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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Jan 26. 2016

《당신에게 몽골을》::열여섯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열여섯 번째 기록 - 일상에서 ㄹ을 뺄 수만 있다면

 

  오늘도 수녀님들과 새벽 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단지 안에서 한 부부가 갓 짜 온 우유와 타락(몽골식 요거트)을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 재첩국 파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수녀님은 싱싱한 우유를 맛보겠다며 기뻐하시면서 각각 500투그릭*(몽골 화폐 단위) 정도 구매하셨다. 우리는 아침상으로 빵, 야채, 우유를 만들었다. 갓 짜 온 우유기 때문에 한 번 데워서 먹어야 한다고 했다. 타락은 이미 발효된 요거트기 때문에 그냥 먹어도 된다고 했다. 

  블루베리 쨈을 곁들인 타락을 한 입 떠먹자마자 내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이런 맛이! 지금까지 내가 알던 요거트는 요거트가 아니었다. 다 가공식품이고 설탕 범벅이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싱싱한 것을 먹으니 딴 거는 다 가짜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 몸이 정화(淨化)되는 것 같았다. 

  기분 좋게 아침을 먹고 아노를 만나러 나갔다. 저번에 돌아보지 못한 박물관, 공원을 가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몽골 사람은 참 친절한 것 같다. 물론 나도 감사의 의미로 식사 대접을 하지만 그들이 해주는 것에 비하면 아주 약소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우리가 간 곳은「Intellectual museum」이라는 지식 관련 박물관이었는데 다양한 퍼즐이 있었고 몽골 전통 놀이가 즐비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에 내가 시골에서 해봤던 샤갈에 관련된 이야기였는데 몽골 사람은 전쟁 중에 이 놀이를 즐겼다고 했다. 아주 급박한 상황이었을 텐데 동물의 뼈를 다듬었을 몽골인을 생각해보았다. 그 와중에 놀이를 생각해 내다니, 역시 프로는 여유를 아는 자인 걸까. 어쩌면 인간의 본능은 놀이에 대한 열망이오, 여유를 갈망하는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퍼즐, 몽골식 체스를 풀어봤는데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푸는 것도 힘든데 이걸 만든 사람은 얼마나 똑똑한 것인가. 

  윗 층으로 올라가니 작은 규모의 게르가 공개되어 있었다. 이것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게르도 2시간이면 조립, 해체가 가능하다고 했다. 내부 구조가 아주 정교하고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몽골에 오면 맨날 게르에서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박물관에 와서야 안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겪고 있는 것들이 몰랐던 것들은 맞는데 뭔가 아직 ‘나’이다. 한국에서의 ‘나’가 친구만 바꿔 사귀고 잠을 다른 곳에서 자고 다른 걸 먹을 뿐이지 그냥 나다. 또 습관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를 넘지 못하고 있다. 답답하고 무언가에 갇혀있는 느낌이 든다. 이런 거 말고 좀 다른 ‘나’를 만나고 싶다. 번지점프에라도 도전해야 하나? 고비사막이라도 가야 할까? 



*1000투그릭 = 한화 600원 (2016년 1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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