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스물네 번째 기록 - 유목민
나는 몽골 땅 한가운데에 주저앉아있다. 몽골 유목민 가족은 염소젖 짜는 준비에 한창이었고, 은선 언니(어머니), 다희, 다연(자매, 초등학교 고학년)은 타는 듯한 더위 때문에 게르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염소는 울고 바람은 불고 나는 있었다. 글쓰기도 멈췄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만끽하는 중이다. 투어를 오기로 한 것은 내 인생에서 제일 잘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날, 나의 목마름이 그친 땅이다. 더 이상의 욕망도 없고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유목민 네는 3개의 게르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게르는 손님을 접대하고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두 번째 게르는 가족이 지내는 곳이고, 세 번째 게르는 손님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다. 끝도 없는 길을 달려오다가 게르 하나가 나타나자 이곳에 멈췄다. 원래 이곳에서 자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넓은 초원에서 어떻게 찾아온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게르는 여기밖에 없었다. 몽골인의 풍습 중, 손님이 찾아오면 환대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할머니, 엄마, 이모(?)로 보이는 분들이 염소젖을 짜는데 나도 해보고 싶다며 몸짓을 했다. 염소젖은 생각보다 너무 부들부들해서 자주 미끄러졌다. 염소가 아플 것 같아서 살살 짰는데, 할머니께 한소리 듣고는 쭉쭉 짜냈다. 한 이모가 아까 짜 놓은 우유를 데워서 한 컵 주셨는데 염소 털로 보이는 것이 둥둥 떠다녀서 마시기가 쉽지 않았다.
이 가족의 막내로 보이는 소년은 다리가 짧은 탓에 형의 도움을 받아 말에 올라탔고 그 길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이는 9살 소년으로 양과 염소를 몰러 간 것이었는데, 나는 이 어린 소년의 쓰임새에 놀랐고, 부모의 교육관에 한 번 더 놀랬다. 바기(비행기 옆좌석으로 만난 인연)도 13살 때 아버지가 대형 트럭 운전을 시켜서 하게 됐는데, 다리가 닿지 않으니까 나무 작대기를 대고 발이 닿게끔 해서 운전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치맛바람은 봤어도 이 같은 광경은 본 적이 없었는데 내 스타일은 몽골 유목민과 딱 들어맞았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인간을 길러낼 수 있는 교육을 전해주고 싶다. 어쩌면 나 또한 엄마가 말한 삶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산에 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대초원에 떡하니 솟아있는 돌산은 이 근처의 명소라고 했다. 보기에도 위태로운 산을 오르기 위해 주의를 집중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운명을 달리하는 건데, 그래서 좋았다. 밤바든 우진이든 사랑을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 아니라 그저 내게 집중할 수 있고 멋진 경치를 느낄 수 있음이 상쾌하고 좋았다.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얻은 듯하다. 잠깐이나마 둘로의 회귀에 대한 열망을 잊을 수 있어서 가벼워졌다.
나는 유목민의 삶이 정말 좋다. 하늘이 내려준 자연이란 선물을 받곤 그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모습도 좋고, 그 삶을 담대히 마주하고 있는 그네들의 모습도 멋지다. 어느 정도 가지고는 욕심 부리지 않는 것, 검소한 삶 그 자체가 참 좋다.
숙소로 들어와 대기가 만들어준 밥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지 침대도 마련되어 있었다. 게르의 외부는 양털로 덮여있었고 실내의 온도를 적정하게 유지해주었다. 우리는 희미한 전등불 아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꽃을 피웠다. 샤워를 할 수 있는 여건도, 편한 잠자리도 아니었지만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