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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Feb 02. 2016

《당신에게 몽골을》 ::열여덟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열여덟 번째 기록 - 테를지 국립공원


  무작정 연락을 했고 무작정 떠났다. 테를지 국립공원 투어를 가려고 여행사 몇 군데에 전화했었는데 때마침 여행사 직원 부부가 테를지로 휴가를 계획하고 있어서 합류할 수 있었다. 이놈의 인생은 말만 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는 것 같다. 2일 동안 지낼 준비를 끝내고 크나큰 배낭을 짊어졌다.

  테를지(Terelj) 국립공원은 울란바토르에서 약 70km 떨어져 있으며 경치가 매우 좋다고 한다. 편도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터라 몽골 여행자라면 한 번쯤 들리는 코스라고 한다.

  가나 아저씨(여행사 직원)와 마야 아줌마(사모님)와 아저씨의 지프차를 타고 출발했다. 갈 거라고 마음을 먹으니까 다른 절차들은 속전속결이었다. 아저씨랑 아줌마는 6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벌써 키워놓고 여름철이면 이렇게 휴가를 떠난다고 했다. 여름철은 성수기라 여행업으로 바쁘지만, 겨울에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각종 반찬 절임을 만들어 파는 일로 생활을 유지하신다고 한다. 강원도에서 학교를 다닐 때 영하 10도만 돼도 벌벌 떨었는데 영하 30도는 얼마나 추울까. 상상도 안 된다.

  장을 다 보고 테를지로 출발했다. 지난번 여행과는 달리 이번 여행길은 대평원 보다 산이 더 많이 보였다. 지난 여행 때도 그랬지만 정말 난감한 것은 용변을 볼 때 별다른 장소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냥 옆에 지나다니는 소나 말처럼 쪼그려 앉아 해결을 해야 하는데 그 기분이 이상하다. 소와 말과 나의 경계가 없어지는 기분이랄까. 묘하게 짜릿한 기분이 든다.

  밖에 나와 바람을 쐬니 산뜻해졌다. 가는 길에 관광명소인 거북바위에 들려 사진도 찍었다. 거대한 바위가 겹겹이 쌓인 모습이 흡사 거북이와 닮아서 그리 불린다고 한다. 옆에서는 말 타기 체험을 하고 있고 너머로는 게르 캠프가 보였다. 우리는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 자리를 만들고 점심을 만들어 먹었다.

   「쪼르르르- 쪼르르르-」

  한적한 강가에 텐트를 치고 자리에 퍼질러 앉았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햇살이 강물 위로 부서져 일렁이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양 옆으로는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고 거기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가나 아저씨는 낚시를 하러 갔고 마야 아줌마는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몽골 최신 가요라고 하는데 내가 보고 있는 풍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우리나라 전통 민요와 비슷한 가락에 덩실덩실 어깨춤을 곁들일 수 있는 느긋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언젠가부터 진리를 찾아 헤맸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알고 싶었고 정말 치열하게 파고들었다. 온갖 지식을 섭렵했고 그렇게 하면 조금 더 나은 삶을 보상받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삶은 내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고 시간이 지나서 깨달은 것은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는 거였다. 나는 그 이후로 나를 짓누르던 집착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진짜 삶이 시작되었다.

  뛰어다니는 말을 보고 흐르는 강물 소리를 음미하다 보니 점점 내가 사라져 감을 느꼈다. 내 몸을 느낄 수 없었고 마치 내가 강물인 양 흘러흘러 흩어졌다.

   「쪼르르르- 쪼르르르-」

  눈을 떠보니 가나 아저씨가 맛있는 저녁을 만들고 있었다. 꿈결 같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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