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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Oct 31. 2015

《당신에게 몽골을》::두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두 번째 기록 - 산 넘어 산


   「쏴아아아- 쏴아아아-」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부산에서 인천 국제공항으로 가는 직행버스에 부랴부랴 올라탔는데 이렇게 거센 비가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이 속도라면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시나리오라 너무 당황스럽다. 만약에 비행기를 놓친다면……. 아찔하다.

  내 옆을 쌩쌩 지나치는 풍경들과 함께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정말 몽골에 가고 싶어서 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혼자가 될 게 두렵다. 엄마도 떠나고, 아빠도 떠나면 나는 이 지구별에 혼자 있게 될 거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나 혼자 지내는 연습을 하곤 한다. 아마 그곳은 내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곳으로 아주 낯설고 낯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한 아무도 없는 그곳에 나를 던진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낯설다.

  인천 국제공항이 보였다. 수속 창구의 위치는 미리 확인했다. 양 손을 불끈 쥐며 열의를 다졌다.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짐을 챙겨서 냅다 뛰었다. 다행히도 수속 창구는 막 준비 중에 있었다. 나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내 몸만 한 배낭을 내려놓았다. 그런 내가 산만했던지 줄에 서있던 한 남자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았다.  

   「몽골에 혼자 가세요?」

   「네…….」

   「아는 사람 있어요?」

   「아니요, 그냥 혼자 배낭여행 해요.」

  자기는 몽골의 어느 대학 한국어과 교수인데 어떻게 한국을 왔는지 이러쿵 저러쿵 묻지도 않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혼자 몽골에 가면 위험하다면서 자기 몽골 연락처를 가르쳐 주며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다. 몽골 사람인데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도 수상하고 혼자 가는 나를 걱정하는 태세가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은근한 미소를 날리며 도와주셔서 감사하단 말을 잊지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대체 뭔데 이렇게 들이대나’, ‘혹시 혼자 여행하는 나를 어떻게 해볼 심산은 아닐까’ 등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무튼 옆 좌석에 앉기로 말을 맞추곤 수속하러 갔다. 내 차례가 되어 부푼 마음을 안고 여권을 건넸다. 그런데 승무원은 한참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다가 내 비자가 만료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해온 여행이라 비자도 미리 받아놨었다. 정말로 꿈에도 못 꿨다. 그 거센 비를 뚫고 제 시간에 도착했는데 비자가 만료되다니? 정말 시험도 이런 시험이 없다. 앞에 있는 안내원을 붙잡고 물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학창시절에도 이런 실수는 안 했는데 정말 화가 난다. 어떻게 ‘enter before’를 내 마음대로 해석해서 ‘되겠지’하는 안일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너무나 원망스러웠지만 비행기 표를 바꾸고 비자를 다시 받으러 가야한다. 옆 좌석으로 앉기로 한 어치르 씨는 떠나고 없었고, 나는 덩그러니 남겨졌다.

  나는 그나마 남은 이성을 붙잡고 머리를 굴렸다. 땀에 흠뻑 젖으며 뛰어다닌 결과, 오늘 비자를 받을 수 있었고 티켓은 다음날로 미뤘다. 이제야 한숨을 돌리며 긴장의 끈을 놓았다. 피로가 몰려온다. 나, 진짜 몽골에 갈 수 있을까? 여행을 떠나자마자 사건 투성이라니! 집에 가만히 있었더라면 없었을 서사다. 그러나 나는 길을 떠났고 이 모든 것이 전개됐다.

  나는 유독 내가 잘못했을 때만 날이 서서 바보라는 둥, 나가 죽어야 한다는 둥 자책하며 작은 실수도 봐내지 못한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실수를 했더라면 “누구나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야”라고 다독였을 텐데 나는 나에게만 엄격하게 군다.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일까? 생각해보면 일은 처리됐고 별일 아니었는데 나는 나를 미워하고 자책하느라 바빴다. 결국 다독이는 것도 같은 나인데 말이다. 가끔씩 보면 나의 적(敵)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는 대체 몇 명의 타자(他者)가 살고 있는 것일까. 

  출국이 미뤄지는 바람에 5년이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간간이 연락만 해왔던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현령이는 지치고 풀 죽어있는 내게 따뜻한 밥을 사주고 자신의 보금자리까지 흔쾌히 내주었다. 정말로 아직 살만 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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