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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Nov 05. 2015

《당신에게 몽골을》 ::세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세 번째 기록 - 오랜만의 비행(飛行)


  어제 왔던 탑승 수속 창구에 다시 섰다. 나의 온 신경은 승무원 미간에 꽂혀있다. 조금만 낯빛이 어두워지면 나도 같이 어두워졌다.

   「네, 오후 2시 10분까지 탑승 마치셔야 하고요…….」

   「아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이 탑승권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먹었던가! 드디어 한 고비를 넘겼음에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세상에. 비행기를 탔다. 오랜만의 비행이라 신발을 벗고 타야 하냐며 주책을 떨었다. 비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그토록 몽골-몽골- 노래를 불렀는데 진짜 가게 되다니 믿기지 않는다. 비행기가 엔진을 가열시키기 위해 활주로를 거닐었다. 움직이는 듯, 안 움직이는 듯 조금씩 움직였다. 그 속도에 맞춰 이 땅에서 겪었던 것들, 여러 사람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떠나기에는 내가 아직 너무 무거운 것 같은데, 비행기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시작을 꿈꾸며 눈을 질끈 감았다.

  지상에서 멀어질수록 내 마음이 이상해졌다. 아랫배 쪽이 막 꿈틀거리는 느낌이 든다. 나비가 몸부림을 치는 느낌 비슷하다. 머리끝에서부터 등까지 오한이 들었다.

  귀신에 홀린 것 마냥 몽골에 오려고 애썼었다. 25살, 직장에 취업하지 않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돈을 모으면서 몇 개월 동안 몽골만 보고 달려왔는데 막상 비행기를 타고 가려니까 막막해졌다. 계속해서 눌러왔던 불안감이 다시금 튀어나와서 나를 괴롭혔다. 조금만 방심해도 제멋대로 튀어나오는 불안한 마음을 꾹꾹 누르고 심호흡을 했다. 이제 더 이상 여한 없다. 오늘 죽더라도 몽골 땅을 밟고 죽는 거니까 더 바랄 게 없다.  

  ‘내 옆자리에는 누가 탈까?’, ‘멋진 남자가 탔으면 좋겠다. 음양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는데 우연히도 내 옆 좌석엔 남자가 앉았다.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아니요, 몽골 사람이에요.」

   「……. 한국어 되게 잘하시네요!」

   「한국에서 오래 일했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바기는 한국인처럼 생긴 몽골사람이었다. 한국에 일하러 온지 10년 정도 됐다고 한다. 이번 주가 몽골 전통 축제 ‘나담’이 열리는 때라 휴가를 받아서 집에 간다고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몽골에 대해 알아나갔다. 그러면서 ‘안녕’, ‘고맙다’, ‘미안하다’ 등 기초적인 몽골어를 받아 적었다. 바기 역시 나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니 위험하다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몽골 사람을 2명 봤는데 이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3시간의 비행이 아주 짧게 느껴질 만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바기는 회사 사장님으로부터 알음알음 배운 한국어라 반말이 난무했지만, 한국어로 이야기하니까 뭔가 모르게 뿌듯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수녀님께서는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지인을 통해 무작정 연락을 드렸었다. ‘소전여행’으로 몽골에 가는 것이었지만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봉사를 한다고 자청했었다.

  승용차를 타고 가는데 지나쳐 가는 풍경이 다소 낯설었다. 내 생각에 '몽골'하면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모습이었는데, 울란바토르(수도)는 내 생각보다 많은 건물들이 우뚝 솟아있었다. 한국에서 지겹도록 봐 온 빌딩 숲인데 몽골에서도 마주하게 되다니. 생각도 못했다. 그럼에도 건물 뒤로 간간이 보이는 산의 능선이 참 아름다웠다.

  창밖으로 보이는 모습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도시를 들려 보아도 같은 모습인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호주는 호주만의 여유로움, 독일은 독일 고유의 낭만, 홍콩은 아주 분주한 도시의 모습이 느껴진다. 이래서 여행을 떠나나 보다. 생전 처음 듣는 언어, 새로운 사람들, 낯선 풍경에 놀라며 내가 알고 있었던 것과의 같음과 다름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수녀님께서는 센터에 도착해 당분간 머물 곳을 보여주셨다. 책상과 책장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침대에는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뭔가 모르게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너무나 풍족한 곳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손만 뻗으면 인터넷이 잘 되는 컴퓨터가 있었고 누르기만 하면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것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감사하게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여느 하나 당연한 것이 없다. 따뜻한 물, 내 한 몸 뉘일 공간, 글을 쓸 수 있는 밝은 빛 그 모두에 감사를 드린다. 떠나오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감정도 말이다. 생각도 못했었는데, 나는 그에게 의지를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데 뭔가 모르게 허전하다. 원래라면 통화를 하고 잠에 들어야 하는데 뭔가 서운하다. 새로운 방에서 멀뚱멀뚱 눈을 굴리며 누워있었다. 일단 오긴 왔는데 언어가 시급하다. 뭘 좀 알아들어야 여행이든, 말을 타든 할 것이다.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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