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고 걸으면 7세 딸이 항상 묻는다.
"엄마, 달님은 왜 자꾸 나만 따라와?"
"달님이 너 소원 들어주시려고 그러지."
"달님이 소원 안 들어주던데?"
"그래? 무슨 소원 빌었는데?"
"엄마가 나한테 화내지 말고 소리 지르지 말게 해달라고 저번에 빌었는데 엄마는 계속 나한테 화내잖아"
".....그래? 오늘 다시 한번 빌어봐. 엄마가 달님한테 전화를 못 받았어. 오늘 다시 빌면 달님이 엄마한테 전화와서 똑바로 이야기 해주실거야. 깜빡 하셨나봐."
다음 날 아침, 그렇지않아도 착잡한 마음으로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금쪽같은 내 새끼 라는 티비프로에서 오은영 박사 가 우는 짤을 보고 클릭을 눌렀다가, 그 자리에서 그 편 거의 전부를 한참을 앉아서 다 봤다.
6세 첫째 아들과 7개월 둘째를 키우고 있는 경상도 엄마. 엄마가 둘째가 아직 많이 어리니 하루하루 일상이 얼마나 고단하겠느냐만은 첫째의 행동 하나하나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아이에게 늘상 굳은 표정으로 명령조로만 말하는 엄마를 보고 모두들 경악했다.
엄마가 이렇다보니 아이는 매사에 어른들 눈치만 보는 아이가 되고 엄마아빠를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엄마아빠가 원하는 쪽의 선택을 하고 있다. 6세짜리가 이미 남의 눈치를 보며 의사결정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패널들이 속상하다고 울고 엄마를 나무라고 있는데 이를 지켜보는 나는 도저히 이 엄마를 마냥 나무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이 엄마, 나와의 싱크로율 무엇?
경상도 사투리 특성상 말이 짧고 간결하며, 목소리가 워낙 날 때부터 크고, 직업 선생인지라 무슨 말을 해도 기승전결 구조가 있어야되고 원인을 찾아 분석하는 버릇이 있는 나를 보면 어른들도 나의 말투가 사무적이라거나 냉정하다라는 피드백을 많이 주는 편이다.
내 아이는 나를 어떻게 느낄까에 대해 지난 밤의 달님 사건이 이 티비 에피소드와 겹쳐지면서 상당히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둘째를 낳고 육아가 힘들어서, 코로나 땜에 먹고 살 방법을 찾느라 바빠서, 엄마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의 나의 성장을 위해서, 내가 바쁘게 무언가를 하는 것은 다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니까 .....................라는 수 많은 구차한 변명들을 동반하여 자기합리화를 해가며 나 역시 [금쪽같은 내 새끼] 에 나오는 엄마처럼 행동해오지 않았나...
유독 유순하고 낯가림이 심해 너무 얌전해서 항상 동생에게 맞고 밖에 나가서도 맞고 돌아올까봐 누가 너를 공격하면 너도 때리라고 가르칠 정도로 소심함이 걱정이던 첫째였다. 그런 우리 딸이 요즘은 소리지르고 말대답을 하고 동생을 다소 격하게 때리기도 하고
"나 화가 나! 기분이 안 좋아"
라면서 종이를 찢거나 자기 몸을 꼬집기도 하고 물기도 하는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 때문에 딸의 욕구 불만에 대해 안그래도 걱정을 하던 차였는데 오늘 [금쪽같은 내 새끼] 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이다.
티비를 통해서 거울을 본 기분이다.
오은영 박사가 우리 가족의 하루를 cc tv로 돌려보면 뭐라고 피드백을 주실까? 우리 딸이 안타까워서 우시지는 않을까? 과연 나는 나의 일상을 찍은 영상을 내 눈으로 끝까지 다 볼 수 있을까?
.
.
달님에게 온 전화를 이번에는 제대로 받아야겠다. 사실 나에게 주어진 어떤 역할 보다도 엄마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내 딸, 내 아들이 나 하기에 따라서 난폭한 성격을 가질 수도 있고 온순한 성격을 가질 수도 있고, 나 하기에 따라서 이 사회를 돕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이 막중한 책임을 가진 역할을 별 생각없이 나이가 차고 결혼했다고 덜컥 떠맡아버렸다. 어디가서 시간당 3만원 받는 일은 그렇게 책임을 다하고 최선을 다 하면서 한 인간의 삶의 뿌리를 디자인하고 길러내는 일에는 하루하루 너무 무성의 하지 않았나 후회가 들었다.
남들과의 약속은 푼 돈을 받고 그렇게 철저하게 잘 지켜내면서 우리 딸, 내 가족, 내가 낳은 나의 일부인 내 새끼와 한 약속은 어찌나 그렇게 쉽게 무시해버렸는지 너무나 미안했다.
이번에는 달님에게 온 전화를 제대로 받고, 달님이 이 못난 엄마가 못 미더워 더이상 우리 딸과 나를 감시하러 졸졸 따라다니지 않도록
>화내지 않는 엄마
>웃는 엄마
>하루 3번 안아주는 엄마(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하원 후에 버스에서 내렸을 때, 밤에 잠이 들 때)
이 정도는 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 지겨워죽겠는 그 놈의 다짐을 또 해본다.
우리 딸 엄마가 미안해. 앞으로 더 잘할게...
나중에 네가 이 글을 보면 너가 살다가 엄마가 미운 순간이 와도 엄마가 너를 잘 키우려고 고민하는 엄마 였다고 위로 삼고 엄마를 덜 원망하길 바란다.
라고 쓰고 또 자기방어나 하는 못난 에미임을 자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