했을 때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도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갈 준비를 했다. 울란바토르까지 차를 타고 약 7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서둘러 떠나야 한다. 행여나 가족들이 깰까 조심조심 움직였다. 새벽에 나가는 우리보다 일찍 일어나신 할머니는 차를 끓이고 계셨다. 할머니는 요깃거리 이것저것을 자꾸 챙겨주셨다. 할머니의 마음은 여느 나라 할 것 없이 다 같은가 보다.

  비는 하염없이 내렸고 우리는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버르따, 할머니에게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이른 새벽이라 후리셰에게는 인사하지 못했다. 마음이 시리다.  

  차를 타고 조금 나가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날이 갰다. 몽골의 구름은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좀 전까지 천둥번개가 쳤는데 지금은 해가 얼굴을 들이민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광에 우리는 잠시 내렸다. 도로에는 우리 차와 우리밖에 없었다. 앞, 뒤로 끝없는 도로가 놓여있고 우리 넷만 덩그러니 있었다. 내가 이래서 몽골에 이끌렸나 보다. 내가 서있는 이 곳 말고는 전부 2차원으로 느껴진다. 그냥 아무것도 없다. 내가 가는 길이 곧 '나'이며, 이 길은 나밖에 갈 수 없는 길이다. 그래서 황홀하다. 젊은 날의 내 마음이 꼭 이 길 한복판에 서있는 느낌과 같았다. 감격스럽다.

  우리는 다시 힘차게 달렸다. 끝은 보이지 않았지만 끝을 생각하지 않았다. 길 가다 구름 결이 이쁘면 잠깐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고, 목이 마르면 잠깐 쉬었다. 가는 길에 노래도 부르고 어깨도 들썩였다. 어쩜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젊은 날을 지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에 관광명소가 있어서 몇 군데 들렀다. 외우기 어려운 몽골어 탓에 지역 이름도 관광명소도 기억 나지 않지만 유명한 불상(佛像) 근처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난기 많은 우리지만 이럴 때는 점잖은 어른이 된다. 짧은 시간 안에 기도하는 거라고는 나의 행복과 안위, 내가 아는 사람들의 행복과 평안, 지구의 안위였다. 이 짧은 생에 바라는 것이라곤 고작 그런 것들이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센터 대문을 여는 열쇠가 없는 터라 인기척을 내야 했다. 수녀님을 깨울까 염려되었다. 오래간만에 돌아온 나를 격하게 반겨주시는 수녀님들. 뭔가 내 집에 온 것 같이 느껴진다. 며칠 머물렀다고 그새 정이 들었담.  

  짐을 풀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가장 먼저 은율이에게 연락했다. 얘를 알고 나서 이렇게까지 연락이 안 된 적이 없었는데, 시골은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아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인터넷 전화를 하는데 뭔가 느낌이 요상하다. 전화로도 느낄 수 있는 이 애틋함. 그는 어떨까. 나만 느끼는 무엇일까. 그는 나를 그리워했을까.

  사실은 이런 관계가 처음이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다. 친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이성 친구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사실은 우리는 거의 접촉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에게 접속했을 뿐이었다. 아귀가 딱 들어맞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했다. 때로는 연락을 하고 때로는 연락을 받는다. 친구라고 이야기하기에도 그렇다고 연인이라고 이야기하기에도 애매한 지점이다. 이런 것을 무경계라고 해야 할까. 이것이 어떤 경계보다 더 나은 것일까? 이것이 『무경계』 라는 책에서 지향하는 바였을까?

  나도 지금이 딱 좋긴 하다. 이 아이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알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두렵다. 그가 나와는 다른 것을 이야기할까 염려된다. 우리는 비슷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이기에 나는 그가 두렵다.

  시끌벅적하던 시골을 떠나 빈 방에 홀로 누워있으니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꿈을 꾼 것만 같다. 다시 그곳에 가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마는 잘 자고 있을까, 후리셰가 울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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