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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Jan 22. 2016

《당신에게 몽골을》::열다섯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열다섯 번째 기록 - 목마른 계절


  채워도, 채워도 목이 마르다. 몽골에 오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목이 마르다. 나는 무엇에 그리 목이 마른 걸까.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시골에 갔다가 돌아온 기숙사생 나라를 만나게 되었다. 나라는 나보다 5살 어린 20살 대학생이다. 한국어를 약 2년 정도 배웠다는데 정말 말을 잘했다. 어치르 교수님께도 들었지만 몽골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코리언 드림'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몽골에서는 일반 회사원의 월급이 약 35만 원 정도 되는 반면, 한국에 들어와 공장에서 일을 하면 6~8배 정도 높은 임금을 받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행기를 타면 3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으며, 날씨도 좋아서 인기가 많다고 했다. 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나라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라의 꿈을 엿듣게 되었다.

   「나라, 나라 꿈은 뭐예요?」

   「저는 한국에서 돈을 벌고 싶어요. 사실 저희 집에 가족이 많아요. 고비 사막에서도 한참 밑에 있는데 가족들이 아주 작은 방에서 같이 살거든요. 큰 오빠, 작은 오빠, 작은 언니……. 더 많은데 그 집은 너무 좁아요. 돈 벌어서 지금 가족이 살고 있는 집보다 더 좋은 곳으로 옮겨주고 싶어요.」   

   「아…….」   

   「수녀님께서는 한국 가서 공부를 더 하라고 하지만……. 먼저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그럼 나라도 공부가 더 하고 싶은 거예요?」   

   「네…….」   

  만감이 교차했다. 나라의 어여쁜 마음이 내게도 전해졌다. 게다가 가족은 울란바토르가 아닌 시골 변두리에 사는데 거주 지역이 열악하다고 한다. 대학교를 다니는 사람도 자기밖에 없다고 하는데 막내인 나라의 어깨 위에 있는 짐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아마도 수녀님께서도 나와 같은 마음에서 공부를 더 해보라고 권하신 것 같았다. 어리고 똑똑한 나라가 조금 더 큰 세계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당장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가슴 아프다. 그저 기도해주는 것 밖에는……. 원래라면 “욕심 부려! 네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라고 했을 텐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효도도 부모님이 계실 때 하는 것이고 아마 그걸 하지 못하면 나라의 가슴속에 큰 응어리가 지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묵묵히 그녀의 선택을 지지했다.

  갑자기 걸려온 토야(후리셰 어머니)의 전화로 우리의 대화는 일단락되었다.

   「하니, 하니! @#$^&#@#」

   「헬로? 토야?」

   「예스, 마이 보이 에스크 웬 윌 유 고 백 투 코리아. 히 위시 유 컴백 투 아월 하우스.」

   「오, 마이……. 후리셰……. 다라 울지 바이 시떼(몽골어로 다시 만나요를 뜻함)」

  형제가 많은 터라 다들 자기가 전화를 받겠다고 난리를 부린 모양이다. 어수선한 가운데 내 눈시울은 또 붉어졌다. 5살 후리셰는 내가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는지 계속해서 물어본다고 했다. 자기 나라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해왔다. 영어도 못하면서 엄마한테 떼를 썼을 후리셰가 훤히 보였다. 아, 내가 돈이 조금만 넉넉하게 있다면 나라의 꿈도 이뤄주고, 당장 후리셰도 보러 갈 텐데. 답답하다.

  늘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다니다가 불이 켜진 방이 있으니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내 여동생 마냥 챙겨주고 보듬어 주게 된다. 사실은 내가 그리워했던 온기다. 사람의 온기.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 나라가 좋아하는 빅뱅 노래를 들으며 새콤한 우유 과자를 노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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