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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점코치 모니카 Oct 12. 2020

배내똥의 추억

호주 출산기 6

아기와 단 둘이 함께한 첫 날밤.

사실 9개월 동안 내 뱃속에 있었으니 쭈욱 같이 있었던 것인데도 아기가 배 안에 있을 때와 배 밖에 있을 때의 삶은 몹시 달랐다.


새벽에 갑자기 우는 아기를 어찌 용기 내어 안아서 내 침대에 눕히고 기저귀를 체크하는 것 까진 했는데 황금똥이 아닌 타이어 고무 색 같은 검은색에 살짝 진녹색 빛이 도는 이상한 똥이 가득 찬 기저귀를 보고 경악했다. 스스로 기저귀 갈기에 도전할 정신도 없이 간호사 호출 벨을 눌렀다.


"Hi, what can I do for you?"

이 순간만큼은 내 눈에 하느님처럼 보이는 간호사가 커튼을 젖히고 들어왔다.


 "아기가... 아기가 우는데... 어흑... 우리 아기한테 뭔가 이상이 있나 봐요. 기저귀에 똥이 가득한데 똥 색깔이 너무 이상해요. 우리 아기 어떡하죠. 이거 왜 이래요. 어흑. 잇츠 소 다크 앤 블랙. 엉엉"


평소엔 사막 같이 건조한 내 눈물샘이 진통으로 하루 종일 울어서 전면 개방이 되었는지 "잇츠 소 다크 앤 블랙."까지 말하고 나니 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괜히 자연 출산한다고 고집부려서 우리 아기가 출산 중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이상증세를 보이나. 온갖 걱정이 몰려와 공포에 질려있었는데 간호사가 온화한 표정으로


"오우, 허니, 잇츠 올라잇. 잇츠 노멀."

이라고 했다.


아기가 태변을 싼 것이었다. '갓난아이가 먹은 것 없이 처음으로 싸는 똥을 태변 혹은 배내똥이라 한다. 장의 점액,  쓸개즙 성분, 콜레스테롤 결정 및 양수의 혼합물로 분만 후 2-4일에 배설하는데 빛이 검고 유난히 반드러운 특징을 가진다.'라는 것을 배내똥을 눈으로 먼저 본 후, 나중에서야 인터넷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알았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한국에는 신생아실이 있어서 분만 첫 3일 동안 아기를 간호사들이 돌보니 대부분의 한국 엄마들은 아기들의 태변을 볼 기회가 없다. 그래서 내가 읽은 수많은 맘 카페의 출산 후기에 이 '공포의 태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그 작은 몸에서 어쩜 그 어마어마한 양을 쏟아냈을까 의아한 생각이 드는 그 시꺼먼 태변의 모습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다.


아기와 엄마가 분리되지 않아 엄마는 아기가 이 세상에서 맞이하는 모든 첫 경험을 엄마가 지켜볼 수 있고, 아기 입장에서는 세상에 나와서도 뱃속에서 늘 듣던 엄마의 목소리, 터치, 케어를 받을 수 있어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점이 호주 출산의 장점이다.


찾고 찾으려 하니 장점으로 찾아진 거지 산모의 몸이 축 나는 걸 생각하면 단점이 그다지 상쇄되지 않는 미약한 장점이긴 하다.


간호사가 '잇츠 올라잇.'이라고 나를 안심시켜주었고 나에게 물티슈로 아기 엉덩이를 닦으라고 하고는 떠나버렸다. 인터넷 맘 카페에서는 아기가 변을 볼 때마다 물로 씻으라고 했는데...... 


우리 아기는 출산 후에도 목욕을 안 하고 수건으로 닦기만 한터라 머리카락에 피떡이 진 그대로였다. 머리카락도 피떡이 져있는데 똥을 쌌다고 한 밤중에 아기 엉덩이를 물로 씻겨줄 것 같지는 않아서 말도 꺼내지 않고 첫 기저귀 갈기에 도전했다.  


차가운 물티슈가 아기 피부에 닿을 때마다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대서 기저귀를 가는 손이 덜덜 떨렸다. 아기를 잘못 만지면 그 얇은 다리가 부서질 것 같아서 겁이 났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진녹색이 여전히 배어있는데도 그냥 대충 닦고 새 기저귀를 채워버렸다. 그나마도 개운한지 아기는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고 나는 아기가 또 언제 깰까 노심초사하며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36시간째 잠을 전혀 못 잤는데도 피곤한 줄 몰랐다. 자고 있는 아기를 마냥 바라보며 사진도 찍고 이 아기가 정말 내 뱃속에서 나왔단 말인가 믿기지 않고 신기했다. '귀여운'이라는 형용사를 지금까지 써온 모든 사례가 실수로 느껴질 정도로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귀엽고 깜찍한' 작고 오동통한 아기 손과 발. 거기에 손가락, 발가락이 정확히 열개씩 달려있는 것도 경이로웠다. 아기만 쳐다보고 있어도 시간이 금방 갔다.


