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남편은 뭐가 좋아요?

그놈이 그놈이다

by 강점코치 모니카


"외국인 남편은 뭐가 좋아요? 뭐가 달라요?" 국제결혼을 했다고 하면 으레 받는 질문이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묘사된 이미지를 떠올리며 서양인 남자는 소위 젠틀하고 스위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요즈음엔 육아 프로그램에서 다문화 가정 아빠들이 적극적으로 육아까지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외국인 남편은 무언가 다를 거라고 예상하는 것 같다.


호주 출신인 우리 남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님 집을 나와서 자취를 했다. 형과 둘이 산 적도 있고, 호주를 떠나 대만, 프랑스에서도 몇 년씩 혼자 살아봤기에 매 식사 때마다 '오늘은 뭘 먹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던 사람이다. 한번 날 잡고 제대로 먹어보려 손수 요리라도 하는 날엔, 저녁상 한 번 차리고 나서 뒤따르는 뒷정리가 얼마나 귀찮은지 경험해보았기에 음식 사진만 봐도 요리한 사람의 수고로움을 대략 읽어낼 줄 아는 눈도 생겼다.


남자 혼자 오래 살다 보니 빨래를 제 때 하지 않아 입던 팬티를 며칠 씩 입은 적도 있고, 구겨진 셔츠를 중요한 식사자리에 입고 나가서 부끄러웠던 일, 빨기만 하면 흰 옷이 회색이 되는 특이한 기술을 가졌음을 깨닫고 흰색 옷은 절대 사지 않는 습관. 단추 하나가 떨어지면 어머니가 방문하시기 전까지 그 옷은 못 입는 옷이 되는 이런 사소한 경험들. 이렇게 '나 혼자 산다'로 체득된 경험들은 집안일이 얼마나 귀찮고 수고로운 일인지를 남편에게 뼛속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우리 남편 같은 경우와 달리, 한 남자가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살다가 아내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면 아무래도 집안일이나 살림의 노동가치에 대해 속속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대상이 엄마에서 아내로 바뀌었을 뿐, 집에 오면 한 여자가 남편에게 밥을 차려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감사해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해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으면, 매일 저녁 부엌에서 밥을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를 하면서 꼬박 2시간 이상을 바삐 몸을 놀려야 하는 그 노동의 가치를 오롯이 제대로 알기란 아무래도 어렵다. 어릴 때부터 저녁시간에 여자 1명은 늘 부엌 그 자리에서 서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아온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인데 그 대상이 엄마에서 아내로 바뀌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호주인인 우리 남편과 산 지 12년 동안 내가 저녁을 직접 요리해주는 날엔,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식사 후에 "Thanks for the dinner. It was great."이라는 인사를 들었다. 그냥 외국인들은 '나이스' 하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밥을 안 차렸으면 우리 남편이 무언가를 요리했어야 하거나, 나가서 음식을 사 오거나, 배달을 시키거나... 자기가 저녁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했었어야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저녁상을 준비해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또한, 우리 남편은 맞벌이를 하든 하지 않든 육아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나는 첫 아이를 낳고 12개월 동안 살림과 육아만을 했는데 그때도 남편은 항상 '나는 늘 하던 대로 밖에 나가 일을 하지만, 너는 하루 종일 혼자서 처음 키워보는 아기를 키우니 나보다 더 힘들고 답답할 거야.'라고 나의 지친 심신을 위로해주었다.


맞벌이를 하고 아이가 둘이 된 지금은 더더욱 항상 내가 남편 자신보다 더 많이 일을 한다고 인정해주고 남편이 할 수 있는 것은 도와주려 애쓴다. 친정, 시댁의 도움 없이 전혀 연고가 없는 도시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우리 부부는 의지할 곳이 서로 밖에 없는데, 내가 외출 약속을 잡을 일이 생겨 상의를 하면 단 한마디 군소리 없이 '오케이!' 하고는 아이들을 돌보아준다.


세 끼를 과자를 먹이든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여주든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들의 목숨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돌보아주면서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기꺼이 나의 외출과 바깥 활동을 지지해준다. 그래서 남편이 잡다한 일을 많이 하는 나에게 항상 고마워하듯이, 나 역시도 외출 약속을 잡을 때 눈치 볼 일 없게 만들어주는 남편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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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920486410.jpg?type=w1 빽바지 입고 필드에 나간 주한 외국인 노동자 우리 남편


지난 주말 올여름 처음으로 필드에 나가 골프를 치고 돌아온 날에는 남편이 큰 용기를 내어 결심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나 백바지 사면 당신이 좀 빨아줄 수 있어? 오늘 골프장에 가보니 모든 사람들이 흰색 긴 바지를 입고 있는데 쏘쿨해보였어. 검정 반바지를 입은 사람은 나 밖에 없었어."


흰색 옷을 스스로 관리할 자신은 없지만 골프장에서 쿨~해 보이고 싶은 이 남자. 너무나 결연한 표정으로 흰 바지의 세탁을 아내에게 정중하게 부탁하는 이 남자. 마음과는 달리 집안일에 소질이 없고 타고나기를 더럽게 타고 난 남편이라 쓰레기 버리는 것과 빨래 널기 외에는 모든 집안일을 내가 맡고 있기에, 남편이 그냥 말없이 흰 바지를 사서 입고는 빨래 바구니에 던져놓았어도 자연스레 내가 빨아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부러 정중히 선 요청을 해주니 새삼 남편이 고마워진다. 남편의 더러움 때문에 별로 깨끗하지도 않은 내가 살림을 혼자 다 하면서도 억울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쯤 되면 우리 남편의 페이스에 내가 말려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입만 놀려서 말로 천냥 빚을 다 갚는 우리 남편이 순한 양의 탈을 쓴 천재라는 내 친구들의 말에도 동의를 하게 된다.


사실 내가 나열한 우리 남편의 특징은 우리 남편이 외국인이라서, 호주 사람이라서 생긴 것들이 아니다. 한국 남자들도 우리 남편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고 신세대로 갈수록 가사를 분담하고 아이와 끈끈한 부자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들이 늘고 있다. 국적보다 결혼 전에 자취를 해 본 경험의 유무와 고마운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용기나 배려를 지닌 사람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더 큰 영향을 준다.


"외국인 남편은 뭐가 좋아요? 뭐가 달라요?"라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요즘 나는 이효리 이야기를 해준다. 결혼 전 2년마다 새로운 남자 친구를 사귀었던 다수의 연애경험을 지닌 이효리도 라디오스타에서 말했다. 결론은 '그놈이 그놈이다.'


이것은 반대로 여자의 경우에도 적용이 됨은 물론이고, 외국, 한국 할 것 없이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하고, 살면 살수록 세상사 위아 더 월드 'We are the world.'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몇몇 사례만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되겠지만 한국에서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사는 나의 경험을 보아도 결론은 '그놈이 그놈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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