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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Jan 29. 2016

《당신에게 몽골을》::열일곱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열일곱 번째 기록 - 사랑, 사랑, 사랑


  새벽 2시, 그와 통화를 끝내고 자리에 누웠다. 왼쪽 가슴 부근에서 몇 번이나 뭐가 내려앉는다. 몸 전체로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심장이 몇 번 더 욱신거렸다. 그 모든 것들, 침대에 누워선, ‘우리, 사랑이구나’를 마주해버렸다. 정말 꿈에도 못 꿨다. 주변 친구들이 의심을 할 때도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했었고, 심지어 우리 안에서 의심될 만한 애매한 순간조차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사랑이라니?

  어쩐다. 이를 어쩌지……. 대책 없이 요동친다. 겨우 떠나왔더니 이제 안 거라곤 내가 그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노라고? 말도 안 된다. 진짜. 그럼 그는? 대체 뭐 어쩌자는 거지? 그렇게 얘기해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냥 친구?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자기가 던진 말 때문에 내 마음이 삽시간에 흐려진 진흙탕처럼 아주 난린데, 속이 또 울렁거리는데, 들쭉날쭉한데. 그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마음이면 안 된다. 차라리 나 혼자 저를 좋아하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내가 그를 만나려면 아주 큰 걸 버려야 한다. 뻔한 여자가 되고 싶지 않다.

   「되도록이면 니한테 연락 안 하고 싶은데, 참으려고 하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에이, 연락하면 되지, 왜~」

   「여행하고 있는데 괜히 연락하고 그러면 방해될 거 아는데 도저히 못 참겠다.」

   「…….」

  그래,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된다. 나만 티 내지 않으면 된다. 그가 안 된다면 내가 연락을 끊으면 된다. 더 깊어지기 전에 자제해야지. 이제는 더 이상 실패하는 게 싫다. 이별이 싫고 상처받고 싶지 않다. 애초에 안 될 일이라면 쳐다도 보기 싫다.

  몽골로 봉사하러 온 한국 대학생들이 센터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한국 친구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나도 원래 함께 봉사하기로 했지만 업무적으로 차질이 생겨 빠지게 되었다. 약 1주일 동안 몽골 현지 아이들에게 일일교사가 되어 다양한 놀이를 가르쳐 주고, 양치하는 법을 알려준다고 한다. 센터에 있었던 5,6명의 몽골 친구들도 통역을 겸하면서 도우미가 된다. 나랑 같은 층에서 지내는 터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친구가 아니라 나보다 5살~7살이나 어린 고등학생(?)인데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저녁에 모여 그들의 언어로 카드놀이를 하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뛰어난 관찰력 덕에 애들을 웃기기까지 했다. 내가 이런 에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게 책 100만 부를 파는 것 보다 기쁜 일이다.

  원래 봉사를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붕 떠버렸다. 이렇게 된 거 가까운 테를지 국립공원 투어를 가볼까 한다. 아직은 자금이 넉넉한 편이기도 하고 그냥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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