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출산기 4
양수를 터뜨리고부터 힘주기에 들어갔다. 수중분만을 위해 욕조에 들어가 진통이 올 때마다 힘을 주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최정원 배우님처럼 드디어 나도 물속에서 우아하게 아기를 만날 수 있는 것 일까? 아픈 와중에서도 이제는 이 여정이 끝이 나려나 싶어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웬걸?
나는 수중분만이 맞지 않는 여자였다. 물속에서 힘을 주면 자꾸 한쪽 다리가 뜨는 것이다. 등을 욕조에 기대어 누운 자세로 힘을 줘도 다리가 둥둥 뜨고 자세를 바꾸어 엎드려서 힘을 주어도 계속 그랬다. 진통이 오는 타이밍에 맞추어 힘을 줄 때마다 항상 한쪽 다리가 떠서 자세가 흐트러지고 몸이 물 위로 둥둥 뜨는 것이다.
조산사는 수중분만은 나에게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하셨다. 수중분만 로망만을 바라보며 현대의학을 뿌리치고 버쓰센터로 온 나인데. 이건 무슨 경우인가.
나는 물 밖으로 나와서 여러 자세로 힘주기를 시작했다. 짐볼을 붙잡고 힘을 주기도 하고, 엉덩이 부분이 뚫린 의자에 앉아 용변을 보는 자세로 힘을 주기도 했다. 온갖 자세를 다 취하면서도 침대에 편안히 누워서 힘주는 것은 옵션이 아닌 듯했다. 침대에 바로 누워 출산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친 나는 가장 부자연스러운 출산 자세라는 산부인과 굴욕 의자에 누워서 출산하는 그림을 원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출산을 위해 산모가 입원을 하면 가장 먼저 속을 비우는 관장부터 한다. 장 속에 변을 미리 비워서 출산 중 불편한 상황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호주는 버쓰센터이든 일반 산부인과 병동이든 출산과정의 편의를 위해서 미리 인위적으로 약을 먹고 장을 비우지 않는다. 미리 푸룬주스(장 활동을 원활하게 한다는 자두 주스) 정도를 자주 마시라는 조언을 줄 뿐이다.
평생 만성변비에 시달려온 나는 출산 당시에도 숙변이 장에 가득 찬 상태였고 힘주기를 할 때마다 실수를 했다. 진통이 너무 심하면 부끄러운 거 창피한 거 전혀 못 느낀다던 선배 엄마들의 말과는 달리, 나는 그 아픈 와중에서도 내가 실수를 했고 남편이 보고 있고 이 참사를 처리해야 하는 조산사에게 미안한 마음, 수치심 굴욕감 등을 오롯이 다 느꼈다. 트럭이 배를 뭉개고 지나가는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미리미리 부지런히 푸룬주스를 원샷하지 않은 나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나는 의식이 깨어있는 한 감정도 살아있을 사람인 거다.
전 날 자정에 진통이 시작되었고 새벽 6시에 병원에 왔는데 시간은 저녁 6시를 넘기고 있었다. 나는 내가 뭐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진통이 오면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힘을 주다가 한 차례 진통이 지나가고 2분-3분 정도의 텀이 생기면 까무러치기를 반복했다. 뱃 속에서 아이를 41주나 키워놓았는데 초산인 산모가 그렇게 큰 아이를 쉽게 나을 리가 만무했다. 아내가 고통 속에서 까무러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남편도 할 짓이 아니었다.
쪼그려 뛰기 하는 자세로 쭈그려 앉아 힘을 주는데 조산사가 환희에 찬 표정으로 아기 머리카락이 만져진다며 거울을 가져와 바닥에 놓고는 나에게 아기 머리를 보라고 아기 머리카락을 만져보라고 했다. 나는 기력이 없는 와중에도 '노노노...'라며 경악했다. 조산사는 우리 남편에게도 거울로 질 입구에 드러난 아기의 머리를 보라고 했는데 우리 남편은 손사래를 치며 기함했다. 우리 남편은 옆에서 누가 토를 하면 자기도 바로 같이 토를 할 정도로 비위가 약한 사람이다.
자연출산이란 이런 것이구나.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은 친구의 호주인 남편이 부인의 소중하고 경이로운 출산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비디오로 찍어놓고 간직하고 싶어 했다던데, 출산 중에 자궁문에 걸린 아기의 머리카락을 만질 수 있고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그 순간을 경이롭다고 생각하며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부류는 그런 사람들인 거 같았다.
확실히 우리 부부와 자연출산은 정서상 괴리가 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수중분만' 에만 집착하여 덜컥 겁 없이 자연출산을 선택한 내 잘못이었다. 출산은 부부가 함께 하는 과정이기에 나의 성향 못지않게 남편의 성향도 고려해가면서 신중하게 그 방식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남편의 성향은 커녕 심지어 나에게도 맞지 않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미칠 것 같은 고통이 반복되는데 통증보다 더 참기 힘든 것이 이게 도대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8시까지 견디라면 견디겠고, 앞으로 50번이면 50번, 100번이면 100번 진통을 더 맞이해야 한다고 누가 데드라인을 알려주면 견디겠는데 새벽 6시에 들어와서 12시간 이상을 이러고 있으니 과연 이게 끝이 나긴 날까?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양수를 터뜨리고 본격적으로 힘주기만 4시간가량 했을까. 저녁 7시가 넘었다. 내가 탈진 상태로 맨바닥에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자 조산사가 나를 달래다가 야단치다가를 반복했다.
