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열한 번째 기록 - 몽골 전통 놀이, 샤갈
가족들과 ‘샤갈’이라는 몽골 전통 놀이를 했다. 우리나라 윷놀이에 패턴 맞추기를 더한 거라고 볼 수 있을까. 죽은 동물의 복숭아뼈를 손질한 것을 샤갈이라고 하는데 이 네 개의 샤갈로 같은 패턴 맞추기에 승패가 달려있다. 여기는 워낙 가축이 많으니 그 뼈로도 노나보다 싶었다. 힘 조절이 관건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 몰라서 뒤쳐졌지만, 나중에는 내가 야호(몽골어로 위대한, 1등이라는 뜻)가 되었다. 역시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것이다(몽골어로 이를 얘기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리고 눈치게임도 했다. 몽골어는 몰랐지만 승부가 걸린 게임을 하면서 나의 상황 판단은 더욱더 명확해졌다.
어치르 씨는 진짜 대단한 것 같다. 한국어로 나를 웃기기까지 한다. 내가 어떤 언어를 배울 때 목표로 하는 지점인데,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가 멋지다.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면서 느끼는 건데 영어만큼 배우기 쉬운 언어가 없는 것 같다. 영어를 배우기가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쉬운 것 같다. 규칙도 단순하고 발음하기도 쉬운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쉬운 영어를 '어떻게 하면 어렵게 배울까'를 연구하는 것 같다. 교실 안에서 책으로 배웠던 영어가 실제 대화할 때 전부 다 필요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몽골어는 내 인생 최고로 배우기 어려운 언어다. 몽골어를 발음하다 보면 쓰지 않았던 턱관절을 느끼게 될 정도다.
또한 사마(18개월, 칭군에의 조카)를 보며 깨닫는다. 가장 효과가 큰 교육법은 보고 따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사마의 두 눈이 매섭다. 할머니가 하시는 걸 봤다가 그대로 따라 했다.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의 영향이 굉장히 큰 것 같다.
시골집에 머물면서 내 생각이 머물렀던 대상을 적어봤다.
-우유 기름 : 매 끼니 때마다 우유 차에 어릉(우유 기름)을 넣어 먹음. 몽골의 겨울은 무지하게 춥기 때문에 체내 지방을 많이 필요로 해서 그렇다고 함.
-장작 : 차고에 쪼개 놓은 장작들이 쌓여 있음. 도시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 여름에도 불을 뗀다고 한다.
-카페트 : 몽골의 겨울이 혹독하긴 혹독한가 보다. 온 바닥에 카페트가 깔려있다.
-분리수거 : 여기는 분리수거의 개념이 없다. 심지어 센터에서 했던 분리수거는 젖은 것 혹은 젖지 않은 것이 기준이었다.
-언어(혹은 배움) : 진정한 배움은 언제나 목마름에서 시작된다. 생존 몽골어, 곧 말이 트일 것 같다.
한 달 같았던 3박 4일의 여정도 오늘로 마지막 날이다. 오후 10시 50분,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서 들은 후리셰는 나를 밀쳤다. 후리셰는 샐죽샐쭉 눈을 흘기더니 제 엄마에게 안겨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가족들은 눈시울이 빨개진 나를 위로해줬다. 후리셰는 엄마가 준 컵라면에 금세 정신이 팔렸지만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작은 칭군에가 시큰둥하게 와선 내 손에 귀걸이 두 쪽을 얹어주었다. 흰색의 몽골 전통 귀걸이였는데 딱 봐도 자기가 아끼는 거라 꽁꽁 숨겨놓은 듯했다. 5살 꼬마 여자아이에게는 거의 전부일 텐데, 선뜻 내주는 모습에 또 한 번 울컥했다. 진짜 며칠 봤다고 이렇게 정들었는가. 역시 시간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제 2의 가족이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어떤 대가도 없이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심에 감사드렸다. 어치르 씨에게 도움을 받아서 하고 싶었던 말을 몽골어로 번역하여 전달할 수 있었다. 종이 한 구석에 전자메일 주소도 적어서 교환했지만 그래도 석연찮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다.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하늘도 내 마음을 아는 걸까? 나도 저렇게 울고 싶은 마음이다. 이별은 언제나 찾아오지만 언제나 아린다. 빗방울처럼 내 가슴을 흠뻑 적셔버렸다.
독자님, 야생화예요!
한번 더 스케쥴을 조정하게 되어서 알려드립니다!
화요일, 금요일 오후 7시에 만나요!!!
고맙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