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칠일이 필요한 이유.

by 강점코치 모니카

우리 아기가 태어난 지 3일째 되는 날. 퇴원 소식을 듣고 1시간 거리에 살고 계시는 시부모님이 방문하셨다. 아기가 밤에는 1시간 이상을 자지 않아 수유를 반복했는데 낮에는 3시간 이상도 잘 잤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얼굴도 보여주고 잘 놀아주면 좋겠는데 낮과 밤이 바뀐 건지 아기는 시부모님이 계신 동안 계속 졸려했다. 심지어 어머님이 소파에 앉아 본인 허벅지에 아기를 눕혀놓고 아기 팔만 잡고 죽 들어 올려도 아기는 가물가물 졸았다.


시부모님은 나에게 방에 들어가서 쉬라고 배려해주셨만 시부모님이 아기를 다루는 모습을 보니 불안해서 도저히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신생아를 오랜만에 보셔서 그러신 건지 아니면 원래 아기를 조심성 없이 다루시는 건지...... 신생아가 목을 가누지를 못하는데 누워있는 아기의 두 팔만 잡고 들어 올린다거나, 아기를 어머님이 안고 계시다가 아버님께 이동시키실 때도 목을 잘 받치지 않아 아기 목이 옆으로, 뒤로 휙휙 넘어가서 내가 몇 번이나 소리를 질러댔다. 시부모님이 계신 동안 찍은 사진들에도 아기 목이 휙휙 넘어간 순간들이 그대로 포착되어 있을 정도였다.


"악! 어머님, 아기 목이요! 목이요!"


라고 내가 계속 소리를 지르니 '아기가 그렇게 약하게 태어나지 않아.' 라시며 나를 유난스러운 초보 산모 취급하셨다. 우리 남편과 아주버님이 목이 꺾이지 않고 신생아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걸 보면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어머님 말씀대로 정말로 사람은 강하게 태어나기에 굳이 아기 목을 매 순간 받쳐주지 않아도 되는데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조심스러운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는 아주버님과 형님이 조카들과 함께 방문하셨다. 나보다 6개월 먼저 둘째 아이를 출산한 형님과 '결코 둘째라고 덜 아프진 않더라.'며 출산 이야기로 공감대를 나누었다. 8세인 첫 조카는 7개월 된 아기 동생이 있음에도 우리 딸을 정말로 이뻐해 주었다. 이 날 셋이서 찍은 사진은 정말 사랑스럽다. 그런데 이 사진에도 우리 딸은 자고 있다. 밤에는 그렇게 안 자는 아기가 손님들이 방문할 때는 그렇게 꿀잠을 잤다.



KakaoTalk_20201013_104845506.jpg 미녀 사촌사


그다음 날은 남편의 베스트 프렌드가 왔다. 아기 선물을 잔뜩 사들고 방문을 해주어서 여전히 고맙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매일 손님들의 방문이 이어지니 나는 사실 너무 피곤했다. 덩치로 따지면 서양 여자들에게 밀릴 것은 없는데 확실히 서양 여자들이 타고난 기초체력이 동양 여자들보다 센 건가. 그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출산하자마자 방문객들이 줄을 잇는 이런 문화를 유지하고 살아왔나 신기했다.


운이 좋아 큰 고생을 하지 않고 스무쓰 한 출산 과정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처음 해보는 육아에 수면부족 상태인 산모와 면역력이 약하고 출산 후 첫 며칠간은 잠만 자는 신생아에 대한 배려보다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건가?


우리 아기를 하루빨리 보고 싶고 우리 아기의 탄생을 축하해주기 위해 시간을 내어 방문해준 방문객들을 향해 이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배은망덕한 것인지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한국은 삼칠일 문화가 있어서 아이가 태어나고 3주 동안은 아기나 산모 모두 외부 접촉은 자제하는 편이니 나로서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시부모님은 시댁에 언제 아기와 같이 방문하겠냐고 여쭈시며 한 여름에 날씨도 좋은데 시댁 마당 수영장에서 아기와 첫 수영을 즐기고 싶다고 하셨다. 삼칠일 이야기를 드렸더니 본인이 수영장 관리를 얼마나 깨끗하게 하는데 위생상태를 못 믿어서 그러시냐, 너는 정말로 3주 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을 셈이냐고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셨다.


