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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Feb 16. 2016

《당신에게 몽골을》::스물한 번째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스물한 번째 기록 - 몽골에서의 생


  손톱이 부쩍 자랐다. 몽골에 오기 하루 전날 바짝 깎아온 손톱이었는데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지 몰랐다.

  어젯밤에 귀국행 티켓을 예매했다. 더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명확했다. 몽골 오기 전, 나의 소울메이트 윤정이와 약속했던 여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티켓을 얻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 지인에게 도움을 구했다. 정말 돌아가기 싫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우선되는 것을 선택했다. 열흘 정도의 기간이 남았다. 몽골에서 지낸 날 보다 지낼 날이 더 적게 남았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일어나 기도를 드리고 아침을 먹으러 올라갔다. 수녀님들께서 언제 기억하시고는 나의 생일상을 만들고 계셨다. 식탁은 라울 수녀님께서 직접 만드신 케이크, 오색찬란한 과일 등으로 풍성하게 채워졌다. 케이크를 한입 먹었는데 목이 메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떻게 이 감사함을 다 갚을 수 있을까. 정말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마음에 큰 용기를 갖고 엄마에게 문자 한 통을 썼다. ‘그동안 연락 못해서 미안해.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은 꼭 전해야 될 것 같아서요. 고마워요.’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생일 축하 연락을 해왔다. 말을 꺼내면 그리워질까 연락도 안 하고 있었는데 괜스레 미안해졌다. 짧은 기간에 친해진 몽골 친구 몇몇도 연락을 해왔다. 낮에는 바기(비행기 옆 좌석으로 만난 인연)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하고, 저녁에는 기숙사에 지내는 친구들과 밥을 먹기로 했다.      

   바기를 만나기 전에 시내에 있는 여행사 몇 군데를 들렸다. 고비사막 투어에 대한 열망을 떨치지 못했고 이왕 그런 거 그냥 알아보기만 하자며 길을 나섰다. 사실 기간도 넉넉지 않고 단체 투어가 내 마음처럼 되지 않을 것이기에 상황이 된다면 가는 거고 아니면 말자는 식으로 마음먹었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다닌 보람이 있었을까. 6박 7일의 일정으로 고비사막을 가는 투어에 자리가 남아있었다. 조금 부담이 되는 점은 내가 돌아온 다음날이 출국 날이란 것. 만약 돌발 상황이 생겨서 제 날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난 비행기를 못 타게 된다. 그냥 알아보기만 하러 왔는데 마음은 이미 고비사막에 가있었다. 어차피 내 계좌에 돈도 없을 건데 뽑아라도 보자며 근처 은행에 갔다. 허나 이게 웬일.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는가, 하늘도 내 간절함을 알았는지 내 계좌에 잔액이 남아있었다. 한국 가면 당장 쓸 돈이 전혀 없음에도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꽤나 비싼 투어비인 줄 알지만 지금, 이때,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 있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질러버렸다.

  선금을 딱 내고 돌아오는데 나 태어나 제일 잘 내린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도 고비사막에서 죽겠다는 생각으로 당차게 결정했고, 가벼운 마음으로 바기와 만나기로 했던 곳으로 향했다.

  고맙게도 바기는 몽골에 있는 유명한 한식당을 찾았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국땅에서 김치찌개를 맛볼 수 있었다. 바기(30살, 한국에서 약 10년 동안 생산직 노동자로 근무)가 바라보는 한국, 한국 남자, 한국 기업 문화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마저도 한 사람에 의해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겠지만, 내가 전혀 몰랐던 부분이 많았고 생각해볼 문제가 많았다. 나 또한 내가 느끼고 바라본 몽골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몽골 남자들은 열에 넷이 카사노바 같은 스타일이다. 눈만 맞았다 하면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뭔가 잘 해보려는 마음을 내비친다. 그런데 나는 그게 역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 본능에 충실한 것이고 그것을 드러냈을 뿐, 한국 남자랑 별반 다를 바 없이 느껴졌었다. 오히려 둘러대지 않고 들이대는 모습이 더 당차게 느껴졌다. 그리고 일 하나는 야무딱지게 잘하는 것 같다. 남자아이들인데 뒷정리도 잘하고 일을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독립적이고 혼자서도 일을 척척 잘해냈다. 

  한국어로 대화를 해서 다소 어색한 점이 있었지만 바기는 한국어를 훌륭하게 구사했고 우리는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로 꿈같은 하루를 보냈다. 이제 밤바는 눈만 맞으면 '예뻐요', '하니'를 외친다. 나는 싫어하는 척 하지만 내심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그대의 손길이 싫지 않다. 사실은 따뜻한 온기가 참 좋다. 더 머무르고 싶다. 자꾸 스치고 싶다. 

  밤늦도록 엄마의 답장을 기다렸는데 결국은 오지 않았다. 이제 고비사막으로 떠나면 연락하기도 힘들 텐데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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