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방금 아기 낳았어요. 밥을 안 준다고요?

호주 출산기 5

by 강점코치 모니카

진통이 시작된 자정. 날이 밝기를 기다리면서 마지막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인터넷 맘 카페에서 진통을 겪는 과정을 잘 이겨내려면 입원 전에 꼭 밥을 든든히 먹고 가라고. 힘이 있어야 힘을 준다고. 입원 전에 꼭 식사를 하라고 강조했다.


6시가 다가오자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오늘이 디데이인 것 같다고. 준비하고 병원에 가자고 했다. 평소에 행동이 굼뜬 우리 남편인데 그 순간만큼은 침대 스프링이 남편을 튕겨낸 것 마냥 벌떡 일어나 준비를 하고 차에 탔다. 내가 안전벨트를 여미며 말했다.


"우리가 다시 집에 돌아올 때는 셋이 돼서 오는 거야."


우리 남편은 아무 대꾸 없이 비장한 표정으로 시동을 켰다.


호주는 주거지역 중심의 동네 안에는 24시간 영업을 하는 상점이라고는 대형 프랜차이즈 편의점뿐이고, 상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맥도널드나 버거킹 같은 패스트푸드점 밖에 없다. 나는 남편에게 인터넷 맘 카페 사이버 친구들이 밥심이 있어야 아기 낳을 수 있다고 했다며 맥도널드에 들러 맥모닝을 먹고 가자고 했다.


그때도 진통이 10분 내의 간격으로 올 때여서 남편이 테이크 아웃해 온 메마른 맥모닝을 한 입 베어 물고 '아흑.' 진통하고 또 한 입 베어 물고 '아흑.' 진통하며 차 안에서 기어이 맥모닝 한 개를 다 먹었다. 원래 긴장하면 식음을 전폐하는 우리 남편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진통하며 꾸역꾸역 음식을 입에 욱여넣는 나를 보며 '꼭 이렇게 까지 해야 되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총 20시간, 입원 후 11시간, 양수를 터트리고 본격 힘주기만 4시간이나 하는 대장정을 거쳐 자연출산 방법인 수중분만에 실패하고 '현대의학의 축복' 흡입기의 도움을 받아 저녁 7시 35분에 딸을 낳았다. 아기를 낳자마자 탯줄도 자르지 않고 아기를 내 가슴에 안겨준 '캥거루 케어' 덕에 내 몸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아기가 탯줄을 자르고 몸무게를 재고 후처치를 하는 동안 간호사 한 분이 나를 욕실로 데려가 샤워를 도와주었다. 모델 변정수 님은 출산 후 일주일 동안 머리도 안 감고 몸조리를 했다는데 바로 샤워를 하러 가도 되나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일단 이 찝찝함을 씻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서 간호사의 도움으로 대충 샤워를 했다. 서있을 힘도 없어 엉거주춤 간호사가 뿌려주는 물을 맞고 있는데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배가 눈에 들어왔다. 나의 피부가 마치 뜨겁게 달궈진 불판에 닿아 순간적으로 쪼그라든 소막창 표면 같았다. 감정적으로 너무나 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남편이 아기를 안고서 눈에는 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아기를 혼자 안지도 못하는데 우리 남편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아기를 들었다 놨다 아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평소에 아기들이나 어린이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스타일인데 벌써 키워본 듯 아기를 케어하는 남편이 신기했고 아기가 나에게 오면 어쩔 줄 모르는 나 스스로의 모습에 당황하던 중이었기에 그런 남편을 보니 무척 다행스러웠다.


간호사가 나에게 침대에 앉아 수유를 해보라고 했다. 이제부터 수시로 아기가 젖을 찾을 테니 수유 자세를 잡아주겠다고 했다. 아이가 나의 배꼽 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아이를 가슴 쪽으로 올려야 되는데, 내 배 쪽에 있는 아기를 어떻게 안아서 15센티미터 남짓 위쪽으로 이동시켜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간호사님께 아기를 조금만 위로 올려달라고 했다. 조금만 잘못 만져도 아기가 부서질 것만 같아서 도저히 쉽사리 손댈 수가 없었다. 간호사가 아기를 가슴 가까이로 옮겨주자 목도 못 가누는 아기가 갑자기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듯하더니 스스로 젖꼭지를 콱 찾아 물고는 힘껏 빨아대기 시작했다. 내 팔 길이도 안 되는 아기가 빠는 힘이 얼마나 센지, 나의 온 육체와 정신이 그 작은 아기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 강렬했던 첫 수유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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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유를 마치고 이제야 나도 남편도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간호사에게 물었다.


