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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Feb 22. 2016

《당신에게 몽골을》

::스물세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스물세 번째 기록 - 끝없는 지평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상상도 안 돼!’

  세수를 하면서 계속 떠오른 생각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남쪽으로 향한 다음에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고비까지 가는 데만 3일이 걸린다. 가는 길에 명소 몇 군데를 들리고 고비에 가는 여정.

  짐을 챙기고 투어 서비스를 신청한 게스트하우스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게스트하우스에는 서양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다들 각자 투어 준비에 바빴다. 조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솟아나는 동포애에 서스럼 없이 말을 걸었다. 나보다 2살 많은 언니는 세계일주를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동해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로 가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 뒤 중국으로 가 다시 몽골로 오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자 혼자서, 그것도 세계일주를! 내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건데 직접 들으니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걷는 중에 만난 아름다운 바이칼 호수, 중국에 대해서 듣는데 심장이 쿵쾅댔다. 다른 언니 두 분은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몽골 여행을 왔고, 내 앞에 앉은 남자분도 몽골에 흠뻑 빠져 여행하고 있었다. 진짜 한국인은 대단하다. 정말로. 어딜 가도 있는 한국인 덕분에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다.

  나를 호명하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다. 내심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만나서 문화 교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한국에서 딸 2명과 함께 온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여정에 함께하는 운전기사 니마 아저씨, 영어를 할 줄 아는 대기 언니와 인사를 나누었다. 투어비를 넉넉하게 지불한 탓인지 여행에 필요한 준비를 다 해주셨다. 푸르공이라는 러시아산 봉고차(?)는 생전 처음 봤는데, 밖에서 보는 것보다 좌석이 여유로웠다. 6명의 배낭을 실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아이들의 어머니와 나는 서로 불편한 역방향 좌석에 앉겠다고 옥신각신하다가 바꿔 가면 앉기로 했다. 근처 마트에서 5L짜리 물 5통, 과자 등을 샀다. 어머니는 투어에 대해 들은 무시무시한 얘기를 전해주며 내게도 한국산 컵라면을 사라고 말씀해주셨다. 씻을 곳도 없고 먹는 것도 불확실하다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에이, 뭐 어때, 다 사람 사는 곳인데.  

  차에 기름을 채우고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1시간가량 달렸을까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나타났다. 이렇게 광활한 대지에 우리만이 달리고 있었다. 이 지구상에 남은 사람은 우리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뿐이고 어딘가를 향해 달려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도 뒤도 없는 이곳이 너무 좋다. 나는 이곳의 하늘과 땅, 그리고 그를 가로지르는 끝없는 지평선을 사랑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왔다. 울렁이고 일렁거렸다. 

  가는 길에 많은 양, 염소 떼를 만나게 되어 막간 포토타임 가졌다. 아이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뛰기 시작했다. 뛰고 또 뛰는데 막힐 게 없었고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그 느낌이 좋아서 계속 뛰었다. 그리고 아무 데나 용변을 봤다. 어렸을 적 이후로는 아무 데나 용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새로운 장르의 자유를 맛본 것 같았다. 내가 입은 파란색 땡땡이 치마는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눈을 살포시 감고 팔을 휘젓는데 바람이 나를 감쌌다. 그를 따라 나도 두 팔로 나를 안으며 다독였다. ‘괜찮아, 괜찮아 하니야.’

  몽골은 늘 이런 식이다. 겨우 하늘, 땅 그리고 끝없는 지평선이 나를 무장 해제시켜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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