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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Jan 15. 2016

《당신에게 몽골을》::열세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열세 번째 기록 - 쿵쿵쿵

  

  수녀님과 함께 새벽 미사를 보러 갔다. 이곳이 그리웠다. 신부님의 푸근한 목소리로 전해 듣는 복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지난 여행이 고된 일정이었을까. 몸이 축축 쳐진다. 감기 기운도 있는 것 같아서 아침밥을 먹고 다시 누웠다. 괜히 마음이 약해져서 금방 눈물이 차올랐다. 남한테 의지하지 않는 성격인데 이럴 땐 정말로 서럽다. 누군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침대에 누워 있으니 나는 이념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무기력하고 힘이 쭉쭉 빠진다. 여행을 하든, 공부를 하든 기초 체력이 굳건해야 오랜 호흡으로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 기초 체력을 튼튼하게 다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꽤 많지만 이를테면 이런 여유를 가진 모습이 좋다. 여행을 왔지만 단 며칠을 다닐지언정 일상성을 구축하려 노력한다는 점. 아침에 새벽기도를 나가는 일도 매우 보람차다. 아주 영광이다. 그리고 꾸준히 일기를 쓰고 스트레칭과 운동을 하는 내가 대견하다. 그런 여유와 사소한 일상의 중요함을 아는 내가 기특하다. 

  낮잠을 자고 나니 몸 상태가 한결 나아졌다. 오후에 수녀님과 함께 시장에 가기로 했던 터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수녀님께서는 어떤 남자와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시장은 사람이 많고 소매치기도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평소에도 소매치기에 대해서 주의를 많이 주셨는데 수녀님께서는 바깥세상에 대한 벽이 높다고 느껴졌다. 한국에서 몽골로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소매치기를 당하셔서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들었던 몽골의 생활이랑 내가 겪고 있는 몽골의 생활이랑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 거릴 수밖에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데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쾌쾌한 냄새와 휘날리는 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연료 냄새 같기도 하고 연탄 냄새 같기도 했는데 매캐하고 눈이 시렸다. 그리고 오가는 버스에 적힌 한국의 기업 D사 로고가 눈에 띄었다. 우리가 탈 버스가 와서 올라탔는데 앞문, 뒷문 할 것 없이 다 올라탔다. 안내양은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타는데도 귀신같이 알고 돈을 걷으러 왔다. 버스 안도 그렇고 타있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딱 80년대 후반 같았다. 영화 세트장에 온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기사님의 운전도 한몫했다. 이건 뭐 깜빡임 없이 끼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난데없이 차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부산의 버스 기사님들도 한 난폭 운전하는데 여기는 사실상 신호등이 필요 없는 것 같다. 지키지도 않을 것이라면 뭣 하러 만든담. 예전에 어치르 씨도 이 상황에 대해 의아해하면서 양보해야 된다는 의식 자체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울란바토르 기차역 바로 옆에 큰 재래시장이 있었다. 러시아, 중국에서 나는 물건을 싣고 오기 때문에 기차역 부근에 큰 시장이 발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역 부근의 교통이 매우 혼잡했다. 시장 안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다. 수녀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시장 구경을 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야채나 러시아 초콜릿이 눈길을 끌었다. 비정상적으로 큰 토마토도 눈에 띄었다. 저기에 무슨 짓을 한 걸까. 대륙은 토마토도 대륙 크기인가. 가격은 확실히 집 근처 시장보다 저렴했다.

  맛난 저녁을 먹고 다시 누웠다. 어김없이 그와 연락을 했다. 이때쯤이면 일을 마치고 밥을 먹었을 시간이겠지. 

   「그런데 하니야. 하루하루 어때?」

   「오~ 질문 좋은데! 음……. 동화책 넘기는 것 같아.」

   「응?」 

   「같은 날이 없고 매일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리고 여기서 떠오르는 다른 생각들 모두가 신기하고 놀라워. 한국에서의 삶이 척박했던 것도 아닌데 완벽한 계획 속에 있는 느낌이야. 뭔가 나만을 위한 완벽한 시나리오 같다고나 할까?」

   「아…….」

   「그리고 적어도 취직이다, 토익이다 하는 고민을 하지 않는 지금이 너무 좋아. 생(生)과 사(死)를 넘나드는 이곳에서 몸으로 겪어내는 게 진짜 내 삶을 사는 느낌이야. 진짜 고민을 하고, 진짜 살아있는 것 같달까?」

   「그래서 언제 올 거냐고. 나 안 보고 싶어?」 

   「……. 가야지, 곧. 가야지…….」

   「아니다. 너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원(願)대로 다하고 와라.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다 와.」

  그는 내게 보고 싶다고 조금 더 자주 이야기한다. 물론 나 또한 그리 응답한다. 이런 대화가 오가게 되기까지는 3일이라는 공백기가 있었다.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이후 처음으로 존재했던 그 공백기. 그 이후로 그는 내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부쩍 자주 한다. 다만 톡으로 보낸 ‘글자’에 불과한데 내 심장이 욱신거린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눈이 더 크게 떠졌다.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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