'저희 식사는 언제 나오나요?'

'네? 식사요? 저녁시간은 5시 30분이에요. 지금은 저녁시간이 지나서 식사가 제공되지 않아요.'

'네? 저 방금 아기 낳았잖아요. 저녁 시간에 진통하고 있느라 밥을 먹을 수가 없었잖아요. 밥이 없다고요?'

'식사 시간이 지난 경우에는 따로 준비해오셔야 돼요.'


9시였다. 브리즈번 시내 한복판에 가더라도 술집만 열려있을 터였고 따뜻한 음식을 살 곳은 없다. 병원 앞 주유소에 24시간 버거킹(호주에서는 상표권 때문에 '헝그리 잭'이라고 부른다.)이 딸려있었다.


당황한 남편이 햄버거를 사러 갔다. 출산 날 아침식사는 맥모닝. 저녁식사는 버거킹. 헛웃음이 나왔다. 철저하게 사전조사를 한다고 했는데 헛똑똑이였다. 병원에서 산모 식사를 안 챙겨줄 거란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온병에 미역국이라도 싸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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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zenghoong.blogspot.com/2011/03/not-such-good-day.html https://www.hungryjacks.com.au/h



이동식 아기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든 아기와 같이 병실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아기를 안을 줄도 모르는데 아기가 갑자기 울면 어쩌나 초조해하고 있는데 남편이 '헝그리잭스 스터너 Hungry Jack's Stunner' 세트를 사 왔다.


당시 행사 중인 세트메뉴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선데이 아이스크림이 세트에 들어있어서 전에 사 먹어본 적이 있는 메뉴였다. 고생한 아내가 좋아하는 걸 떠올려 남편이 마음을 담아 고른 메뉴였다.


아이스크림과 아이스콜라와 튀긴 감자와 버거를 보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버거를 먹었다. 지금도 그 버거의 맛을 묘사하려니 복잡한 마음이 되어 먼 산을 보게 되는데, 무엇보다 아직도 놀랄 일이 더 남아있는 이 하루가 끝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다.


버거를 다 먹고 후렌치 프라이 몇 개를 우물우물 씹고 있으니 선데이 아이스크림이 내 마음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남편은 달링이 좋아하는 선데이 아이스크림 사 왔는데 왜 먹지 않냐고, 하루 종일 땀 흘리고 목마르지 않냐며 왜 콜라를 안 마시냐고 재차 물었다.


한국의 몸조리에 대해서 내 딴엔 설명을 한다고 했는데 남편은 실감도 나지 않고 먼 일의 이야기인 듯 흘려들은 듯해서 그냥 한국인들은 출산 직후에 찬 것을 먹으면 몸에 안 좋다고 생각해서 먹고 싶지 않다고만 하고 식사를 끝냈다. 자신의 성의가 무시받은 것 같은 느낌인지 신랑이 의기소침해하는 게 보였는데 '한국의 역사' 강의를 지금 하기에는 기운이 없어서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식사를 대충 마치고 9시 30분쯤 병실로 옮겼다. 6인실이었는데 각 침대 자리를 커튼으로 구분해놓은 곳이었고 나처럼 출산을 하고 아기와 같이 머무르는 산모도 있었고 출산을 앞두고 지금 한창 진통 중인 산모도 있었다. 병실에서 내 침대를 지정받고 신랑이 짐을 놓자마자 동행한 간호사가 말했다.


"밤 8시 이후로 보호자는 머무르실 수 없습니다. 퇴실하셨다가 내일 오전 8시에 다시 방문 가능합니다."


"네? 지금요? 지금 남편이 집에 가야 된다고요? 저랑 아기랑 밤을 보내야 돼요? 저 아기 안을 줄도 모르는데요."


"괜찮아요. 잘하실 거예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저 벨을 누르세요. 간호사실에서 저희가 바로 올 거예요."


그렇게 병실에 아기와 나 둘이 남겨졌다. 커튼 너머로 진통 중인 산모가 끙끙 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반대편 커튼 너머로는 다른 산모의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오전 8시까지 10시간은 남은 것 같은데. 나는 이 밤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아기가 울면 어떡하지.


36시간째 잠을 못 자고 있는데도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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