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 출산을 일주일 앞두고 퇴사했으니, 8년째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이제는 BC가 Before Corona의 약자라던데. 나 역시 코로나 이전에는 두 아이의 주양육자로서 아이들의 등원 시간에 짬짬이 영어수업을 하던 영어강사였다.
대구에 살던 2020년. 가장 일찍 코로나의 공포를 경험해야 했던 대구시민들의 불안감은 상당히 컸고 정부의 지침과 상관없이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장기간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간 덕에 2020년 상반기 내내 나는 영어수업을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수입이 0원이 되고 본업이 사라지는 공포를 그때 느꼈다. 내가 잘못한 게 없어도 어느 날 나의 직업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오래전에 조직을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강제로 퇴사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사이드 프로젝트, 사이드잡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제2, 제3의 코로나가 와도 여러 가지 수입원이 있으면 그중에 몇 가지는 살아남아 나의 밥줄을 이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사이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스트레스 관리와 감정 코칭을 공부하고 있다. 12주에 걸친 강사과정 코스를 수강 중인데 이 코스는 매주 수강생들의 시범강의로 꾸려진다. 매주 1명의 수강생이 시범강의를 하면 대표님과 나머지 수강생들이 피드백을 주고 개선할 점을 제시해준다. 주제별로 12주 동안 수강생 한 명이 총 3번의 시범강의를 하게 되고 강사로서 자질이 인정이 되면 실제로 외부 강의에 강사로 설 기회도 주어진다.
조직에 소속되어 일을 하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받게 된다. 특정 과업에 대해 내가 생산해낸 결과물에 대한 공식적인 피드백일 수도 있고, '뒷담화'라고 불리는 나의 성격이나 개인 사생활에 대한 지적과 관련된 피드백이 돌아 돌아 내 귀에 들어오기도 한다.
긍정적인 피드백은 나에게 성취감을 주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높여주지만 그 내용이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일 때는 그것이 사실이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일지라도 바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상대방이 감정적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받게 되기도 한다.
조직 안에 머무를 경우 이런 다양한 피드백에 대처하는 정서적 맷집을 키울 수 있다. 매일매일 일상 업무를 쳐내는 과정에서 자잘한 감정적인 동요를 느끼고 극복하는 것을 반복하며 생활하다가, 비중이 있는 프로젝트를 맡아 큰 건으로 피드백을 받는 등, 어느 날 크게 한방을 먹어도 그동안 잔챙이 상처들이 쌓여 굳은 살을 만들어 준 덕에 무너질 만큼 심각한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지는 않는다.
나는 무너졌다. 정서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8년 만에 받은 제대로 된 피드백이었다.
나 자신이,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고 자아도취에 빠져 진화를 멈추고 고인물에서 썩어가는, 내가 가장 혐오해오던 인간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점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이제 와서 반추해보니 프리랜서 영어강사로 일하면서 피드백다운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동안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받았었다. 하지만 익명으로 진행된다고 공지를 해도, 학생들은 그 익명성을 신뢰하지 못하는지 혹시나 부정적인 강의평가를 주었다가 자신의 학점에 불이익을 받을까 봐 걱정이 되어선지, 강의평가는 긍정적인 피드백 일색이었다.
나에게 개인과외 수업을 받는 분들도 나의 수업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관두면 그만이다. 그만두면서 왜 그만두는지 이유를 굳이 면전에 다 풀고 떠나는 학생은 없었다. 그래서 프리랜서 강사로서 그동안 나의 생산물의 문제점, 개선점 등을 조목조목 짚어 설명하는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을 기회는 없었다.
게다가 조직 안에서 한정된 인원과 좋든 싫든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야 되는 강제성이 없으니, 나랑 맞지 않고 내가 싫은 사람은 안 만나면 그만인 생활이 이어져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뒷담화로라도 전혀 없었다.
나에게 수업을 계속 듣는 학생들은 내가 좋아서 수업을 유지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긍정적인 피드백만을 주셨고 수년째 영어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늘어날수록 나는 나 자신이 별로 애쓰지 않아도 강의를 잘하고 타고난 언변이 좋아 말을 잘하는 강사인 걸로 착각하게 되었다.
시범강의를 코스 중에 3번이나 해야 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과제이다. 그런데 나는 이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 같다. 매일 영어수업을 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는데 수업 내용만 바뀌는 것이니 별로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라 여기고 근거 없는 자신감과 깃털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수강신청을 한 것 같다. 제정신이 돌아온 이제야 돌아보니 정말 무모한 용기였다.
나의 첫 번째 시범강의 녹화본을 받았다. 단 한 번도 재생시켜보지 않았다. 흑역사, 흑역사라고 하는데 아마 내 시범강의의 색깔은 그 어둡기가 묘사 불가할 만큼의 검은색의 최고봉. 다크 오브 다크한 색깔일 거다. 이게 만약 실제 강의였다면 참가비가 무료였다고 해도 사람들이 차비 환불을 요구할 정도라고 할까...
