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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Nov 18. 2015

《당신에게 몽골을》::다섯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다섯 번째 기록 - 몽골의 일반 가정 체험


  이제 겨우 반나절이 지나갔을 뿐인데 몽골에 온지 아주 오래된 느낌이다. 매 분 매 초 겪어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느껴서 그런지 1분 전이 낯설고 그 다음 일을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어치르 씨도 그렇다. 인천공항에서 처음 알게 된 그와의 만남도 정말 우연이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쪽지에 연락처를 적어줬는데 나는 감사해 하면서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경계했다. 그렇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는데 내가 몽골에 온 다음날 온라인상으로 메시지를 보내와서 숙소는 잡았냐고 물어보며, 괜찮으면 만나서 도와주겠다고 자기 여자 친구랑 같이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것도 오늘! 

  ‘아, 괜히 만난다 했나…….’, ‘혹시 나를 어떻게 하면 어떡하지?’, ‘만일 그가 여자 친구로 안심시키고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이라면?’ 막상 만난다고 하긴 했지만 얼굴을 씻는 내내 안 좋은 시나리오가 계속 떠올랐다. 화장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온갖 추측을 하기 바빴다. 그가 꽤 미심쩍었지만 그럼에도 나의 호기심 때문에 만나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반가워요, 하니 씨 어서 타요.」

   「네, 근데 혹시 어디 가는 건가요?」

   「하하, 좋은 곳 갈 거예요.」

  ‘좋은 곳이라니, 아, 정녕 이게 나의 마지막인가!’ 이게 마지막이라 해도 나는 몽골에 왔으니 여한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차에 탔는데 여자 친구라는 사람도 옆자리에 타 있었다. 나는 행여나 일이 날까 봐 가는 길을 외우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자칫 일이 잘못되면 차에서 뛰어내릴 요량으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우리 사실 지금, 부모님 계신 곳 갈 거예요.」

   「헉, 네? 제가 가도 되는 건가요? 여자친구분이랑 같이 가는 거면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제 친구인데 한국에서 왔다 그러면 좋아하실 거예요.」

  당황스러웠다. 인천공항에서 잠시 만난 사이인데, 여자 친구랑 부모님 댁에 인사드리러 가는 날에 생판 모르는 외국인을 데리고 가? 이거는 완벽하게 이상한 스토리였다. 들을수록 의심만 커졌고 나는 정차하기만을 기다렸다.

  도착한 그곳은 지금까지 내가 본 몽골의 모습 중 가장 열악한 지역이었다. 부모님 집이라고 가리킨 곳은 집은 커녕 녹슨 철문으로 둘러 쌓인 고물 더미가 있었고 나의 의심은 극도로 심해져 정점을 찍었다. ‘이 놈,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저 문을 열면, 어- 어- 필시, 도망쳐야지!’하고 경계 태세를 갖는 순간! ‘응?’ 진짜 집이 나왔다. 극에 달한 긴장감이 맥없이 풀렸다. 집 보다는 판자촌에 가까운 형태였고 마당에는 몽골 전통 집 게르가 자리하고 있었다. 게르를 지나 좌측에 있는 집 혹은 판자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천장은 아주 낮았고 가구들이 오밀조밀 위치해있었다. 뭔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었는데 내가 3,4살 때 모습이 담긴 사진의 집 배경과 비슷했다. 그러나 텔레비전 만큼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최신식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앉았는데 맛난 호쇼루(몽골 전통 음식, 만두와 비슷함), 각종 과일과 채소 등 맛난 음식을 차려주셨다. 한상 푸짐하게 차려놓고 온가족이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한껏 의심하던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어치르 씨의 아버지께서 따라주신 아이락(몽골 전통 술, 마유주馬乳酒)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입에 흘려 넣는 순간 찌릿찌릿- 부들부들- 온몸이 짜릿해지는 아이락은 내 혀를 마비시켰다. 정말 중독성이 강한 것 같다. 아이락을 처음 마시는 사람은 폐가 아프다고 하는데 진짜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요상한 술이다. 아버지와 어치르 씨가 몇 마디 나누더니 어치르 씨가 내게 말했다.

   「아버지께 하니 씨가 몽골에 혼자 여행 왔다고 말하니까 엄청 용감하다고 하네요.」

   「아, 고맙습니다. 저보다 더 대단한 사람도 많은걸요.」

   「몽골의 오래된 속담 중에 앉아있는 천재보다 움직이는 바보가 낫다는 말이 있는데 하니는 정말 대단해요.」

  나도 어치르 씨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몸으로 익히는 것은 언제나, 항상, 정답인 것 같다. 조금은 불편하고 어려움이 따르지만 극복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이 좋은 것 같다.   

  어치르 씨 형네 부부와 조카들이 들어와서 인사를 나눴다. 식탁에 먹을거리를 놓아두고 바깥에 있는 게르로 다시 들어갔다. 그 옆집에는 누나네 부부와 조카들이 산다고 하는데 이렇게 벽 하나 없이 밀접하게 사는 모습도 많이 낯설었다. 

  아직 몽골에 온 지 이틀 밖에 안 지났다. 몽골의 일반 가정에 방문해 그들이 사는 모습 그대로를 목격하다니 이런 운(運)도 이런 운이 없다. 게다가 이렇게 적을 거리가 많다니 놀랄 노자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의 내 삶은 ‘쓸 만한 삶’이었던 것 같다. 대충 연필로 끄적거릴 수 있는 하루들을 보낸 것 같다. 그 반면 몽골에서의 하루하루는 정말로 벅차다. 연필로 써내려 가기에는 너무나 벅차다. 매일이 새롭고 또 놀랍다. 

 어치르 커플은 명절을 맞아 칭군에(어치르 씨의 여자친구)의 고향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어치르 씨는 혼자 있을 나를 걱정하면서 괜찮으면 이번에도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별 다른 계획이 없었던 터라 흔쾌히 가기로 했다. 이 삶은 참으로 신나는 삶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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