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집에 있으면 왠지 죄책감이 든다. 아이들을 데리고 좋은 곳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것을 먹여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주말이 다가오면 슬슬 압박감이 느껴지고, 주말에 뭐하지를 생각하며 끊임없이 '주말 나들이 장소', '아이 데리고 가기 좋은 곳' 따위를 검색한다.
어느 주말, 두 당 2만원 넘게 내고 들어간 아쿠아리움에서 5분이 지나지 않아 울고 불며 뛰쳐나오는 아이. 최저가 티켓을 검색하고, 키즈메뉴가 있는 식당 후기를 탐독하고, 남편과 내가 모두 쉬는 날로 일정을 맞추어 아기다리고기다리 큰 맘 먹고 나온 나들이인데...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화려한 조명이 아이를 감싸고, 수족관 유리 너머에서 물고기가 아이를 향해 노려보 듯 레이져 눈빛을 발사하니 아이가 식겁을 하고 도망쳐나온다.
"너 니모 좋아하잖아~ 여기 오렌지 니모랑 블루 도리 보러 왔잖아. 여기 마이쭈 먹자. 마이쭈 먹으면서 한번 더 들어가볼까? 너가 물고기 보고 싶다고 했잖아."
최단 시간에 이미 트라우마를 만들어 낸 아이는 아쿠아리움에 들어가길 강력하게 거부한다. 내 돈 8만원...
점심이나 먹자며 아이를 위해 일부러 검색해놓은 돈가스 집에 갔는데 돈가스 위에 소스가 부어져나와서 아이가 돈가스에 손도 대지 않는다. 케찹 포함 모든 소스를 안 먹는 우리 딸이라 돈가스를 시킬 때는 항상 "소스는 따로 담아주세요. 소스는 안 주셔도 돼요." 라고 주문해야되는데, 아이가 징징 대는 통에 정신이 없어서 깜빡한 것이다. 아이를 낳고 미역국 다음으로 자주 먹은 음식이 돈가스라 온 식구가 메인 메뉴인 돈가스는 손도 대지 않고, 반찬으로 나온 김에 밥을 싸서 식사를 한다.
점심을 대충 떼우고 나오니 이미 우리 부부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탈진상태. 집으로 가서 아이에게 만화를 틀어주고 부부는 소파에 뻗었다.
"도대체 우리 왜 나간거야?"
말할 기운도 없어 남편과 마주보고 눈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계획이 없던 지난 주말. 온 식구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가 목이 말라 동네 수퍼에 가는 길. 32개월 우리 아들이 지나가다가 '가니~~~!!!!!!!!!!!!!!!' 라고 외치며 흥분을 해서 보니 정말로 '가니' 가 있었다.
우리 둘째 아이가 집착적으로 애착을 보이는 만화가 '꼬마버스 타요' 다. 사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파란색 버스 타요인데, 우리 아들은 빨간색 버스인 '가니' 만을 그렇게 좋아한다. 일반버스는 1250원 내고 타는 파란색 타요의 형태이고, 급행버스는 1650원 요금의 빨간색 가니의 형태. 가니는 나 어릴 때로 치면 버스요금을 몇 백원 더 내는 대신 전 승객이 앉아서 갈 수 있는 '좌석버스' 인 것 같다. 우리 가족이 사는 대구에도 실제로 '가니' 버스가 존재한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엄마, 나 가니 sit down. 엄마, 나 가니 sit down."
서툰 말로 가니를 타자고 졸라대는 아들. 대프리카 35도... 날씨도 덥고, 아들의 짜증을 받아줄 기력은 더 없고... 신랑에게
"쭌이가 버스 타자는데 버스 탈까? 그냥 한 바퀴 돌고 올까? 얘 또 떼쓸텐데~ 버스 에어컨 나올텐데 걍 한바퀴 돌고오자."
"오케이."
그래서 대구에 산지 5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식구는 버스를 타보았다. 타자마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숨통이 트이고, 코로나 때문인지 원래 손님이 없는건지 승객이 한 명도 없어서, 우리 가족을 위한 전세버스 인양 이 자리에도 앉아보고 저 자리에도 앉아보고 자리를 골라보다가 마침내 온 가족이 맨 뒷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탑승하고 나서야 노선표를 보니 대구 중심지 '시내'로 가는 버스여서, 간만에 젊은 친구들이 많은 시내에 가서 사람 구경도 좀하고 점심도 먹기로 했다. 30분 남짓의 버스 여행 시간 동안 우리 아들은 의자 손잡이며 정지 버튼 따위를 정성스레 문지르며 세상 다 가진 행복한 표정으로 버스 여행을 즐겼다. 아들의 신난 에너지가 온 가족에게 전해져선지 큰 아이도 우리 부부도 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시내에 내리자 대프리카 무더운 날씨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를 오래 걷는 것이 불가능해보였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띄는 냉면집으로 직행했다. 아이들이 냉면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냉면집에서 외식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왠걸. 호로록 호로록 냉면을 얼마나 잘 먹는지. 신 것을 싫어하는 예민이 딸이 신맛 나는 냉면 국물을 거부해서, 냉면을 시키면 서비스로 나오는 고기육수에 냉면을 담갔다 먹였더니 정말 잘 먹었다.
이렇게 무난하게 한 끼를 잘 해결하고 교보문고에 가서 책도 좀 구경하고, 같은 건물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와 디저트도 야무지게 챙겨먹고 집에 갈 버스노선을 알아보고 있는데 딸이 이번에는 '메트' 가 타고 싶다고 했다.
"메트가 뭐야?"
"엄마 우리 메트 타봤잖아. 메트 기차. 우리 저번에 타봤잖아."
아, 지하철을 말하는 것 같았다. 검색해보니 타요 만화 중 지하철 캐릭터 이름이 '메트' 였다.
그래서 우리는 메트를 타고 집에 가기로 했고,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딩딩딩~~~~' 소리를 내며 마침내 지하철이 터널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등장하니 우리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메트~~~~~~~~~~' 라며 무슨 세계적인 관광지에 온 여행객 같은 액션을 취했다. 지하철 안에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 자리 저 자리, 이 칸 저 칸 옮겨가며 지하철 여행을 즐겼다. 대구 지하철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게 참 다행이었다.
하루종일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라 아이들이 얼마나 에너지를 썼는지, 집에 와서 '소스 안 바른' 돈가스를 구워주니 밥을 한 그릇을 뚝딱하고, 씻자마자 골아떨어진다.
아이들 덕에 우리 부부도 대구와서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타 본 것 같다. 자연친화적 환경으로 둘러싸인 호주 출신이라, 네온사인 즐비하고 높은 빌딩이 들어찬 도심지 분위기를 선망하는 '시티보이' 인 우리 신랑도 대구 시내 구경이 무척 즐거웠던 듯 했다. 운전걱정 없이 식사 중에 맥주 한 잔도 할 수 있고 너무 좋다며 종종 주말에 버스타고 시티투어를 다녀오자고 했다.
너무 애쓸 필요없다. 사실 아이는 큰 걸 바라지 않는다. 아이가 이끄는 대로만 따라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