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점코치 모니카 Oct 15. 2020

모유 수유 전쟁

호주 출산기 8


호주에는 출산 후 간호사의 방문 서비스가 있다. 출산 후 첫 2 주 동안 주 1-2회 정도 왕진 오는 의사의 느낌으로 간호사가 산모의 집으로 방문해 산모와 아기의 상태를 체크하고 케어한다. 퇴원한 지 이틀 째 되던 날 간호사의 첫 방문이 있었다. 


먼저, 간단하게 모두의 안부를 묻고 간호사와 내가 단둘이 안방으로 들어가서 자연분만 중 회음부 절개 후 꿰맨 자리가 잘 아물고 있는지 간호사가 육안으로 검사를 하고 소독해준다. 회음부가 빨리 아물도록 돕기 위해 따뜻한 물에 반신욕도 하고, 자연 소독이 되도록 그 부위에 햇빛을 많이 쏘여주라는데 나 혼자 벌거벗고 창문을 향해 다리를 벌리고 선탠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요상해서 그 지시는 따르지 않았다. 


회음부 체크가 끝나면 배를 이리저리 눌러보며 혹시나 자궁 안에 이 물질이 잡히는 부분이 있는지, 특정 부위에 통증이 있는지를 검사해준다. 신체적인 점검이 끝나면 심리진단지를 꺼내어 간호사가 질문지를 읽어주고 내가 답하는 방식으로 산모의 산호 우울증 여부를 체크한다. 


나는 출산 때 겪은 극심한 진통으로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특히 밤에 수유 때문에 깼을 때, 다시 잠들지 못하고 계속 출산 장면이 떠올렸다. 오전에 배정되었던 간호사가 본인 근무 중에 내가 출산하기를 원하지 않아서 출산과정을 속히 진행시키지 않고 나를 방치해두어 내가 더 큰 고통을 겪었다는 식으로 그 간호사를 향한 원망이 끝없이 올라와 억울한 심정이 되었다. 


병원 홈페이지에 건의사항 글을 올릴까. 억울함을 호소하는 부정적인 피드백 레터를 부칠까.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간호사 얼굴을 떠올리며 어떻게 그 여자에게 복수를 할까 골똘히 생각했으나, 난생처음으로 신생아를 돌보느라 글을 쓸 시간과 여력이 없어서 타이밍을 놓쳐서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아기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컴플레인을 걸지 못한 게 참으로 다행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간호사의 잘못이 아니고 자연출산의 모토 자체가 '자연의 섭리를 기다리는 것'  이므로 그 간호사는 단지 '기다렸을 뿐'인데, 내가 당시에 억울한 마음이 들고 그 간호사라는 타깃 한 명을 정해 놓고 원망하는 마음을 불태운 것이 일종의 산후우울증의 증세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산모의 건강 점검이 끝나면 이제는 아기 차례이다. 하루에 아기가 대/소변을 몇 번을 보는지, 모유 수유하는 시간과 텀은 어떤지, 아기의 잠자는 시간 및 패턴은 어떤지, 목욕은 좋아하는지, 팔다리는 잘 움직이는지 등 수많은 질문들로 아기의 상태를 문진하고 체온 측정, 청진기로 심장소리 체크와 휴대용 체충계로 체중도 재어본다. 그런데 아기의 몸무게를 체크한 간호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기가 3.84 kg으로 태어났는데 600g 이상 몸무게가 줄어 현재는 3.2킬로 대 라는 것이다. 보통 태변을 누고 초기에는 엄마의 모유가 많이 나오지 않으니 아기 몸무게가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긴 한데, 줄어든 정도가 500g 이상이면 위험한 신호라고 했다. 


"엥? 병원에서 가르쳐준 대로, 책에서 본 대로 2시간마다 꼬박꼬박 모유 수유했는데 우리 아기가 말라가고 있다고요? 제가 무얼 잘못했나요?"


"아니에요. 잘하고 있어요. 그런데 2시간마다 수유하는 것이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에요. 아직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젖이 잘 돌지 않으니 2시간 텀으로 젖을 물린다고 해도 실제로 아기가 먹는 모유 양이 아주 적을 수가 있어요. 


분유 수유를 하면 아기가 먹는 양, 남기는 양을 정확히 파악할 수가 있지만 모유수유는 눈으로 산모의 모유량을 확인할 수가 없으니 유축기로 유축을 한번 해보세요. 한참을 유축했는데도 혹시 그 양이 너무 적다고 하면 젖이 모자라는 거예요. 


