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은 이 노래를 다 안다
20살이 되고 첫 동창회에서 친구들이 이 노래 기억나냐며 '빨강머리앤' 노래를 불렀다. '내가 어릴 때 늘 부르던 노래인데 친구들이 어떻게 알지?' 싶어서 어떻게 아냐고 물어봤다. "네가 알려줬잖아!"라고 해서 "내가? 언제?"라고 되물었다. 난 정말 기억이 안 난다.
동창들 중에서 90년대 초중반에 한국에 있었던 사람은 나 밖에 없다. 1학년 때 내가 그렇게 '빨강머리앤' 노래를 부르면서 왜 아무도 모르냐고 답답해했다고 한다. 그야, 친구들은 그때 다 이집트에 있었으니 몰랐겠지.. 답답해하면서 가사 하나하나 다 알려줬단다. 그래서 남자애들도 그 노래를 다 안다.
3학년 때 나는 똑같은 짓(?)을 하게 된다. 매년 추석마다 교민 한가위 축제가 있는데 1997년에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장기자랑 무대를 신청했다. '세일러문' 주제가를 외워서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셋이 쪼르르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선다고 선물을 주진 않았을 텐데 무슨 생각이었을까? 덕분에 내 친구들은 세일러문 주제가도 안다.
'포켓몬스터'는 5학년 때 국내에서 최초로 방영되었다. 방영 당시 나는 여름방학이라 한국에 있었고, 사촌들이랑 TV로 봤다. 이집트로 돌아오니,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한국에는 '포켓몬스터'가 유행이라고 친구들한테 말한 것 같다. 6학년 때 학생 1명이 '포켓몬스터' 비디오를 학교에 가져와서 전교생이 점심시간 이후에 다 같이 봤다. 덕분에 '포켓몬스터' 오프닝과 엔딩 주제가를 다 같이 부르기도 했다.
한인 학교에 다녀도 한국 유행을 쫓아가는 건 쉽지 않았다. 만화영화뿐 아니라, 아이돌, 영화, 놀이, 패션 등 우리는 다 한 박자씩 느렸다. 그땐 SNS도 없었고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이집트 인터넷이 느려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