오전 7시 55분이 되자 남편이 들어왔다. 남편 얼굴이 그렇게 반가웠던 때가 없었다. 롱디 (long distance) 연애 중 나는 한국에 있고 남편은 호주에 있어 1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 때 공항에서 상봉을 할 때도 이 정도로 반갑진 않았다.


남편과 내가 함께 고른 'I love Daddy.' 라고 쓰인 여름용 핑크 바디슈트를 입고 있는 아기에게서 남편은 눈을 떼지 못하고 사진을 오백장 찍고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잠시 눈을 붙였다. (호주 산부인과에서는 부모가 옷을 따로 준비해가지 않으면 흰색 민소매 러닝셔츠와 기저귀만 입힌다. 하의실종 패션을 추구하는걸까?)





10시쯤 되었을까 간호사가 와서 목욕 교육을 한다고 해서 우리 세 가족은 이동했다. 생후 15시간이 되어서야 드디어 우리 아기가 첫 목욕을 하게 되었다. 육아 의욕이 넘쳤던 우리 남편이 열심히 교육을 받았다.


남편이 간호사와 함께 배꼽까지 아기 몸 전체를 물에 담그고 씻기는 사진을 나의 SNS에 올렸더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태어나자마자부터 아기를 통목욕시키느냐고 배꼽이 지 않냐고 댓글에 난리가 났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신생아의 배꼽이 떨어지기 전까진 최대한 물이 닿지 않게 하고 매일 알코올 솜으로 배꼽을 소독시켜줘야 한다고 나를 미개인 취급했다. 따로 '신생아 배꼽 관리법'을 배운 적이 없는 나는 호주 병원에서 시킨 대로 DAY 1부터 물에 배꼽을 다 담그고 통목욕을 시켰는데 아기가 배꼽이 곪는 일은 없었다. 


둘째는 한국에서 낳았고 퇴원 시 한국 병원의 배꼽 소독에 대한 안내도 받았지만 첫째 때의 경험이 있으니 둘째 역시 DAY 1부터 통목욕을 시키고 배꼽 알코올 소독을 해준 적은 없다. 내가 직접 경험한 바가 있어 주변의 성화에도 초연할 수 있었다. 


목욕 교육이 끝난 후, 산모 6인과 신생아들까지 같이 머무르는 입원실에서 남편도 없이 또 밤을 보낼 자신이 없어서 퇴원을 요청했다. 규정상 일반 산부인과 병동 산모는 최소 2박 3일 입원을 해야 되고 버쓰센터 산모는 1일 또는 1박 2일 입원을 한다. 나는 자연출산에 실패하긴 했으나 원래 버쓰센터에 등록된 산모이니 아기가 첫 소변을 본 게 확인이 되면 오늘 퇴원을 시켜준다고 했다.


아기가 첫 소변을 본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간호사가 기저귀에 작은 거즈 뭉치를 넣어두었다. 이 거즈가 젖은 게 확인되면 간호사를 호출하라고 했다. 해지기 전까지 아기가 첫 소변을 보지 않으면 나는 이 밤을 또 홀로 아기와 둘이 보내야 했다. 수시로 기저귀를 체크했는데 태변은 찔끔찔끔 계속 보면서도 우리 아기는 소변을 보지는 않았다. 누가 오줌 싸기를 이토록 오매불망 기다려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불안했던 나는 거즈를 물에 적시고 거짓말하고 집에 가자고 신랑에게 생떼를 썼는데 그나마 이성을 잃지 않은 남편이 '커밍순'이라며 나를 달랬다.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sarahchoi0/220202771777  호주공립병원 식사 



비행기 기내식 같은 점식 식사가 나와서 신랑과 대충 몇 가지 집어먹고 다시 아기 기저귀를 보니 어렴풋이 태변에 젖은 것 같기도 하고 소변에 젖은 것 같기도 한 모습의 거즈가 발견됐다. 우리는 그것이 소변이라고 굳게 믿기로 하고 무사히 퇴원을 했다.


호주에서는 산부인과에서 신생아가 퇴원 시 카시트가 없으면 퇴원을 시켜주지 않는다. 차가 없어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간다고 하더라도 카시트는 준비해야 된다. 간호사가 병원 입구까지 내려와서 확인을 한다. 카시트가 없으면 퇴원이 불가이고 향후에도 카시트 없이 아이를 안고 차로 이동하다가 적발될 경우 한화 50만 원 이상의 벌금을 내야 한다. 



우리는 미리 바구니형 신생아용 카시트를 준비해 갔기에 입원실에서부터 간호사에게 검사를 받고 아기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바구니형 카시트는 복수박 하나 겨우 들어갈 크기처럼 작아 보였는데도 우리 아기를 눕히니 자리가 넉넉했다. 옷도 크고 양말도 크고 손싸개도 크고 저 공간들이 언제 채워질까. 


병원을 나서며 신랑이 비장하게 하지만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진짜 우리 셋이 돼서 집에 가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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