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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모카봉봉 Feb 14. 2022

상자 세상이 된 우리 집

[그림책과 함께하는 슬기로운 격리생활] 상자세상(윤여림 글, 이명하그림)

격리하는 동안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쓰레기 역시 밖으로 배출을 할 수가 없었다. 종량제 봉투를 밖으로 버릴 수 없는 것은 물론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도 배출할 수 없었다. 


나름의 전략을 세워보았다. 일단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는 것부터 필요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도록 날짜가 지나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니 많이 구입하지 않고, 조리를 할 때도 먹을 만큼 적당한 양만 해서 다 먹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초반에는 미각을 잃어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음식들을 꾸역꾸역 끝까지 먹기가 참 고역이었다. 이렇게 해도 어쩔 수 없이 생긴 음식물 쓰레기는 냉동실에 차곡차곡 얼려 두었다. 위생적으로 좋지는 않을 것 같아도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맨 아래 생선이 있던 칸을 비우고 음식물 쓰레기를 얼렸다. 

그리고 종량제 봉투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압축에 압축을 해서 쌓아두었다. 보통 집에 오래 있게 되면 날 잡아서 대청소를 하곤 했다. 필요 없이 쌓아 두었던 것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버리곤 하는데, 쓰레기가 많이 생기가 되니 집에 오래 있으면서도 정리 욕구도 꾹꾹 참았다. 


문제는 재활용 쓰레기였다. 다른 쓰레기들처럼 최대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양이 계속해서 쌓여만 갔다. 오히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니 필요한 생필품을 택배로 받게 되어 쌓여가는 박스가 양은 어마어마했다. 

세탁세제가 다 떨어져서 택배로 주문을 했다. 마트에 직접 갔더라면, 세제에 손잡아도 달려있겠다 달랑달랑 들고 왔으면 그만 일 텐데, 택배로 주문을 하니 종이 박스 안에 완충제의 역할을 하는 비닐까지 함께 도착을 했다. 

계란도 다 떨어져서 택배로 주문을 해보았다. 마트에 직접 갔더라면 종이로 된 계란 판에 위에는 플라스틱 덮개로 덮어 노끈으로 묶어진 계란 한 판을 달랑달랑 들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택배로 주문을 하니 계란은 한판을 주문했는데 종이로 된 계란판이 3개가 왔다. 밑에 2개가 깔려있고 하나는 뒤에 플라스틱 대신 덮는 용도였다. 그리고 다시 종이박스 2개로 2중 포장이 되어있고, 사이사이에는 완충제 역할을 하는 비닐이 함께 있었다. 계란 한판을 주문했는데 이렇게 쓰레기가 많이 나오다니… 

물론 이해는 갔다. 계란이란 깨지기 쉬운 것이기 때문에 깨지지 않도록 최선의 방법으로 포장했다는 것을. 환경을 생각해서 포장을 간단하게 했다가 계란이 깨지게 되면 소비자들의 거센 항의가 더 감당이 안되니 포장지가 더 들더라도, 비용이 더 들더라도 이 방법을 선택했다는 것을.


현관 앞에 쌓여 있는 재활용 쓰레기들을 보니 그림책 <상자 세상>이 생각이 났다.



번개 쇼핑의 택배 기사님은 오늘도 차에 택배들을 가득 싣고 배송을 한다. 누군가의 집 앞에 택배가 배달이 되고, 한 남자는 문을 살짝 열고 택배 상자를 쓱 가져온다. 딸아이와 함께 보는데, 이 아저씨 엄마랑 똑같다 하면서 깔깔 웃는다. 택배가 왔을 때 누구나 이런 반응이지 않을까. 초인종이 울리고, ”택배 왔습니다”라는 말이 들리면 누구나 현관으로 후다닥 달려간다. 집에 있다 보니 후줄근한 모습이 누가 볼까 부끄러워 문을 살짝 열고 택배만 쓱 가져오는 모습이 그림책을 보는 이 모두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오는 부분이다. 

책 속의 남자가 주문한 물건은 헬멧 모양의 자동 칫솔. 그림책을 보며 과인 이 칫솔이 이 남자에게 얼마나 필요한 물건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가 쓸데없는 물건들,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도 택배로 주문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반성하게 하는 부분이다. 

어쨌든 물건을 꺼내고 이제 필요 없게 된 상자를 밖으로 휙 던진다. 지금 이 상황이 이 남자의 집에서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택배기사님은 여기저기 많은 집을 방문하게 되고, 여기저기 많은 집에서 택배 상자에서 물건을 꺼내고 필요 없어진 상자들은 밖으로 휙, 휙 던져버린다. 택배 상자들은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이게 된다. 어느새 아파트보다 더 높게 쌓인 상자들. 이 상자들의 반란이 시작된다. 배고프다고 외치며 세상의 모든 것들을 우적우적 먹어 치우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책을 보고 죄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가지의 자극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하게 본다면 우리가 늘 이용하는 택배 상자들이 정말 많아지고 있어서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어서, 이것을 재미있게 표현한 그림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그럼 택배를 그만 시켜야 되겠구나라는 현실성 없는 다짐만 해볼 뿐이다.


하지만 조금 그림책을 자세히 본다면 우리가 정말 필요한 물건을 택배로 주문하고 있는지, 직접 가서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을 택배로 주문하는 것을 아닌지, 달랑 한 개를 받고자 택배를 주문하는 건 아닌지, 그리고 필요 없다고 상자를 휙 버려버리지는 않은지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책을 함께 보고 딸아이와 생각했다. 우리가 집에 있는 동안 택배를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어도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일단 꼭 필요한 물건만 주문하기로 했다. 오랜 격리기간 동안 심심해서 장난감이 사고 싶을 수는 있어도 대신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을 집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택배를 주문할 때, 필요한 것은 한 번에 몰아서 주문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택배 상자도 아끼게 되고 택배 아저씨의 수고도 덜 수 있겠다고 딸아이는 말했다. 또한 도착한 택배 상자는 최대한 재활용이 될 수 있도록 깨끗하게 정리하여 배출하기로 했다. 재활용 쓰레기로 배출을 해도 제대로 모두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오염이 되어서,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다른 물질이랑 섞여 있어서 등 이유는 다양하다. 최대한 재활용이 될 수 있도록 스티커를 모두 제거하여 깨끗하게 배출하기로 했다. 물론 우리는 격리기간에는 외부로 배출이 안되기 때문에 한동안 현관 앞에 두었다. 


음....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이 있다. 이런 반성을 하고, 다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내일 도착할 택배를 기다리고 있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택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도착하면 기쁜 마음으로 상자를 개봉하는 것을 오래도록 반복했기에 내 다짐대로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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