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대단하세요! 근데 선생님 같은 나이에는...

재미나게 살고 싶어서요.

유럽여행이 결국 발단이었다.

군에서 전역하자마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돈을 모아 여행비용을 마련했다. 고달팠던 군생활을 버티게 해 준 힘은 날 기다려 준 그녀가 아니라(그런 애인은 애초부터 없었다.) 바로 유럽여행이었다. 한 달이 넘도록 유럽의 구석구석을 걸어다녔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나마 그곳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내가 방문하는 곳마다 신기하게도 다시 만나게 되는 나같은 여행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여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이상스레 잠도 오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향 피어오르듯 스멀스멀 올라오던 생각은 지금은 사라진 한 대기업 회장이 말했다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가 아니라 "세상은 넓고 내가 살 곳도 많더라."였다. 그렇지. 왜 꼭 한국에서만 살아야 하는 거지?


이민을 결정하고 그때부터 필요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민을 주선하는 회사는 수없이 많았고 이민을 하는 방법도 그리 적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기회가 그렇듯 내 사정과 처지를 대입해 보면 내가 손을 뻗을 수 있는 선택지는 결국 많아야 한 두 개 그 중에서 골라야 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매정한 상황은 아니었다. 단지 돈을 좀 많이 투자하고 원하는 것을 빨리 얻을지, 기간은 그보다 좀 길어지지만 비용이 적게 드는 다른 하나를 선택할지 그거였다. 이민의 성공여부는 비용이 아니었다. 본인의 의지와 그 나라의 이민정책이었다.(실제로 각 나라의 이민정책에 따라 이민쿼터는 고무줄마냥 변동폭이 심하다.) 나도 모를 나의 미래에 돈을 버릴 수는 없었다.


유학원과 이주공사가 밀집해 있는 교대역 부근의 한 아담한 회사의 상담실에 앉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민정보를 취사선택 하다 보니 제대로 된 정보는 신기하게도 이 회사로 수렴되었다.

이민의 결정을 전제로 여러가지의 방법과 준비해야 할 사항들을 설명해 주던 직원이 나로서는 의외의 말을 했다.


"대단하세요, 아버님! 이민결정이 쉽지 않으셨을텐데. 그 나이에는 사실 새로운 걸 시작하기보다는 그냥 유지하려고 하시잖아요."

"그래요? 이 나이에는 잘 안 나가나보죠? 뭘 대단하게 이룬 나이도 아닌데... 다들 대단한가 보네요."

"실제로 외국에서 사는 거 절대로 거부하는 분들이 훨씬 많으세요."


참 나...또 나만 이상한거다. 누구든 가볍게라도 외국에서 살아보는 게 희망사항 중 하나 아닌가? 특히 각박한 우리나라에서 벗어나 몇 년만이라도 평화로운 곳에서 걱정없이 살아보는 거 말이다. 그렇다면 여태껏 내가 들어왔던 사람들의 푸념은 다 뭐란 말인가?


"놀러는 가고 싶어하죠. 경치 좋은 곳에서 맛있는 거 먹고 사진 찍고. 그런데 거기서 아예 살아야 한다면? 힘들어도 한국이 낫다는 거죠.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고생하는 것 보다는."


그 말이 맞았다. 그 이후로부터 친구나 지인들한테 들었던 대부분의 반응은 이 나이에 왜 나가냐. 가려면 진작 갔어야지.(가고 싶었지 나도. 하지만 여건이 안된 걸.)묵직하게 하나 내 가슴에 가라앉는 말을 절친이 했다.


" 아무리 그래도 우리나라가 웬만한 나라 못지 않게 발전했는데, 네가 가는 캐나다나 그리 다를 것 없고 어떻게 보면 그 곳이 더 후진적인 게 많은데 후회하지 않겠니?"

"야, 반평생 여기서 살았는데 남은 인생 좀 다른 나라에서도 살아보자. 한 곳에서 너무 지겹잖아."


식이, 정곡을 찌르네. 나도 그걸 생각하면 합리적인 결정인가 싶다. 

재미있자고 나가는데 우리나라가 더 재미있어지면 어떡하지?

이전 01화 프롤로그 - 나는 한국이랑 잘 안 맞는...게 맞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