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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흩다 Jan 06. 2016

느린, 달

따가운 볕이 눈을 감은 시간이 되면,

추워하는 몸을 두툼한 옷으로 감싸안은 채

난 종종 밤 거리를 걷는다. 

모두가 바삐 길을 가는 퇴근시간이 지나 한적해진 거리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표정이 없고, 목적지를 향해 재촉하는 발걸음들만이 얼은 길거리를 깨운다.


원체 성격이 느린 탓에 발걸음도, 행동도, 말투도 느린 나를 모두들 앞질러 가,

저 만치 앞선 그들을 보는 시선 끝엔 나의 보폭을 맞춰 주는 이 하나 없어

느린 발자욱 위엔 안개낀 흐릿한 달만이 함께이다.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았던 뒤쳐진 하루의 난,

"언제쯤 따라올래?"라며 비웃는 그들의 목소리만 귀에 가득 맴 돌아 길거리를 서성인다

사실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차마 소리내진 못 한 아쉬움만 가득 남아버린 오늘이 된 것 같아

나와 닮은 저 달이 미워보이기도 하지만 그 마저도 저 높이 뜬 달 앞에선 초라해 보이는 듯 해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하지만 내 마음도 느린 덕분일까,

하루를 음미하는 밤이 지나 모든게 멈추는 새벽이 오면

불편했던 마음도, 답답했던 오늘의 나와 저 먼 발치에서 나를 부르는 그들도,

모두 다 멈춰져 버린 듯 편안한 템포가 까만 밤을 가득 물들인다.


쉴 새없이 흐르는 구름들 사이로 안개가 걷힌 달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듯,

조금은 느린걸음의 나지만 언젠가 안개가 걷힌 성숙해진 날의 나는, 남들보다 더 은은할 것임을.

두둥실 뜬 달을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오늘도 느린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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