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며느리

호주 시월드

by 강점코치 모니카

아들만 둘인 우리 시부모님. 첫째 아들은 불 같은 성격이라 부모님과 갈등이 있을 때 언성 높여 몇 마디 나누다가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는 스타일이고, 둘째 아들은 부모님이 뭐라고 하든 입 꾹 다물고 묵언수행하는 스타일이라 일방적으로 말하기에 지친 부모님이 말을 멈추시면 제 방에 들어가 조용히 문닫는 스타일이다. 나는 벙어리 둘째 아들과 결혼을 했다.


일반적인 한국 가정과는 다르게, (좋게 말하면) 자유방임주의 환경에서 자란 나는 살면서 부모님의 간섭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고 상당히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편이다. 우리 남편은 일반적인 호주 가정과 다르게 부모님이 (좋게 말하면) 섬세하게 케어해주시는 스타일 이시라 남편이나 아주버님은 매사에 부모님이 깊게 관여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예를 들면 내가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동안 서울에서 고향 집으로 몇 달 동안 내려가질 않은 적이 있다. 졸업식은 다가오는데 취업은 못한 상태이고 극도의 스트레스와 바닥까지 낮아진 자존감으로 가족도 그 어느 누구도 만나기 싫던 시절. 나를 배려해 상대방이 '취업은 어떻게 되어가냐' 라고 직접적으로 묻진 않더라도, 이미 눈에 가득 담고 있을 그 질문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거다.


나중에 언니에게 들은 바로는 그 당시 우리 가족들은 모이면 내 걱정으로 한숨을 지었다고 하셨다. 그래도 나에게 내색 한번 하지않고 전화 통화가 이루어지면 '밥 잘 챙겨먹고 다녀라.' 외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엄마가 취업 이야기를 묻지 않고 통화를 끝내주는 것이 그 때 당시에도 무척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전화를 끊을 때 마다 다음 번에는 내가 취업이 되서 방방 뛰고 소리 꽥꽥 지르며 엄마에게 먼저 전화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집에서 자란 내가 호주로 시집을 가서 우리 집보다 더 자유분방하고 쿨한 외국인 시댁을 만날 줄 알았는데 웬걸. 우리 시부모님 특히, 시어머니는 자식 일에 대해 모든 디테일을 알고 계셔야 되는 분이셨다. 자식이 취업 준비 중이면 믿고 기다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손수 이력서를 쓰시고 각 기업에 전송하셨다. 지금 우리 아주버님이 일하는 직장도 시어머니가 이력서를 전송해 면접으로 성사되어 얻게 된 직업이고, 나와 결혼하기 위해 한국에 오기 전까지 우리 남편이 했던 사업도 어머니가 셋업을 해주신 걸로 알고 있다.


방치에 가까운 자유방임을 시연하는 우리 친정과 과잉케어로 친절의 선을 넘는 우리 시댁을 섞어놓으면 완벽한 가정이 탄생할 것 같은데, 믹스커피 섞듯 두 집을 못 섞는 것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었다.


결혼 후 처음 5년을 신랑 공부 때문에 호주에서 살았다. 호주 물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 며느리가 들어왔으니 우리 부부에 대한 시부모님의 걱정과 관심을 빙자한 간섭과 통제는 대단했다. 우리 부부가 작은 커피사업을 위해 관련업체들과 미팅을 하거나 세무사를 만나고 오면 어머님은 그 사무실에 다시 전화를 걸어 협의 내용들을 다시 체크하시고 본인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은 전화로 수정을 하기도 하셨다. 나의 남편과 내가 함께 내린 결정이 다시 체크 받아지고 수정되는 경험들은 나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고등학교 졸업 때 부터 가족을 떠나 서울에서 혼자 힘으로 잘 먹고 잘 살아온 내가 한순간 스스로는 어떤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되는 존재,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남편에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머니의 행동에 하소연 하면 우리 남편의 대답은 항상 "우리 엄마가 우리 잘되라고 그러지. 나쁜 의도가 있는게 아니잖아.","우리가 한국에서 들어온지 얼마 안되었으니까 우리를 도와주려는 의도이시지 너의 기분을 상하게 하실 의도는 아니다." 라며 어머니 편만 들었다. 이 세상에서 고립된 느낌으로 가슴 속에 답답함이 쌓여가던 어느 날. 나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시부모님과 우리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의 불만을 시부모님께 엉엉 울면서 모두 말씀드렸다. 우리 나름의 플랜B 도 마련되어있고 실패를 한다고 해도 우리 부부는 그것을 이겨낼 준비가 되어있는데 시부모님이 사사건건 우리 앞에서 미리미리 방패막이 되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시니 실패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더 안전한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나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하며 설움이 복받쳐 눈물을 쏟아놓았다. 오랜 대화 끝에 시부모님이 앞으로 우리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대화가 슬슬 마무리 되는 듯 보였는데 쌓아놓았던 감정들이 홍수처럼 터진 나는 계속해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대화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는데 며느리는 혼자 계속 울고 있다. 시부모님은 이 상황이 적잖이 불편하고 당황스러우신 듯 보였다. 어색한 정적만 흐르는 중 매사에 해결사를 자청하시는 어머님이


"어머, 오늘 비가 온다더니 날씨가 좋기만 하네!"

