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삐뚤게 신은 양말 속에 숨은 성장

아이의 첫 독립을 바라본 작은 순간

by 자모카봉봉

아이가 처음으로 “내가 해볼게”라고 말한 날을 기억한다. 아주 사소한 장면이었고, 어쩌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작은 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선명한 인생의 한 페이지처럼 남아 있는 날이다.


양말을 신기 위해 작은 의자에 앉혔을 때였다. 늘 하던 대로 양말 입구를 벌려 발끝을 끼워주려던 순간, 아이는 내 손을 살짝 밀어냈다. 그리고 작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해볼게.” 그 말은 작은 종처럼 마음속에서 쿵 하고 울렸다. 양말 하나 신겠다는 말이 뭐라고, 그런데도 그 말은 내가 익숙하게 쥐고 있던 ‘엄마의 역할’을 잠시 멈춰 세우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처음으로 내 도움을 조용히 거절한 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손가락은 서툴렀다. 양말은 자꾸 뒤집히고, 발끝은 여러 번 빠졌다. 답답함에 아이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고, 나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몇 번이고 삼켜야 했다. 빠르게 도와주면 금방 끝날 일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손을 뻗는 것이 아이의 시도를 막는 일일지 몰랐다. 아이는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나는 그 작은 어깨가 내는 결심을 지켜주기 위해 나름의 인내를 배우고 있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양말이 발끝까지 겨우 들어갔다. 아이는 숨을 고르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내가 했어”라는 작은 자신감과 “봐줘”라는 바람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거기에는 아이의 성장과 독립이 아주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날 나는 한 가지 문장을 떠올렸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아이가 나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스스로 서도록 돕는 일이라는 말. 그 말을 생각하니 내가 오랫동안 ‘아이를 끝까지 챙겨줘야 한다’고 믿어왔던 마음이 조용히 흔들렸다. 아이가 하는 모든 일에 내가 개입해야 한다는 고집,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불안 같은 것들이 서서히 의미를 잃어갔다.


아이의 시도를 지켜보는 일 역시 단순히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힘으로 설 수 있도록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용기’라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부모는 앞으로만 나아가야 한다고 믿었지만, 아이의 성장은 부모가 물러나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 물러섬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그때 처음 배웠다.


그날 이후 아이는 조금 달라졌다. 양말을 스스로 신어본 경험이 작은 자신감을 아이 속 깊은 곳에서 깨운 듯했다. 그다음에는 스스로 옷을 입어보겠다고 나섰다. 바지는 앞뒤가 바뀌어 있었고, 티셔츠는 뒤집어진 채였지만 그 우스운 모습조차 사랑스러웠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혼자 빗겠다고, 혼자 묶겠다고 끙끙대던 날도 있었다. 가르마는 삐뚤빼뚤했고 머리끝은 제멋대로 서 있었지만, 나는 그 서툼 속에서 ‘시작’을 보았다.


누군가가 대신해주던 일들을 아이 스스로 하나하나 해내려는 첫 번째 여정. 뒤집힌 양말과 뒤바뀐 옷, 엉뚱한 가르마는 모두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작은 신호였다. 어쩌면 아이의 자립은 거창한 사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소소한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캥거루족’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보호 아래 머물며 독립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뜻하는 개념이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꽤 놀랐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 서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그 뒤에는 누군가가 끝까지 붙잡고 있었을 가능성 때문이었다. 아이가 스스로 해볼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채 자란다면 독립은 더디거나, 때로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립해 나갈 수 있도록 조금씩 물러서고, 스스로 해볼 기회를 주는 일이 결국은 아이의 미래를 위한 가장 큰 응원임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해볼게”라는 말 한마디는 아이의 자립을 여는 시작이자, 나의 새로운 삶을 여는 시작이었다. 그날 아이가 신던 비뚤어진 양말은 아이가 자라는 장면이면서, 나 역시 다시 성장하기 시작한 아주 조용한 첫 장면이었다.


양말.jpg


<잠시, 작은멈춤>

1. 내 아이가 “혼자 해볼게”라고 말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2. 아이의 작은 시도를 내가 너무 빨리 대신해준 적은 없을까?

3. 오늘 하루, 아이의 독립을 응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일까?



“아이가 스스로 해보겠다는 마음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 독립으로 가는 첫 걸음을 돕는 일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R=VD 법칙의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