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출산기 1
만 30세가 넘어서니 슬쩍 아기 생각이 났다. 출산은 꼭 친정이 있는 한국에서 하고 싶다는 기존 계획이 있었지만 남편의 공부가 마무리될 즈음 '호주에서 아이를 낳고 귀국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호주는 영주권자 이상 거주자에게는 공립병원 서비스가 모두 무료이고 출산축하금 제도도 잘 되어 있다. 이런저런 구실을 엮을 수는 있지만 사실 그때 왜 갑자기 아기를 낳고 싶어 졌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남편을 만나 이미 10년 가까이를 함께 하였으니 언젠가는 우리도 자식을 낳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지만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나니 설레기만 했다. 남편과 함께 계획을 세우고 임신을 시도한 첫 달. 진작에 임신테스트기 3개 들이 한 박스를 사놓고 생리 예정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유명 인터넷 맘 카페에서 너무 일찍 테스트를 하면 어차피 결과가 정확히 나오지 않고 임신테스트기(임테기)만 낭비할 수 있으니 꼭 생리 예정일까지 기다렸다가 아침 첫 소변으로 테스트를 하라고 조언을 받은 터였다.
드디어 생리 예정일. 디데이가 왔다는 생각에 새벽 3시에 절로 눈이 떠졌다.
'너무 일찍이긴 한데, 지금이 첫 소변이 맞지. 테스트기를 해볼까.'
선명한 두 줄이 보였다. 바로 자고 있는 신랑과 당시 같이 살고 있던 나의 남동생도 모두 깨워 소변에 젖은 임테기를 들고 방방 뛰며 임신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생리 예정일까지 기다렸으니 임신 4주 차 이상이 되는 것이기에 한국 같았으면 바로 다음 날 산부인과로 달려가도 피검사와 질초음파로 아기집을 발견하여 의사 선생님이 임신을 확인해주실 테지만 호주에는 종합병원 외에는 산부인과가 따로 없다. 보통 산부인과가 아닌 가정의학과를 방문하여 피검사를 받고 가정의학과 의사(GP)가 변화된 혈액 수치 결과로만 임신을 확인해준다.
호주는 개인적으로 사립 보험을 들어 사립병원을 다니지 않는 한, 공립병원을 이용하는 일반 산모들은 임신 후 첫 초음파를 12주에 볼 수 있다. 12주에 첫 초음파 검사를 하고 20주가 지나서 기형아 검사를 할 때 한번 더 초음파를 볼 수 있고, 산모가 원하면 이때 아기의 성별도 알 수 있다.
당시에 한국에 있는 나의 친구들과 친언니도 임신 중이었어서 서로의 임신 과정을 SNS에 공유했는데 그들은 매 2주마다 산부인과 검진을 다녀와서 작은 점이 찍혀있는 아기집 초음파 사진부터 '젤리곰'이라 불리는 하리보 모양 태아의 초음파 사진들을 업로드했다.
SNS에 올라오는 친구들 태아의 초음파 사진들을 보니 우리 아기는 어떤 모습일지, 나의 뱃속에 정말 아기가 있긴 있는 건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드디어 12주가 되었다. 임신 확인을 받으러 갔었던 회사 건너편에 있는 작은 가정의학과 말고 '분만'과 '부인병'을 전문으로 다루는 산부인과 종합병원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한국이었으면 임신에 대한 축하를 이미 한껏 받고, 임신했다는 사실에 이미 어느 정도 적응한 후 안정기에 접어드는 시기가 12주인데, 우리 부부는 12주에 처음으로 아기를 만나러 산부인과에 갔다.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방문하는 큰 규모의 종합병원 방문에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초음파실에 입실하여 각도가 조절되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산부인과 영상의학과 직원 분이 초음파기기를 준비시켰다. 과연 이 안에 생명체가 있긴 있을까 싶은, 겉보기엔 임신한 티가 전혀 나지 않는 내 배를 직원 분이 이리저리 누르니 이내 화면에 우리 아기가 나타났다!
친구들 SNS에 올라온 사진들에서 다 작은 점이나 젤리곰 같은 모양을 한 태아들만 보았는데 우리 아기는 팔도 있고 다리도 있고 엄청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호주에 있는 베트남 식당이나 일본 식당에 가면 전시되어 있는 복을 부른다는 고양이 인형처럼 한쪽 팔만 위아래로 계속 흔들고 있었는데 우리 남편은 아기가 우리에게 '헬로'라고 인사한다며 설레발치고 있었다.
'내 뱃속에 아기가 있긴 있는 거야?.' 의구심이 들던 즈음에 이렇게 온몸으로 생명의 기운을 뿜는 아기를 직접 보니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는데, 간호사님이 딸깍 하고 버튼을 하나를 누르니 갑자기
'쿵쿵쿵쿵쿵!!!'
우리 아기 심장소리가 들렸다. 아기 심장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나와 괜히 멋쩍어 내 옆에 서있는 남편을 보았다. 평소에 감정 기복이 없기로 유명한 우리 남편도 이미 삼지창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그런 남편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아... 우리 아기가 저렇게 내 뱃속에 있구나. 그런데 내가 이런 소중한 아기를 품고서 어제 KFC 후라이드 치킨을 먹었다니... 전 날 저녁에 정크푸드를 디너 메뉴로 선택한 것을 갑자기 후회하며 아기에게 앞으로 내가 너를 더 소중히 품겠다고 약속했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습관적으로 매일 갖다시피 하는 엄마로서의 죄책감을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 바로 이때가 아니었나 싶다.
집에 돌아와 나의 SNS에 아기의 초음파 사진과 함께 임신 소식을 만인에게 알리고 한껏 축하를 받았다.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확인했을 때 그 느낌은 이전과 완전히 다르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의 파워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제야 정말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생긴다는 것이 진정으로 실감이 나서 딸과 아들의 이름을 모두 지어보았다.
일반적으로 여자아이 영어 이름 '스카이 '는 Skye로 철자를 쓴다. 이 마지막 스펠링 e를 붙일 것인지 말 것인지, e를 빼는 것이 많이 이상하거나 의아한 일인지에 대해 우리 부부는 한참을 논의했고, 우리 딸아이의 한국 이름은 '하늘' 이니까 영어로도 하늘을 뜻하게 하려면 e를 빼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아들 이름은 부부 모두 '제이든'이라는 이름을 좋아했는데 그 스펠링을 Jaden으로 할지 Jayden으로 할 것 인지 고민했다. 윌 스미스 아들이 Jaden 'without y'라서 우리 아들은 Jayden 'with y'로 지어주기로. 생각보다 쉬이 해결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임신 16주에 성별 확인이 가능하지만 호주에서는 20주가 넘어서야 다시 초음파를 볼 수 있으므로 우리 부부는 그 후로 오랫동안 제이든이 올 지, 하늘이가 올 지 궁금해하며 그 소중한 초음파 사진 한 장을 보고 또 보고, 아이들의 이름을 쓰고 또 써보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