라고 하시자 뒤이어 아버님이


"그러게. 기상캐스터들이 맞는 날이 없어."

라고 하시니 뒤이어 남편이


"그러게요. 날씨가 이렇게 맑은데.."

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엉엉 울고 있는데. 며느리가, 아내가 속상해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데 이 눈물 바다의 한 가운데서 나머지 가족구성원이 날씨 드립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이게 뭐지...'

너무 황당해서 눈물이 뚝 그쳐졌다. 당황스러움이 설움을 이긴 순간이었다.


보통 딸이 있는 가정에서는 딸아이가 울며 불며 부모님께 설움을 토해내면 처음에는 양쪽 다 목소리높여 싸우는 듯 언쟁을 벌이다가도 대화 말미에 합의점에 다다르게 되면 부모님이 딸을 달래주신다.


"그만 울어. 왜 이렇게 울어. 머리 아파. 그만 울고 뚝 그치고, 가서 세수 하고 와."


그러면 딸은 세수를 하면서 눈물도 씻어내고 속상한 마음도 씻어낸다. 나름의 정리 과정을 마치고 화장실 문을 열고 다시 거실로 나오면 전체 상황이 환기가 되면서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각자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 우리 친정은 그랬고, 내가 만나온 모든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도 남자분들이시든 여자분들이시든 비슷한 패턴으로 여학생들을 수습해주셨다.


'이게 뭐지...'

시월드에서는 나를 수습해줄 사람은 없는 듯 보였다. 나는 눈물을 뚝 그치고 벌떡 일어나


"저 세수하고 올게요!"


라고 크게 선언하고 욕실로 가서 오랫동안 세수를 하면서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사람들이 지금 나를 무시하나. 내 감정을 모른척 하는건가. 사람이 코 앞에서 엉엉 울고 있는데 웬 날씨드립이야. 모두 쏘시오패스인가. 도대체 내가 어떤 집구석에 시집을 온거야. 도망쳐야겠는데. 남편은 뭐지. 내가 몇 년을 사귀던 그 사람이 맞나.'

시부모님의 날씨 드립에 동조한 남편이 제일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결혼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가정의 문화에 더 익숙해지고 가족 구성원 각각의 캐릭터에 대해 배워가니, 그 날의 미스테리가 차차 풀리게 되었다. 일단 아들만 둘 키워본 우리 시부모님은 자식이 당신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도 없거니와 눈물 콧물 짜내며 '이건 이랬고 저건 저랬고 그래서 속상해요.' 라고 부모님과 소통을 하는 자식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분들이셨다. 아들들만 상대하시다가 '반응' 이란 걸 하는 자식을 나를 통해 처음 겪어보신건데 심지어 엉엉 울고 불고 눈물 콧물 다 쏟아내는 '극단적인 과잉 반응'을 첫 경험으로 겪으셨으니 너무나 당황스러우셨을텐데 그 날의 에피소드가 '이 아이는 다르다.' 라는 걸 깊이 인식한 계기가 되셨을 것 같고, 나 역시 시부모님의 여식을 대하는 서툰 방식을 이해하게 되었다.


양방향 소통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시댁에서 이 에피소드를 겪고보니 왜 우리 부부가 '싸움' 을 못 하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커플은 부부싸움 비슷한 것을 해도 항상 일방적으로 나 혼자 소리질렀다가 사과하고 나 혼자 화냈다가 풀었다가 나 혼자 '원맨쇼' 하는 것 같은 패턴이다. 이렇게 우리 남편이 할 말을 하지 않고 쌓아두는 성향은 자라온 환경에서 비롯되어 부부생활에서도 이어지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호주에 가기 전에 남편과 몇 년을 사귀고 같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댁을 알고나서야 남편 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서도 더 깊게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더불어 '이 집안에서 내 감정은 나 스스로 콘트롤하자. 내가 감정이 폭발했을 때 내 마음을 정리해주거나 수습해 줄사람이 이 집에는 없다.' 라는 사실을 깨닫고 늘 감정선이 무너지지 않게끔 마음에 힘을 주고살았더니 다시 또 눈물 콧물 짜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전형적인 한국적 사고로 어른이 말씀하실 때는 '눈을 깔아'야 하므로 시부모님이 말씀하실 때 시선을 살짝 아래로 두었는데 한번은 어머님이 '아이컨택트' 를 하지 않는 것은 대화 중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하신 적이 있으셔서 이제는 시부모님이 선을 넘어 우리 부부 일에 간섭을 하려 하시면 두 눈 똥그랗게 뜨고 'I can handle it.', 'It is none of your business.' 라고 그 때 그 때 '됐거든요!' 라고 손사래치며 시부모님의 과잉케어를 차단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도 생겼다.


건조한 아들과 섬세한 시부모님 사이에서 '딸 같은 며느리'가 들어와서 양쪽을 이어주는 브릿지 역할을 해주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해피엔딩은 나의 성격적 결함으로 이루어내지 못했고, 반칙 같지만 더 쉬운 쪽을 택하여 나는 벙어리 둘째 아들 쪽에 편입되어 잘 살고 있다.



우리 시댁이 있는 호주 골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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