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 유어 아이즈> (빅토르 에리세, 2023)
인스타그램 웹진 '시네마토그래프'에 투고한 글입니다.
※ 스포일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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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2023)는 지금까지 세 편의 작품만 내놓았던 거장의 신작, 그것도 31년 만의 장편 영화라는 점에서 공개 이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한국에서도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극장 개봉을 거의 마친 지금까지 영화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의 기적, 감독의 개인사와 전작들, 그리고 필름 영화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비롯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미 여러 번 훌륭한 글로 제시된 바 있기에, 이 글에서는 조금 다른 부분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
영화에서는 ‘이름’에 관한 언급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먼저 미겔이 잠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왔을 때 이웃들과의 대화를 살펴보자. 출산을 앞둔 젊은 부부는 아이의 이름을 뭐라고 지을지 고민이다. 남편과 아내는 각자 생각하는 이름이 달라 장난스럽게 다투며, 또 다른 이웃은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그건 신이 정해주는 것이라 말한다. 한편 그 이웃과 미겔은 각각의 사연 덕분에 이 동네에서 ‘빅풋’과 ‘마이크’라고 불린다. 완성되지 못한 미겔의 마지막 영화 <작별의 눈빛>에서는 어떤가. 레비는 자신은 과거 여러 이름을 가졌고, 레비는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불린 이름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그는 잃어버린 딸 주디스가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침통한 표정으로 전하며, 다시 만난 딸을 여전히 주디스라고 부른다. 레비와 주디스의 관계는 극중극 밖에 자리한 훌리오와 아나의 관계를 이름만 바꾸어 거의 그대로 재현한다. 훌리오 역시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주디스와 아나는 모두 오랜 세월 끝에 아버지를 마주할 때 눈을 감는다. 훌리오는 유일하게 극중극과 극 모두에 등장하는 인물이며, 아나는 (50년 전 <벌집의 정령>에서처럼) 극과 현실에서 동일한 이름을 갖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름이 바뀌면서 인물들은 다른 세계로 분리된다. 일단 영화가 시작하면 관객들은 스크린 위에 친숙한 얼굴이 보이더라도 그를 극 중 이름으로 부르자는 약속을 받아들인다. 극중극의 사설탐정 프랑크, 배우 훌리오, 댄스 강사 마리오, 요양원 시설관리인 가르델. 이 인물들은 동일한 육체를 공유하지만 각기 다른 자아를 갖는다. 과거의 자신을 망각한 가르델은 자아 사이의 이해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배우인 훌리오는 작품마다 다른 이름의 캐릭터를 연기했을 것이다. ‘신이 내린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이야기에 뿌리내린 수많은 이름들은 훌리오의 실종과 함께 사라진-또는 죽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아나의 등장은 그 자체로 큰 감동이며, 두 세계의 경계에 걸쳐 있는 야누스적 인물과 같다.
미겔의 친구 막스는 그와 미겔을 ‘고고학자’라고 칭한다. 오래된 셀룰로이드 필름을 보관하고 상영하려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사라진 이름 ‘프랑크’를 다시 발굴해 현재의 가르델에게 제시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겔은 옛 연인 롤라의 이름을 헌책방에서 말 그대로 발굴해 내기도 한다. 한편 아나의 직업은 박물관 도슨트이다. 도슨트는 발굴된 유물을 관객이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50년의 세월을 넘어 재등장한 ‘아나’ 캐릭터 역시 관객들에게 영화를 바라보는 하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카메라는 화면 전환을 부드러운 암전으로 처리하며 여러 번 눈을 감는다. 에리세의 카메라는 베르토프의 기계적 카메라-눈과는 달리 생명력을 지닌 영화의 눈이다. 계속해서 눈을 감았다 뜨며 과거를 회상하는 이 카메라는 죽음을 앞둔 것처럼 위태해 보이기도 한다. 일찍이 영화는 필름에 종속되었던 20세기 내내 존재론적 위기를 겪고 극복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등장은 결국 ‘영화의 죽음’ 곧 필름 시대 영화의 종말을 가져온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이미 디지털 상영이 정착된 이후지만 곳곳에 필름의 흔적이 남아 있을 시기인 2012년이다. 즉 이 영화는 이미 회생 불가능한 필름 영화의 마지막 순간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미겔은 <작별의 눈빛> 일부가 담긴 TV 쇼-과거 영화를 위협했던-를 보는 대신 극장에서 스스로 나머지 부분을 필름 상영한다. 그러나 이런 미겔도 중국 소녀의 사진을 자신의 디지털 기기로 옮기지 않고서는 훌리오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전화를 받은 미겔에게 “누가 죽었대?”라고 묻는 이웃의 대사처럼, 영화는 죽음에 거의 가까이 도달한 상태다. 그리고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카메라가 눈을 감기 직전, 숏의 끝부분을 사진으로 처리하며 이를 반복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훌리오와 죽어가는 영화는 끝내 한 장소에서 만난다. 사라진 이름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은 극장이다. 영화가 응당히 그 마지막 순간을 보내야 할 곳 역시 극장이다. 폐관된 극장은 관객이 영화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이 엄숙한 공간에서, 사라졌던-죽었다고 여겨지던 훌리오가 본연의 자리인 스크린 위에 등장해 눈을 감는다. 객석의 훌리오 역시 잃어버린 자아의 죽음을 감지하며 같이 눈을 감는다. 영화는 두 죽음을 겹쳐 보이며 자신의 끝을 스스로 애도한다. 영화 밖의 관객 역시 침묵으로 애도에 동참한다. 현실과 영화 사이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이제 그곳에 자리한 야누스가 영화와 관객을 동시에 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