"산모님 자꾸 이런 식으로 누워계시면 일반 병동 가서 의사가 버큠(흡입기)으로 아기를 빼야 돼요. 자연출산 못 하게 된다고요!."
일반적으로 자연출산을 지향하여 버쓰센터에 온 가족들은 끝까지 자연출산을 포기하지 않기를 원하기에 조산사는 나에게 자연출산을 못하게 될 거라고 겁을 주어 나를 일으켜 세울 생각이었던 것 같다.
'뭐? 버큠? 의사가 아기를 빼준다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일반병동 보내주세요. 저 자연출산 안 해도 돼요. 조산사님 실망시켜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그런데 저 일반병동 보내주세요. 버큠으로 아기 빼주세요. 저는 더 못해요. 더 못해요. 여보 나 병원 갈래. 병원 보내줘. 의사가 아기 빼준데."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를 온몸으로 흘리며 사정을 했다. 조산사는 당황하며 포기하면 안 된다고 할 수 있다고 나를 달래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남편이 나서서 일반 병동에서 출산을 하고 싶다고 어필했다.
일반 산부인과 병동으로 이동하기로 결정이 내려지고 조산사들이 분주하게 전화 통화와 서류 작업을 이어갔다. 진통이 오지 않는 순간은 멀쩡하기에 30미터 정도 떨어진 일반 산부인과 병동으로 걸어서 이동하라고 했다.
진통 간격이 너무 가까운 출산 임박의 상태라 3걸음 이동하고 서서 소리 지르고 3걸음 이동하고 서서 소리 지르며 병원 전체 사람들의 눈이 나에게 쏠리는 상태로 겨우겨우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복도 반대편 산부인과 분만실로 이동했다.
아이가 너무 커서 출산이 어려운 것으로 파악했고 버큠(흡입기)으로 출산을 준비하는데 보통 산부인과에서 분만 시에 흡입기를 이용하는 경우 산모는 무통주사를 맞은 상태이므로 하반신이 무감각한 상태이다. 그래서 흡입기로 출산을 하거나 향후 처치 중에도 아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데 나는 생으로 그 모든 과정을 오롯이 견뎌야 했다.
분만 준비를 할 때 고통스러워 내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자 무통주사를 안 맞은 산모에게 흡입기로 분만을 진행하는 것이 처음인 의사도 당황해했다. 젊은 여의사가 분만 준비를 멈추고 내 쪽으로 몸을 옮겨 단호하게 말했다.
"많이 아프실 거예요. 알아요. 그런데 그렇게 온 병원 사람들 다 쳐다보라고 소리 지르고 몸을 움직이면 더 지체돼요. 참으세요. 참으시고 바로 출산합시다. 견디세요."
다시 분만 준비가 진행되었고 이를 악 물고 흡입기가 삽입되는 과정을 견뎠다. 분만 준비가 끝나고 딱 두 번 힘을 주고 아기를 낳았다. 저녁 7시가 넘어서 일반 병동으로 이동이 결정이 되었는데 분만실로 옮기자마자 몇 분내로 바로 출산한 것이다. 7시 35분이었다.
낳고 보니 우리 딸은 3.84kg. 골반이 작은 내가 자연출산으로 낳기에는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간호사가 출산하자마자 탯줄도 자르기 전인 핏덩이 아기를 그대로 나의 가슴에 척 안겨주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아기를 껴안았다.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혹은 책에서 읽었던 드디어 기다리던 아기를 만났다는 기쁨이나 환희 같은 감정은 일절 느낄 수 없었고 '아 이제 끝이구나. 이제는 진통이 또 오지 않겠구나.' 안도감에 아기를 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남편도 엉엉 울고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남편은 '아, 이 여자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울었다고 했다.
남편이 탯줄을 자르고 후처치가 이어졌다. 입원실이 준비될 때까지 분만실에서 잠시 대기하라고 했다. 버쓰센터에서 출산을 했으면 출산하던 그 방에서 하루 밤을 묵고 퇴원을 할 수 있는데 나는 일반병동으로 넘어왔으니 일반병실에 입원해야 된다고 했다.
시간이 밤 9시가 다가오고 있었고 안정을 찾고 나니 그제야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은 우리 부부는 배가 고팠다. 간호사에게 저녁 식사는 언제 나오냐고 물었더니 병원 저녁시간은 5시30분 이고 지금은 저녁시간이 지나서 식사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밤 9시였고 호주는 거의 모든 동네 식당은 저녁 영업을 하지 않는다. 밤 9시에 문을 연 곳이라고는 24시간 햄버거 프랜차이즈 가게나 편의점뿐이다.
"저 방금 아기 낳았어요. 밥을 안 준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