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처가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호주사위의 한국 처월드

by 강점코치 모니카


시월드에서 억울하게 코너로 몰리고 있는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아 남편에게 섭섭했던 적이 많았다. 쿨하지 못한 나는, 차곡차곡 모든 사례를 가슴 속에 쌓아 두었다가 한번씩 폭발할 때 마다 남편을 비난하고 서러움을 쏟아내곤 했다.


"당신 그 때 그랬잖아. 아무리 당신 부모님 이라고 해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실 때는 바른 소리도 할 줄 알아야지. 어쩜 마누라를 그렇게 방치하냐고. 완전 불공정해 It is so unfair!."


결혼 초기 5년을 호주에서 먼저 살았기에 우리 부부는 나의 시댁 즉, 남편쪽 가족과의 교류만 있었고 관계상 불만을 갖는 쪽은 나 뿐이었다. 나는 너무나 억울해 하는 일을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거나,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자기 부모에게 바른 소리는 못하는 남편이 답답하기만 했던 시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친정 가까이에 위치한 도시에 정착하면서 이제는 남편과 나의 입장이 바뀌었다. 한국에 돌아온 첫 해. 습관인양 미혼일 때 하던 대로 설, 추석 명절 연휴에 친정에서 신랑과 함께 2박 3일 정도 머물렀다. 침대도 없고 소파도 없이 온돌 마루에 붙어서 모든 생활이 이루어지는 주택인 나의 친정. 양반다리를 못하는 우리 남편같은 서양인에게는 일단 이런 주택에서 머무르는 것이 신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부분이 있다.


또한, 남편은 한국말을 못하고 친정 부모님이나 친척들은 영어를 못하니, 우리 남편은 친정에 가면 늘 갑갑하고 심심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중간에서 일일이 내가 다 통역을 해주자니 오랜만에 만난 친정식구들과 나도 회포를 풀어야 되고, 남편을 챙기기엔 내가 너무 바쁘다. 그래서 굳이 남편이 거실 바닥에 힘들게 앉아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괴성 소음 같은 경상도 사투리에 폭격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별 다른 행사가 없으면 남편 혼자 방에서 태블릿 피씨로 영화를 보거나 자유롭게 쉴 수 있게 친정 식구 모두가 그를 배려하였다.


그러던 중 추석이었는지 설이었는지, 명절 연휴 어느 날에 친정 소도시에서 사교성과 오지랖이라면 1인자로 명성을 떨치는 괄괄한 우리 외삼촌이 친정에 방문하시어 술상이 차려졌다. 다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워서 오버된 톤에 언성을 한껏 높여 한국말만 하게 되어 우리 남편은 자연스레 소외되니, 남편을 외삼촌에게 인사만 시키고 편하게 쉬라며 방에 들여보낸 터였다. 외삼촌이 처음에는 쿨 하게 우리 신랑을 배려하시는 척하셨는데 술이 어느정도 오르자 오늘의 술주정 희생양은 너로 정했다는 듯이 굳이 우리 남편을 불러내 훈계를 시작하셨다.


"한국에 살 거면 한국말을 배워야 되고, 말을 모른다고 답답하다고 자꾸 혼자 있으면 안되고, 그럴수록 더 어울려야 가족끼리 친해지고 그러는거지. 처가에 와서 혼자 방에 들어가 있고 그러는 거 아니야."


로 시작해 1절, 2절, 3절로 이어지는 외삼촌의 꼰대라떼 술주정 훈계에 우리 아버지가


"처가에 와서 몸과 마음이 편한 게 최고지. 내가 들어가서 쉬라고 했는데 자네가 왜 그래."


라며 외삼촌을 말리시다 언성을 높이신다. 이런 난리통에 어이가 없어서 외삼촌께 온갖 악다구니를 쏟아 붓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술 취한 사람을 상대해봤자 더 시끄러울 것 같아서 일단 참고 있었다. 남편이 제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기를 바라며 통역 따위 하지 않고 빨리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넘어가길 바라고 있었는데 남편이


"지금 엉클이 나더러 사회성 없고 무례하다고 뭐라고 하시는거지? 내가 거실에 있겠다고 했는데 네가 쉬라고 했잖아. 그리고 장인어른도 편한대로 하라고 말씀하셔서 들어가 있었는데 왜 저러시는 거야?"


정확히 알아들었다. 우리 남편의 한국어 리스닝 실력이 이 정도인 줄 미처 몰랐다.


"술 취하셔서 그래. 술 취한 사람이 하는 말이니 무시해. 너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마."


그리고도 한참을 더 시끄럽다가 술 취한 삼촌이 댁에 돌아가셨고 나는 이 사태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남편은 지금 억울하고 따지고 싶지만 여러 관계들 때문에 분하고 억울한 기분을 애써 참고 있을 것이다. 나도 시댁에서 이런 비슷한 상황을 종종 겪었고 그럴 때마다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는 우리 남편의 태도를 비난해왔다. 내가 지금 가만히 있으면 나에게 지난 5년 간 비난 받은 우리 남편은 나의 이중적인 태도에 실망할 것이고, 그동안 나에게 비난 받고 사과하고 미안해 하던 세월이 황당하고 억울할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래 이틀 밤을 더 묵을 예정이었는데, 남편이 기분이 많이 안 좋으면 내일 집에 갈 수도 있다고, 당신이 원하는 바를 알려 달라고 했다. 남편이 자기는 기분이 많이 상했고 내일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일어나 짐을 싸니 엄마가 뭐하냐고 물으신다.


