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메리 해링턴(Mary Harrington)은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오피니언 섹션에 "Thinking is a luxury good"라는 글을 기고하며 깊이 있는 사고 능력이 더 이상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자원을 가진 소수만이 의식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특별한 자산'이 되어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녀는 스마트폰과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이 우리의 집중력과 문해력을 어떻게 저하시키는지, 그리고 이 현상이 어떻게 새로운 사회 계급을 만들어내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지 날카롭게 분석합니다.
원문: https://www.omanobserver.om/article/1174311/opinion/international/thinking-is-a-luxury-good
> 기고문 해석
1980년대 어린 시절, 부모님은 나를 영국의 발도르프 학교(*일종의 대안학교)에 보내셨다. 당시 학교는 아이들이 TV를 너무 많이 보지 않도록 부모들에게 당부하면서, 대신 독서와 체험 학습, 야외 활동을 강조했다.
그때는 이런 제약이 답답했다. 하지만 아마 학교가 옳았던 것 같다. 오늘날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고 여전히 책을 많이 읽는다. 하지만 학창시절 이후로 훨씬 더 교묘하고 매혹적인 형태의 기술이 등장했다. 바로 인터넷, 특히 스마트폰을 통한 인터넷이다. 요즘 나는 몇 분 이상 집중해야 할 때면 휴대폰을 서랍이나 다른 방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약 100년 전 소위 지능 검사가 발명된 이후 최근까지, 국제 IQ 점수는 '플린 효과'로 알려진 현상 속에서 꾸준히 상승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두뇌 능력을 적용하는 역량은 감소하고 있다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최근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성인 문해력 점수가 정체되다가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가장 가난한 계층에서 가장 급격한 감소가 나타났다. 아이들의 문해력도 하락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존 번-머독은 이를 포스트 문해 문화의 부상과 연결한다. 이 문화에서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대부분의 미디어를 소비하며, 밀도 있는 텍스트보다는 이미지와 짧은 동영상을 선호한다. 다른 연구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이 청소년의 ADHD 증상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으며, 설문에 응한 미국 성인의 4분의 1이 자신이 ADHD일 수 있다고 의심한다. 학교와 대학의 교사들은 학생들이 책 한 권을 다 읽지 못하기 때문에 과제로 내주는 책의 양을 줄이고 있다. 2023년에 미국인의 거의 절반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기술이 우리의 집중력뿐만 아니라 읽고 추론하는 능력까지 바꾸고 있다는 생각은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선뜻 꺼내지 못하는 대화 주제는 이것이 어떻게 또 다른 형태의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크푸드 소비 패턴과 비교해서 생각해보자. 초가공 스낵이 더 흔해지고 기발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해지면서, 선진 사회에서는 건강한 생활 방식을 유지할 사회적, 경제적 자원을 가진 사람들과 비만을 유발하는 식문화에 더 취약한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벌어졌다. 이러한 양극화는 계급적 특성이 강하다. 서구 선진국 전반에서 비만은 빈곤과 강한 상관관계를 갖게 되었다. 나는 포스트 문해(탈문자의 시대)의 흐름 또한 그렇게 될까 두렵다.
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힘들게 학습되는 것이다. 문해력 학자인 매리언 울프가 설명했듯이, 긴 글을 '전문적으로 읽는' 능력을 습득하고 완성하는 것은 말 그대로 우리의 정신을 바꾼다. 이는 우리의 뇌를 재구성하여 어휘력을 늘리고, 뇌 활동을 분석적인 좌뇌로 이동시키며, 집중력, 선형적 추론, 깊은 사고 능력을 연마한다. 이러한 특성들이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표현의 자유, 현대 과학, 자유 민주주의 등의 출현에 기여했다.
디지털 읽기로 형성된 사고 습관은 매우 다르다. 생산성 전문가인 칼 뉴포트가 2016년 저서 '딥 워크'에서 보여주듯이, 디지털 환경은 방해받기 쉽도록 최적화되어 있다. 다양한 시스템들이 알림 등으로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한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중독되기 쉽도록 설계되어 있고, 엄청난 양의 콘텐츠는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거나 숙고하게 하기보다는, 강한 자극과 즉각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짧은 논쟁과 정보만을 소비하게 만든다. 그 결과 우리는 스마트폰에서조차 ‘읽기’보다는 패턴 인식, 스킴밍, 산만한 텍스트 이동에 뇌가 익숙해지고 있다.
빌 게이츠와 에반 스피겔 같은 기술계 유명인사들은 자녀들의 스크린 사용을 제한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다. 다른 이들은 "휴대폰 금지" 계약서에 서명해야 하는 보모를 고용하거나, 그런 기기가 금지되거나 크게 제한되는 발도르프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다. 여기서 계급 격차는 날카롭다. 대부분의 고전적 교육 방식을 지향하는 학교는 유료이며, 예를 들어 미국 실리콘밸리의 '페닌슐라 발도르프 학교'의 초등부 학비는 연간 34,000달러다.
실리콘밸리를 넘어서도, 일부 사람들은 도파민 단식이라는 자기계발 실천의 일환으로 정해진 기간 동안 디지털 자극(소셜미디어나 비디오 게임 같은)을 제한하고 있다.
이런 '금욕적' 인지 훈련법은 여전히 일부 부유층 사이에서만 이뤄진다. 그러나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모르는 세대가 성인이 되는 시대에는, 이런 문화적 격차가 점점 더 뚜렷해질 것이다. 한편엔 집중력과 장기적 추론 능력을 의도적으로 기르고 유지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반면, 대다수는 실질적으로 ‘탈문자’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사회 전체의 인지 명료성이 약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이로 인해 유권자가 소외되거나 정책의 허와 실 사이 격차를 악용할 기회가 어느 한 정파에게 더 유리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이런 '탈문자 세계'는, 엘리트의 정책 언어와 대중적 밈(meme) 언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선동가들에게 유리하다. 뛰어난 소셜미디어 감각을 가진 졸부와 뻔뻔함만 자산인 이들에게 유리할 뿐이다. 돈도, 정치력도 약하고, 목소리도 내기 힘든 이들에게는 절대 유리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