2시간마다 수유를 하지 말고 아기가 깨어있는 시간에는 무조건 젖을 물리세요. 24시간 동안 그렇게 한번 해보시고 내일 저희 센터에 들르셔서 아기 몸무게를 다시 체크받으세요. 내일도 아기 몸무게가 줄었다면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셔야 돼요.  원인을 찾고 분유 수유를 하시는 등의 대책을 세우실 거예요."


아기가 말라간다고 하니 놀라서 내가 당장 분유와 젖병을 사서 분유 수유를 하겠다고 하니 간호사가 펄쩍 뛰며 아직은 분유 수유를 시도하긴 이르다며 오늘부터 '수시로! 오래오래!' 젖을 물리라고 했다. 젖을 자주 물릴수록 모유가 더 빨리 돌 것이고, 모유수유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 거라고 했다. 자연출산센터 관련 직원들은 모유수유 신봉자들이었는데 첫 아이라 나는 무조건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절대복종했다. 


우량아로 태어났다고 건강하다고 믿고만 있었는데 아기가 말라가고 있다니 겁이 덜컥 났다. 간호사가 떠나고 유축기를 처음으로 사용해보았다. 유축기를 처음 사용해보는 거라 신랑 앞에 가슴을 다 내놓고 둘이서 유축기 깔때기를 이리도 대보고 저리도 대보았다. 드디어 유축이 시작되자 내가 실험용 젖소가 된 기분이었다. 


5분 넘게 유축을 했는데 젖병 바닥을 다 가리지도 못한 모유 양. 20분 넘게 유축한 결과가 겨우 12밀리미터. 2시간마다 가슴 양쪽으로 다 수유를 했어도 우리 아기는 겨우 20밀리리터 남짓의 모유만 먹은 것이다. 모유는 심지어 분유보다 근기도 없는데 아기가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그로부터 24시간 남짓동안 나는 아기와 합체되었다. 아기는 임신 시절처럼 여전히 24시간 내 배에 붙어 있었었다. 아기가 잠시 잠이 들면 남편은 냉동고에 얼린 미역국을 녹이고 밥을 지어 부지런히 나에게 날랐다. 아기를 먹이기 위해 내가 음식을 먹는 순간과 아기가 자는 순간 빼고는 계속 젖을 물렸다. 


그렇게 나의 모유수유 전쟁은 시작되었다. 손가락만 한번 튕기면 젖가슴이 활짝 열리는 수유 브래지어가 왜 발명되었는지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엄마가 되고 보니 나에게 브래지어란 여성성을 상징하는 섹스어필의 무기로써의 가슴을 은밀히 가려주는 역할이 아니라 원터치로 상시 개방되어 자식을 먹일 수 있는 국냄비 뚜껑 같은 역할을 했다.


아기가 눈만 뜨면 젖을 물렸는데, 물릴 때마다 아기는 열심히 젖을 빨았다. 이렇게 주면 주는 대로 잘 먹는 아기를 육아서만 보고 2시간 텀을 지켜서 배를 곯게 했다니 죄책감이 들어 더 열심히 젖을 물렸다. 하루 종일 이러고 있으니 내가 젖소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떨리는 마음으로 산후케어센터에 갔다. 퇴원할 때 외에는 아기가 차를 처음 타는 것이었는데 우리 딸은 타고난 레이서 기질이 있는지 차가 멈춰있는 걸 못 견뎌했다. 적색 신호를 받아 차가 멈추면 울음을 터뜨리고 차가 다시 움직이면 울음을 그치기를 반복하며 첫 외출을 즐겼다. 


센터에 도착해서 몸무게 측정시간. 

어제보다 무조건 높아야 한다. 

제발 3.2 kg을 넘겨라!


결과는 3.4kg! 여전히 출산 당시 몸무게 3.84kg 에는 못 미치지지만 그래도 하루 만에 몸무게가 더 줄지 않고 늘었기에 병원을 방문하거나 다른 조치 없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수유를 해서 젖량을 늘리면 될 거라고 했다. 


"We are a team!"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인데, 이때부터 이 말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한 팀으로서 모유수유 전쟁을 잘 치러내고 있었다.







계속......

 

사진출처: Getty Images 


 



작가의 이전글 배내똥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