"라서방(우리 남편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우리 친정에서 부르는 애칭)이 어제 외삼촌 때문에 기분이 많이 상했나 봐. 우리 그냥 지금 갈게."


"아니 그건 외삼촌이 다 가족끼리 더 친하게 지내자고 좋은 뜻에서~~~~~블라블라블라 ~~~~어른이 다 너네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 뭘 그러냐."


"엄마, 상대방이 듣기에 기분 나쁜 말이면 어른이든 누구든, 의도가 좋든 나쁘든 하지 말아야지. 설득하려고 애쓰지마. 갈거야."


황소고집 당신 딸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아는 터라 엄마는 더이상 설득하시길 포기하셨고 외할머니가 2차 등판하여 나를 설득하기 시작하셨다.


"너네가 이러고 가면 우리 전부 마음이 불편해서 어쩌니. 외삼촌이 술먹고 그런건데 ~~~블라블라블라~~~~~~그냥 좋게 이해하고 넘어가고 명절날에 기분 좋게 보내다 이틀 더 자고가라."


"할머니, 외삼촌이 본인 자식도 아니고 조카사위한테 술 드시고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두시고 저는 남편보기에 정말 창피하고 기분 나빠요. 외삼촌 오시는 자리에 다시는 남편 데리고 안 나갈거에요."


하고 친정 집을 나왔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저 계집애가 외국가서 살더니 외국년이 다 되었다고 혀를 끌끌 차시고 한숨 쉬실 터였다. 서울 가서 살 때는 서울새침이가 다 되어서 왔다고 거리감을 느끼시더니 이제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외국가서 살더니 외국년이 다 되었다고 나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친정 식구들이다. 그럴 때 마다 내가 평생 고향에만 살면서 70년대 사고를 갖고 당신들처럼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으로 남았으면 나를 더 자랑스워하셨을까 궁금했다.


우리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신랑에게 말했다.


"우리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른들 생각해서 기분 나쁜 것 참고 친정에서 이틀 더 잤으면, 아마 어른들은 평생동안 어젯밤 일에 대해 당신이 기분 나빠 했다는 것 조차 몰랐을 거야. 내가 굳이 온 집안을 시끄럽게 하며 짐 싸서 나온 것은 친정 식구들이 당신에게 실수했다는 걸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서였어. 그리고 앞으로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평생동안 우리 외삼촌 안 만나도 돼. 당신 기분 나쁜 것 이해해. 당신 가족 중 누가 나에게 똑같이 행동했다면 나는 당신 정도도 못 참았을지도 몰라. 나의 친정 식구들이 당신 기분 나쁘게 해서 미안해.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순 없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을 save 구하려고 최선을 다 했어. 그걸 알고 당신도 앞으로 비슷한 경우에 나를 구해줘야 돼."


남편은 알았다고 고맙다고 말했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명절 연휴에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고향에 간다. 아이들과 같이 이틀을 친정에서 보내고 연휴 마지막 날 오전에 남편이 차를 몰고 우리를 데리러 온다. 남편이 도착하면 친정식구들과 다 같이 나가서 입식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 외식을 하고 헤어진다.


주말에 친정을 다니러 갔다 올 때도 같은 방식이다. 토요일에 내가 버스로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서 1박을 하고 남편이 일요일에 데리러 와서 어른들께 인사 드리고 다같이 나가서 점심을 먹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백년손님 사위는 같은 한국인이라도 식사는 무얼 챙겨주어야 할지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을지 친정엄마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어려운 손님인데 외국인 사위이면 그 부담이 오죽하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엄마에게 말해 두었다. 내가 한국사람이랑 결혼했어도 서울 살았으면 어차피 그 사위 얼굴 일년에 한 두번 볼까 말까 했을테고. 남편이 친정집에서 1박을 하지 않거나 엄마가 손수 밥상을 차려주지 않는 점에 대해서 미안해 하거나 죄책감 느끼시지 말라고. 남편 때문에 친정부모님이 댁에 필요 없는 침대와 소파를 사들이는 것도 쓸데없는 낭비이며, 한국사람이랑 결혼했어도 나는 엄마가 다른 식구들 다 앉아서 밥 먹을 때 혼자 시중들고 부엌 왔다갔다 하는 것 보기 싫어서 외식했을 거라고. 어디서 무엇을 먹든 모두가 더 편한 자리에서 즐겁게 먹을 수 있으면 되는 거라고. 이 세상사 전부를 엄마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그래서 우리 친정 식구들은 이 패턴에 익숙해졌고 모두의 마음이 편해졌다. 방법을 찾기까지 반드시 시끄러운 일을 겪어야 되고 모두가 감정적인 소모를 크게 한번은 겪어야 한다. 하지만 이 소동을 피하려면 누군가가 참아야한다. 혼자 속상한 마음을 삭이는 가족 구성원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바탕 소란을 겪더라도 새로운 방법을 찾아 모두가 그 방법에 길들여져가는 쪽을 선택하면 보다 오래, 모두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호주로 돌아가면 우리 남편이 가마니 신세를 면하고 이제는 나를 세이브해 줄런지 기대가 된다.


keyword
이전 04화뽀빠이와 코카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