준비과정에서 미흡함이 느껴질 때마다 무언가를 자꾸 더하고 보충만 하다 보니 발표자료는 투머치가 되어 도대체 이 강의의 학습목표는 무엇인지 내용은 산으로 가게 되었고, 발표 스크립트 없이 진행을 하기에는 익숙하지 않은 콘텐츠라 강의 중에 말은 계속 꼬이기 시작했고, 긴장할수록 말은 더 빨라져 참가자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코칭수업에서 강사 혼자만 입에 모터를 달고 속사포로 떠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파워포인트 장표 역시 오랜만에 만드는만큼 기본에 충실했어야 되는데 욕심을 부려 유행하는 디자인 프로그램에서 템플릿을 다운로드하여서 만들었더니 오히려 조잡하고 조악한 결과물이 탄생했다. 그게 내 눈에는 안 보였다는 사실이 더 부끄럽게 느껴진다.
기술적인 부분 역시 매일 사용하는 zoom 프로그램이지만 일 대 일 강의와 일 대 다수 강의 시에는 신경 써야 될 부분이 달랐다. 채팅창이나 참가자들의 얼굴 화면도 포함하여 화면을 구성해놓고 강의를 해야 되는데 나는 내 장표만 띄워놓고 혼자만 신나게 떠들었다.
심지어 강의 도중 인터넷이 끊어져 강의가 몇 번이나 중단되어 다음날 바로 인터넷 기사를 불러 서재에 무선인터넷 공유기를 추가로 달기도 했다.
8년 만에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고 정신을 차리기까지 한 3일 정도 우울감에 젖어 동굴 속을 파고들었다. 8년 동안 정서적 맷집을 키우지 못한 채 살아온 터라 생채기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마음이 너무나 산란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짜증을 내고 밥과 김으로 겨우 아이들 끼니를 이어갔다.
파이팅 넘치는 과잉 에너지로 유명한 나인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부정적인 생각만 들고 우울감이 깊어져 다 포기하고 싶어 졌다. 이것 아니라도 밥 잘 먹고 잘 살았는데 무슨 부와 명예를 누리려고 내가 이러고 있나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기억을 반전시켜 놓아야 했다.
이 경험을 반전시켜놓지 않으면 이 흑역사의 기억이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나 자신을 부끄럽게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남들은 다 잊어도 나는 문득문득 '그때 내가 그랬지. 그리고 내가 그걸 비겁하게 포기했지.' 라며 자책하고 이불 킥을 할 것이 보였다.
2주 후에 다시 발표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남편에게 사실 이런 일이 있었고 내가 지난 3일 간 땅을 파고 동굴에 다녀왔다고 말해주었다. 남편은 당신이 무슨 노스코리안 스파이냐. 왜 땅굴을 파느냐며 몰랐다며 미안해했다.
남편은 이번 일이 내 인생에 큰 터닝포인트가 되어줄 것 같다며 이번에 받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열심히 연습해서 2주 후에는 꼭 흑역사의 기억을 반전시키라고 응원해주었다. 실패의 경험을 성공으로 반전시키고 나면 이 분야에 강사가 되든 말든 여부를 떠나 이 경험 자체가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어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나 2주 후에 또 발표를 말아먹는다고 해도 괜찮다고. 그때는 이건 확실히 내 길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미련 없이 시원하게 때려치고 같이 맥주를 마시자는 말도 덧붙였다.
어젯밤에 남편과 나는 축배를 들었다. 어제가 나의 두 번째 시범강의가 있었고 어제 내용 그대로 실제로 강단에 서도 좋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첫 번째 발표자와 두 번째 발표자로서 나는 동일인이지만 다른 태도로 준비과정에 임했다.
그때는 틀렸고 지금이 맞았다. 그때 나는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착각에 빠진 우물 안의 개구리였고, 지금의 나는 이전 경력은 제쳐두고 초심으로 돌아가 중간과정도 일일이 체크받고, 과욕을 부리지 않고 기본에 충실할 것임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스크립트를 외워야 된다는 압박에 새벽에 눈이 번쩍 떠지는 초심자의 자세로 돌아갔다.
이 코스를 신청한 목적인 이 분야에서 내가 강사로 서게 되느냐 마느냐는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코스가 반 정도 진행된 지금, 이미 나는 정말 가치로운 것을 얻었다.
8년 동안 나는 몸만 집에 갇힌 것이 아니라 정신도 함께 갇혀있었단 것을 깨달았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며 살다가, 누군가가 용기 내어 나에게 전달하는 진정 어린 피드백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뻔했다.
집을 너머 섬에 갇히기 전에 탈출해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