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1

新소녀가장 11

by 강점코치 모니카

"우리 엄마가 할 일이 없으니까 쓸데없는 걱정을 만들어서 하고 있어. 심심하고 시간이 남아도니까 만만한 나만 갖구 그래. 진짜 미쳐버리겠어."


서울에서 차로 5시간이나 걸리는 먼 고향에 사시는지라 1년에 2-3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한 친정엄마가 재은이를 괴롭힌들 얼마나 괴롭힐 수 있을까 쉽게 생각했었는데 장난 아니었다.


말이면 다 되었다. 말을 전달할 수 있는 전화기라는 수단만 있으면 사람 하나 돌아버리게 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였다.


재은이 엄마는 보통 하루에 한두 번씩 전화를 거신다.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딸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부재중 전화는 가뿐히 20통을 넘긴다.


그렇다고 특별한 용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가 오늘은 무슨 반찬을 만들고 어떤 종류의 김치를 만들었으며, 어디가 아파서 병원 무슨 과에 다녀왔다는 이야기, 이번에 화장품을 바꾸었는데 효과가 좋으니 너도 젊은애가 그렇게 항상 추레하게 다니지 말고 이 제품으로 제발 관리 좀 하라는 외모 잔소리, 그날 아빠가 엄마를 서운하게 한 점을 시작으로 40년 묵은 엄마의 결혼 생활 한풀이, 엄친아 이야기, 40년 동안 반복되는 친가 친적들 욕 레퍼토리.


20년을 따로 살았는데도 재은이는 엄마와 정서적으로 매우 촘촘하게 엮여있다.


엄마가 전화를 걸어 예의 그 일상적인 레퍼토리를 늘어놓을 땐 '어, 어, 그랬어?'라고 건성으로 대답하며 인터넷 뉴스나 읽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엄마 일상에 무언가 조금이라도 특별한 일이 일어났을 때 발생한다.


재은이의 결혼이나 출산과 같은 누가 봐도 굵직한 종류부터 아빠와 엄마의 싸움, 남동생과 엄마의 싸움, 동네 어느 아줌마와의 싸움 같은 소소한 종류까지 별일 없던 엄마의 일상에 별일이 생기면 그때부터 재은이가 괴로워진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 별일들은 애초에 엄마만 가만히 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긁어 부스럼이라는 것이다.


재은이가 직장생활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느라 정신없이 달리던 즈음 재은이 아버지의 은퇴가 다가왔다. 오랜 기간 만나온 남자 친구가 있었지만 일과 공부 때문에 당장에 결혼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재은이를 엄마가 집요하게 설득하셨다.


아버지가 평생 동안 뿌리신 축의금을 현직에 계실 때 거두셔야 아버지 직장생활의 피날레를 제대로 장식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원 학비로 직장 생활하며 모은 돈을 다 써버린 재은이는 대기업으로 이직하여 몇 년 더 결혼자금을 모아 부모님 도움 없이 결혼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재은이 엄마의 성화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결혼이란 걸 한다면 서로와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던 재은이와 남자 친구였기에 예상치 못하게 결혼의 시기가 당겨졌지만 결혼 결정 후 둘에게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늘 그렇듯이 엄마였다.


빨리 결혼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엄마는 또 재은이를 미치게 만들었다. 엄마가 다니는 절의 스님이 재은이와 남자 친구의 궁합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처음에는 무조건 헤어지라고 종용하더니, 아버지 은퇴 전에 두 자식 중 한 명을 결혼시켜야 되는 엄마는 전략을 바꾸었다. 엄마는 재은이와 남자 친구의 궁합에 대해 좋은 소리를 해주는 점집이 나올 때까지 점집과 철학관을 찾아다녔다.


돈과 시간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라는 소리를 멈췄다. 엄마가 듣기를 원하는 소리만 해주는 점집을 몇 군데 찾았을 터였고 '세상에서 제일 용한' 스님이 푸닥거리를 해주셔서 너희 커플의 궁합이 조금 빠지지만 잘 살 수 있도록 다 조치를 취해놓았다는 거였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결혼 준비 기간 동안 과장하지 않고 하루에 12번씩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지리멸렬한 재은이 엄마의 일상에 딸의 결혼은 일생일대의 중대사였던 것이다.


남자 친구와 재은이는 형식적인 절차는 모두 생략하고 서로가 가진 자금을 전셋집을 구하는데 실속 있게 쓰고 싶었다. 늘 청바지와 점퍼 차림으로 출근하는 IT업계에 다니는 부부에게는 반지도 필요 없었고 명품 시계나 가방도 쓸모없었다. 출퇴근 지옥 서울에서 그나마 강남 직장 가까운 곳에 전셋집을 마련하는 것이 재은이 부부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딸 때문에 엄마는 하루에 12번씩 전화해 12번을 전화통을 붙들고 울었다.


왜 남들 다 받는 다이아반지도 못 받고 초라한 결혼을 하냐고 우셔서 다이아몬드 예물을 준비했더니, 평소에 끼고 다닐 커플링도 따로 맞추었어야지 비싼 다이아반지를 결혼반지라고 매일 끼고 다닐 수는 없지 않으냐, 일상용 결혼반지도 따로 사야 된다고 하셔서 재은이는 남자 친구와 10년 연애기간 동안에도 없었던 커플링을 맞추었다.


한복은 대여할 거라고 했더니 좋은 날에 남이 입던 옷을 왜 입냐고 엉엉 우셔서, 한복을 맞추러 동대문 한복 골목에 왔다고 했더니 한번뿐인 결혼인데 왜 싸구려 시장 옷을 입냐고 엄마가 또 우셔서 청담동 고급 한복점에서 동대문의 4배를 주고 한복을 맞추어 입었다. 그 한복은 딱 2번 입고 붙박이장에 10년째 처박혀있다.


재은이는 천만 원이 넘는 돈을 공중에 날려버리는 것 같은 아까운 기분이 들었지만, '내가 돈을 다 줬는데 너는 왜 그렇게 초라하게 결혼을 하려고 하냐.'는 엄마를 거역할 수가 없었다. 대학원 학비로 저축한 돈을 다 쓴 재은이는 당시 무일푼이었고 친정부모님께 결혼자금으로 4천만 원을 받은 터였다.


엄마가 이러실걸 뻔히 알기에 더더욱 재은이는 직장생활을 몇 년 더 하고 스스로 돈을 모아서 결혼을 하고 싶었던 거였는데. 그렇게 결혼 준비 과정은 재은이의 기억 속에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얼마 전 재은이가 첫 아이를 출산했다. 마흔이 다되어 얻은 귀한 첫 아이였다. 신생아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을 터였는데 재은이에게 전화가 왔다.


재은이는 엄마 때문에 돌아버리겠다고 또 엉엉 울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화면 캡처 2021-10-24 112334.jpg 본 브런치 글 제목 인용 출처 :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사진출처 : https://www.lawyer-monthly.com/2017/09/your-overflowing-rubbish-bin-could-land-you-a-20000-fine-and-criminal-conviction/


사진출처 : https://book.interpark.com/produ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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