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책임감과 둘째의 자립이 만나는 시간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하면서 나도 어느 순간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일을 다시 시작한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지금 내가 일을 해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이 매일 아침 나를 붙잡았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일정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아침 일찍 나가야 하거나 늦게까지 이어지는 일정이면 선뜻 수락하지 못했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강의도 괜히 마음이 무거워 거절하곤 했다. 조금만 늦어질 것 같으면 시부모님께 급히 부탁드렸고, 내가 너무 일찍 나가야 하는 날에는 아이들을 할머니 집에 먼저 데려다 놓고 출근했다. 그때의 나는 늘 시간과 마음을 저울질하며 엄마와 일 사이에서 조용히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고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 역시 내가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만큼 조용하고 단단하게 자라 있었다.
최근에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아직 어둑한 집 안을 나서며 현관문을 닫을 때면 아이들은 이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을 때가 많다. 예전 같으면 마음이 뒤숭숭했겠지만, 이상하게 그 장면이 이제는 걱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첫째에게 내 역할을 대신 부탁했고, 아이가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처음 부탁했을 때 첫째는 책임감 때문인지 긴장감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빨리 일어나 준비를 했다. 내가 없어도 아침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아이에게 나름의 의지를 준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듯 아이가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자 어느 날은 늦잠을 자버린 것이다. 일어날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 홈캠 화면 속에서 아이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했는데도 받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무음으로 되어 있어서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홈캠 오디오를 켜고 외쳤다. “얘들아, 일어나.” 그러자 잠시 후 부스스한 모습으로 두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아파트에서 지각할까 봐 특별 방송으로 누가 깨워주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웃음이 나면서도 기특하고 귀엽고,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아이들이 일어날 시간이 되면 일터에서 홈캠을 켠다. 우리 집의 아침이 화면 속에서 또박또박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식탁에 나란히 앉아 시리얼을 먹는 모습, 싱크대 쪽에서 작은 손이 물통을 채우는 모습, 내가 미리 꺼내둔 옷을 챙겨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들. 오디오를 켜면 둘만의 대화가 조용히 들린다. “로션 발랐어?”, “치카 했어?”, “오늘 준비물 있어? 챙겨.” 그 말들은 매일 아침 내가 반복하던 말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첫째의 목소리로 차분하게 흘러나온다.
둘째가 로션 바르기를 미루고 있으면 첫째가 직접 손에 덜어 발라주고, 물통 뚜껑을 대충 닫아두면 툭툭 확인하며 다시 조여준다. 그 모습이 화면 너머로 보일 때마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아, 내가 없는 아침이지만… 아침이 그대로 움직이고 있구나.” 이 말은 나의 부재를 넘어, 아이들이 내가 하던 자리를 조금씩 채워가고 있다는 따뜻한 의미였다. 그 사실이 이상할 만큼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기 몫의 아침을 만들어가는 동안 나는 그동안 놓아두었던 ‘나’를 조금씩 다시 찾아가고 있다. 아이들의 독립이 자라날수록 엄마인 나도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길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잠시, 작은멈춤>
1. 아이가 스스로 하루를 준비하기 시작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2. 아이가 해내고 있는 ‘작은 책임감’을 나는 충분히 믿고 지켜봐 주고 있을까요?
3. 오늘 하루,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 더 내어주는 건 어떨까요?
“내가 없는 아침을 아이들이 스스로 이어갈 때, 자람은 눈앞에서 조용히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