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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Feb 12. 2016

《당신에게 몽골을》 ::스무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스무 번째 기록 - 쥬게르(괜차나요)


  지는 해를 바라보노라면

  그 많았던 낮의 욕망들도

  지는 해를 바라보노라면

  다 사라지고 없다

  그 많았던 낮의 꿈들도

  지는 해를 바라보노라면

  다 사라지고 없다

  매일매일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내 마음을 씻어 내린다


  테를지 강가에 앉아 해가 저물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시가 절로 나왔다. 살면서 이렇게나 걱정, 고민거리가 없었던 때는 처음인 것 같다. 게다가 목표 지향적이었던 내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니 이상하다. 드문드문 그런 생각은 든다. 한국엔 언제쯤 돌아가지. 꼭 돌아가야만 할까. 생각만 해도 벌써 몽골이 그리워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명한 사원(temple)을 들렀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엄청난 규모에 압도당했다. 사원 전체가 거의 산 하나였다. 본당으로 올라가는 길이 등산코스나 다름없었다. 아줌마는 다리가 아프셔서 차에 계시고 아저씨랑 길을 나섰다. 걸어 올라가는 길이 도를 닦는 일이었다. 내 뒤로 펼쳐진 장관에 탄성이 나왔다. 정말 몽골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장대하고 웅장한 것이 많다.

  본당에 올라가 기도를 올리고 사진을 찍었다. 정말이지 이런 곳에서 명상을 하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올라온 길과는 다른 길로 내려갔다. 걸어내려 가다가 어떤 노부부를 만났다. 두 분은 큰 냉동차 같은 파란색 트럭을 뒤로 두고 선탠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고 계셨다. 파란색 트럭은 그들의 집으로 보였는데 정면으로는 엄청난 장관을 두고 독서하는 모습이 얼마나 로맨틱하던지 동경하고 말았다. 얼마나 행복할까. 어디든지 마음에 드는 곳에 머물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유목민의 삶.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니, 정말로 내가 꿈에 그리는 삶이다. 나는 백발의 노부부에게 오래도록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시 차를 타고 울란바토르로 향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몽골 노래는 민들레 홀씨가 봄바람에 나부끼어 땅에 닿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지난밤에 별을 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모든 두려움을 뿌리쳤던 것이 생각나기도 했다.

  나는 내가 밤하늘의 별만을 기대하는 줄 알았다. 물론, 그것도 맞지만 뭔가 심심하다. 뭔가에 도전하고 싶다. 몽골에 아는 사람도 없고 인사말도 몰랐는데 벌써 적응해버렸다. 내가 머물고 있는 센터가 너무 아늑해서 금방 적응한 것일까? 뭔가 조금 더 어려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 해가 지는 걸 바라볼 땐 분명 아무 욕망도 없었는데 금방 또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도화 언니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도 올라서 고생을 좀 해봐야 만족을 할 텐가. 나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무엇에 대한 목마름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센터에 도착해 짐을 푸는데 밤바가 기뻐 맞아줬다. 센터에서 머물며 봉사활동을 하는 몽골 친구인데, 한국어 공부할 때 좀 도와줘서 그런지 금방 친해졌다. 며칠 만에 돌아온 나를 정말 반겨주었다. 자기 친구들과 허르헉(몽골식 양고기 요리)을 먹고는 나를 생각해서 조금 싸왔다고 건네주는데 그 마음이 너무도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가나다 연습을 하면서, 나를 보면 사랑한다, 결혼하자고 말하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것도 고백이랍시고 설레는 나도 못 말린다. 나는 왜 당장이라도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는 건지. 그렇게 외로운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어젯밤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 밤바가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이 떠올랐고, 덕분에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다.

   「쥬게르, 쥬게르.」

   「괜차나요, 괜차나요.」

  그래, 괜찮다. 다 괜찮다. 무엇이든 틀린 것 없고 다른 것만 있을 뿐이다. 쥬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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