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라> (마티아스 피녜이로, 2012)
※ 스포일러 포함
오손 웰스, 장 뤽 고다르, 구로사와 아키라, 로만 폴란스키. 영문학을 대표하는 문호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수많은 거장의 손을 따라 스크린 위로 옮겨졌다. <맥베스>, <리어 왕> 등 널리 알려진 비극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들이 셰익스피어에게서 인간의 욕망과 뒤틀림을 발견했다면, 아르헨티나의 젊은 감독 마티아스 피녜이로는 그의 희극을 소재로 삼아 한편의 꿈같은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옴니버스 영화의 일부였던 중편 <로잘린>(2011)을 시작으로 <비올라>(2012), <프린세스 오브 프랑스>(2014), <허미아와 헬레나>(2016), <이사벨라>(2020), 그리고 로이스 파티뇨와 함께한 <시코락스>(2021)에 이르는 연작이 이에 해당한다.
<비올라>(2012)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중에서도 잘 알려진 <십이야>(Twelfth Night, or What You Will)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십이야>는 대략 다음의 줄거리를 따른다. 오르시노 공작이 통치하는 일리리아(지금의 크로아티아 인근)에 난파한 비올라는 공작을 사랑하여 환관으로 변장한 후 궁에 들어간다. 오르시노는 여백작 올리비아를 사랑하지만 그의 구애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공작은 비올라(남자 이름은 세자리오)를 올리비아에게 보내 그녀를 설득하게 하는데, 올리비아는 엉뚱하게도 비올라를 사랑하게 된다. 복잡해진 상황에서 죽은 줄 알았던 비올라의 쌍둥이 오빠 세바스티안이 등장한다. 올리비아는 남장한 비올라와 똑같이 생긴 세바스티안과 결혼하고, 오르시노는 비올라가 여성임을 깨닫고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피녜이로는 다른 셰익스피어 연작과 마찬가지로 등장인물을 <십이야> 연극을 준비하는 배우들로 설정한다. 출연하는 실제 배우들 역시 그의 영화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들이다. 따라서 피녜이로의 다른 작품들을 함께 보는 것은 영화 이해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비올라>는 특히 감독의 전작 <로잘린>과 쌍둥이 같은 작품이다. 한 여인이 전화로 이별을 고하는 오프닝은 <로잘린>의 서두와 거의 일치한다. <로잘린>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희극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를 활용한 러닝타임 43분의 중편인데, <비올라>에서 세실리아와 비올라가 <좋으실 대로>의 에필로그(마지막 로잘린의 독백)를 낭독하는 장면은 <로잘린>의 러닝타임에 맞추어 40분대에 등장한다. 이후 이어지는 장면과 <로잘린>의 결말은 마리아 비야가 연기한 두 캐릭터(비올라, 루이자)가 소외와 압박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묘하게 겹쳐 보인다.
비올라는 세실리아와 함께 차에서 고객 어거스틴을 기다리다 잠시 눈을 붙인다. 그녀는 세실리아와 자신 모두를 알고 있는 친구 루스가 차에 동승하는 꿈을 꾼다. 세실리아의 연습을 도와 함께 에필로그를 낭독한 이후 그녀가 극장에 초대받자, 세실리아와 루스는 갑자기 비올라는 가만히 있어도 늘 일이 잘 풀리고 일상을 특별한 변화 없이 안일하게 반복할 뿐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비올라를 클로즈업하고, 세실리아와 루스는 프레임 밖에 위치시킨다. 그들의 시선은 스크린에서 제거되지만, 비올라가 느끼는 소외는 클로즈업을 통해서 관객에게 전달된다. <로잘린>의 엔딩인 마피아 게임 역시 비슷한 논리로 작동한다. 마피아 게임의 살해, 즉 폭력은 모두가 눈을 감고 있는 ‘밤’에 일어난다. 밤은 꿈을 꾸는 시간이기도 하다. 피녜이로는 두 장면에서 시선의 부재 속 압박을 영화적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압박을 느끼는 대상이 눈을 감는다. 앞서 루이자는 자신을 험담하는 동료들의 목소리를 들은 바 있다. 그때도 그녀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 주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있는 루이자는 동료들의 시선이 어떤지 볼 수 없기에, 프레임 속에 홀로 갇힌 비올라와 겹쳐 보인다. 주인공의 두려움과 불안은 이어지는 클로즈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프레임 속에는 다른 인물들도 있지만 눈을 감고 있기에 루이자는 혼자나 다름없다. 이때 그녀의 전화벨은 이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한 방어기제처럼 작동한다.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자들을 위한 <매트릭스>의 전화처럼, 루이자의 벨소리는 계속해서 요란하게 울린다. 비올라는 차-프레임 밖으로 문을 열고 나가며 꿈에서 깨어나지만, 루이자는 결국 깨어나지 못한 채 억압의 마지막 희생자가 된다. 그렇다면 <비올라>는 <로잘린>의 세계를 꿈밖으로 연장하며 나아가는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시선에 관한 관심은 영화 전반에 걸쳐 존재했다. 세실리아와 가브리엘라, 라우라가 분장실에 있는 장면을 보면, 인물들 사이의 시선 일치는커녕 전부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가운데 대화가 진행된다. 