남편의 베스트 프렌드는 호주 사람이지만 직업이 병리사라서 그런지 본인도 아기들이 기초 예방접종을 다 마치지 않고 외출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했다. 생후 3-4일 된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러 가고 카페에 가는 주민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삼칠일이라는 한국문화가 매우 일리가 있다고 유일하게 나의 의견을 지지해주었다.


출산 전에는 호주에 살면서도 문화 차이라는 것을 피부에 와 닿게 느껴본 적은 별로 없고 특히 남편이나 시댁 가족들과도 문화 차이 때문에 크게 갈등을 겪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아기를 낳고 보니 매사가 '문화 차이'였다. 물론, 아이를 낳기 전 함께 한 10년의 시간 동안 남편과 나 우리 둘만의 사이에서도 종종 문화 차이로 촉발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압도적인 감정이 자발적으로 양보와 포기를 서로에게 불러일으켜서 갈등의 티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아기가 끼고 보니 이전과 같은 자발적인 양보와 포기가 없어졌다.


나는 도저히 2주 된 아기를 그것도 신생아를 다루는데 매우 부주의한 시부모님과 함께 수영장에서 놀게 할 생각이 없었고 우리 남편은 나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단지 내가 시댁에 가기 싫어서 대는 핑계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공공 수영장을 가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잘 관리하시는 집 수영장인데 뭐가 위험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내 주장을 끝까지 고집하여 아기와 삼칠일을 지켜내었다. 우리 집에 오는 방문객들을 막을 수는 없기에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좀비 같은 심신으로 손님이 오면 인사를 하고 간식거리를 내오고 똑같은 레퍼토리의 임신과 출산 과정 이야기를 손님들과 나누었지만 내가 아기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출산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 호주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던 나의 남동생이 방문했다. 유학 초기에는 나와 같이 살았는데 여느 남매가 그렇듯 결혼한 형제와 같이 살다 보니 다툼이 일어 독립해서 나간 터라 당시에 그다지 사이가 좋은 상태도 아니었다. 그래도 조카가 태어났으니 동생이 누나를 들여다보러 온 것이다.


우리 집에 들어선 남동생 얼굴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주루륵 주루륵 흘러나왔다. 그동안 지인들의 방문이 힘들었던 이유가 단지 수면부족이나 피곤함으로 인한 신체적인 불편함이 아니라 감정적인 불편함도 있었단 걸 그 순간 깨달았다.


첫 출산이라는 인생에서 큰 사건을 겪은 터라 나도 '내 사람' 에게 축하를 받고 싶었던 것이었다. 시댁 가족, 남편의 친구들, 남편의 친척들의 축하를 받는 것도 물론 감사하지만 한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는 내 인생에서 엄청난 사건을 겪고, 태어나 느껴보지 못한 출산의 고통도 느꼈으니 나도 이 진귀한 경험을 내 사람들과 내 언어로 나누고 위로받고 축하받고 싶었던 것 같다.


혼자 미역국을 한 솥 끓이고 친정엄마 없어도 남편과 산후조리 잘할 수 있다고 씩씩한 척을 하다 보니 스스로도 완전히 세뇌가 되었는지 나는 마냥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내 사람'인 내 남동생의 얼굴을 보니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마음이 몰려왔다. 갑자기 왜 눈물이 나는지 나 자신도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동생 역시 영문도 모르고 누나가 출산 후라서 호르몬이 날뛰나 보다 라고 생각했던지 잠시 있다가 떠났지만 동생의 방문이 당시 나에게 심정적으로 큰 힘이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날 이 후로도 백일 전까지 계속 울컥울컥 서러운 마음이 들곤 했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아기를 한국에서 낳을걸' 이라는 후회가 들다가도 한국에서 낳았으면 지금 이 기분을 남편이 느꼈겠다라는 생각에 공평하게 첫째는 호주, 둘째는 한국에서 낳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출산을 해놓고 둘째 낳는 걸 상상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너무나 황당했다.

나 '출산드라' 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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