이들은 공연 도중 세실리아를 계속해서 응시했던 남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실리아는 눈이 계속 마주쳐 그를 보고 대사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추후 그는 비올라의 연인 하비에르로 밝혀지며, 엔딩 직전 비올라의 내레이션에서 둘 사이의 묘한 관계가 암시된다. ) 어거스틴과 사브리나의 재회를 위한 계획을 짤 때에는 세 인물 모두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거울을 보고 말하기까지 한다. 연극의 방백을 영화적으로 표현한 듯한 이 신에서, 영화의 내용은 연극과 조응하기 시작한다. 극중극에서 ‘비올라’ 역할을 맡은 세실리아는 ‘올리비아’ 역할을 맡은 사브리나가 그녀를 사랑하는 어거스틴과 재회하기를 바란다. 이는 <십이야>에서 오르시노의 구혼을 위해 올리비아를 찾는 비올라와 비슷하다. 세실리아는 올리비아를 유혹해 어거스틴에 대한 사랑을 되살리고자 한다. 돌림노래처럼 이어지는 그녀의 낭독은 역시 연극처럼, 시선의 불일치 속에서 이루어진다. 마침내 둘이 마주하게 되는 순간, 사브리나는 그녀에게 키스한다. 곧이어 등장하는 전혀 다른 배경과 대사는 직전 시퀀스를 꿈처럼 보이게 한다. 시선은 연극과 영화 사이 미묘한 경계를 구분하고 연결한다.
‘비올라’ 역할을 맡은 배우 세실리아가 영화와 연극을 넘나드는 한편, 영화에는 비올라라는 이름의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피녜이로의 셰익스피어 연작은 모두 희곡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여성도, 소외되거나 억압받았던 여성도 존재한다. 희곡에서 로잘린과 비올라는 본래 여성이지만 남성으로 변장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여성의 정체성을 감추고 새로운 이름을 사용한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두 비올라(세실리아, 비올라)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희곡에 등장하는 쌍둥이 남매를 자매로 치환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모습을 바꾸지 않아도 사랑을 이루거나,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 비올라는 연인 하비에르와 함께 해적판 음반, DVD를 판매하고 있다.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를 이름으로 하는 이들의 사업은 하비에르가 제작, 비올라가 배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고객들의 집을 오가며 부에노스아이레스 곳곳을 누빈다. 카메라는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가지만, 때로는 비올라가 지나간 도시의 풍경을 오래도록 프레임 안에 잡기도 한다. 초점을 다른 행인에게 맞추는 장면도 존재한다. 이런 과정 안에서 비올라는 오랜 시간 그 공간을 지켰던 도시의 일부로 편입한다. 피녜이로는 더 이상 공간에서 소외받지 않는 여성상을 도시와 함께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넘어 반복되거나 이어지는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하비에르의 집에 찾아온 뮤지션 가스통은 비올라를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그는 배달 중이던 비올라를 쳐다보는 남성으로 영화에 이미 등장한 바 있다. 첫 번째 손님의 이야기에 나왔던 반지는 비올라가 세실리아의 차에 탈 때 재등장한다. 세실리아는 반지는 연극 소품이며, 우리는 같은 제품을 아주 많이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연극이 셰익스피어 희곡 7개를 조금씩 섞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첫 5분 연극 장면의 대사에서 오르시니를 대신하는 <베니스의 상인>의 주인공 안토니오와(때문에 “안토니오의 가슴”이라는 대사가 묘하게 들린다.) 후반부에 낭독되는 <좋으실 대로>의 에필로그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사건의 여러 층위를 교묘하게 겹치고 뒤섞는 연출은 관객에게 기시감과 수수께끼 같은 혼란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이 대부분 과거에 경험하거나 보았던 것임을 떠올리면, 피녜이로가 정말 꿈같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동의하게 된다.
연기는 관객과 맺는 일종의 합의다.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순간에, 관객은 그들이 원래의 모습과 다르게 등장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피녜이로의 작품에 등장하는 연극배우들은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끊임없이 대사를 읊는다. 연기를 하는 동안 그들은 또 다른 자아로 존재한다. 그의 작품 속 배우들은 대사를 여러 번 반복하거나, 서로 바꾸어 말하기도 한다. 영화는 계속해서 관객에게 이 합의의 존재를 상기시키며 거리를 분명히 한다. 그렇다면 <비올라>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감정적으로 다가가는가? 영화의 끝자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비올라의 내레이션은 연인과 헤어진 미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한다. 그럼에도 카메라는 그녀가 연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때와 장소를 담는다. 연인을 바라보며 미소 짓던 비올라가 카메라에 등을 돌리고 노래에 합류하면서 크레딧이 올라간다. 시선으로 시작해서 시선의 소멸로 끝나는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클로즈업으로 영화의 공간을 나누는 감독들은 많다. 그러나 피녜이로는 분절된 공간을 시선으로 연결하며 감정에 가닿는 흔치 않은 감독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