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에 온 지 10개월 차가 되어간다. 벌써 1년 (아, 브라운아이즈 노래가 생각나는 건 아재인가)
그동안 별의별 일들을 다 겪었지만, 요즘 들어 스트레스 지수가 굉장히 높아진 것 같다.
스트레스 지수를 재어보진 않았지만, 35년 내 인생을 보면 이 정도로 생각이 많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책임도 많아졌고 신경 써야 하는 일도 많아졌다는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 스트레스를 해소해야만 한다.
나는 이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원인과 그에 따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여러 유튜버와 기사들을 찾아보았고, 결과적으로 나 스스로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제시하는 뻔하고 해결될 것 같지 않는 방법보다, 나는 우선 내가 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목록화를 시키려고 한다.
1. 가족 (특히 육아)
2. 회사/일
3. 관계 (특히 사람)
1. 가족 (특히 육아)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스트레스가 되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육아를 하는 부모에게 물어보라. 100 이면 100,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있다고 답할 것이다. 나는 현재 3살짜리 남자아이를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키우고 있다. 이 말은 '독박 육아'라는 다른 단어로 대체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장인 장모, 아빠 엄마가 10분 거리에 살고 계셨다. 저녁 밥하기 싫을 때, 기념일 때, 때로는 그냥 힘들 때, 무조건 갔다. 일주일에 2~3번은 정기적으로 갔고, 3~4번은 비정기적으로 갔다. 그냥 가면, 밥도 육아도 해결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와이프가 독박 육아를 하고 있다. 와이프가 힘들어하면, 나도 힘들다.
>> 해결책?
1) 가족이 여행을 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진짜 가족이 왔다. 내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찐 이모가 한국에서 날아왔다. 약 15일간의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을 우리는 쌓을 수 있었다. 함께 여행도 가고, 그동안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하지 못한 이야기도 마주 보며 얘기할 수 있었다. 아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다만, 이모한테 너무 감정을 몰입해서 좀 막대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리고 처제가 갔다. 아들은 정말 이렇게까지 울지 몰랐는데, 오열을 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참 미안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가족을 못 보게 하는 게 맞나 싶었다.
2) 주변 이웃과의 교제를 통한 공동 육아. 나이대가 비슷한 아이들이 함께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언제 이렇게 컸지 싶다. 형/누나가 동생을 챙겨주고, 서로 간식을 나눠먹고 뛰어노는데 즐겁기도 하다. 그러나 옆집도 우리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함께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자녀들의 나이가 다르다 보니, 가끔 싸우거나 잘 안 맞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다.
3) 학교 통학. 현재 아이는 한국으로 치면 단지 내 어린이집과 같은 곳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올해 8월쯤에는 학교를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 어린이집을 갈 때는 굉장히 힘들어했고, 지금도 아침에는 가기 싫다고 하지만, 정작 가면 굉장히 잘 놀고 오는 듯하다. 가서 영어, 프랑스어를 배운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다. 그러나, 학교를 보내려니 학교 등록금 및 입학비가 예상보다 비싸다. 물론 한국에서의 영어유치원을 생각하면 가격이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긴 르완다인데... 아무튼 재정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는 게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들이 무엇이라도 배운다고 한다면, 그걸 지원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부모가 올바른 가치관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오은영 박사의 강의를 자주 보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보다는 나한테 있는 문제를 먼저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금은 더 여유롭고, 평온한 아빠가 되길 스스로가 바란다.
2. 회사/일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그게 왜 스트레스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곳에 목표와 꿈이 있어서 오긴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로 모든 결정이 내 손에 있다는 것이 가끔 굉장히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리고 최근 한국 본부에서 여러 상황이 발생하면서 그 영향이 나에게까지 오고 있다.
>> 해결책?
우선은 일에 집중하는 것.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지만, 또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이다. 나의 J(계획) 형 성향은 모든 일을 정리하고 또 정돈하면서 계획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다 최악의 상황을 막겠다는 일종의 염려병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항상 지나고 보면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잘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사/일에서 최악은 무엇일까? 직원들이 그만두는 것? 업무가 기대만큼 잘 안 되는 것? 일이 정말 너무 많아서 일할 시간이 부족한 것? 나의 평가가 낮은 것? 아니면 잘리는 것?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나의 손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아직 발생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내 문제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을 미리 고민하고 또 그게 마치 지금 있는 일인 양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만약 그 일이 나중에 발생하면, 지금 미리 선 조치해야 하지 않나라는 나의 염려병으로 시작된 스트레스다. 물론, 선조치가 필요한 일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다. 내 계약이 올해 말까지인데, 지금 고민한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게 있나. 우선은 내가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잘 안되면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않나 싶다. 일단 최선을 다했다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해보는 것이 먼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난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3. 관계 (특히 사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지만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그 관계는 독이 된다. 나는 한국에서도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사람은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심지어 대학시절에도 하루 약속이 있었으면 다음날에는 집에서 쉬었다. 가끔은 약속을 너무 가기 싫어서, 온갖 핑계를 대고 안 간 적도 있었다. 그런 사람이 르완다에 와서 회사-집, 회사-집을 반복하니 사람을 만나고 싶어 진다. 그런데 그렇게 또 만나다 보면 혼자 있고 싶어 진다. 진짜 '혼자'. 그런데 뭐, 불가능하다. 나에게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들이 있기 때문에, 혼자 있을 수는 없다.
>> 해결책?
말에는 힘이 있다. 힘들다, 스트레스받는다, 짜증 난다 등등의 부정적인 단어들은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낼 때는 보통 무심결에 하거나, 남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말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나의 힘듦에 큰 관심이 없다. 나의 어려움과 고통이 누군가에게는 좋은 안줏거리가 될 때도 많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나는 내 어려움을 얘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최근 너무 스트레스받고 짜증 나는 일이 많아서, 메모장에 써봤다. 그리고 그걸 다시 읽어보니, 사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결국 스트레스는 내가 만들었고, 그것이 다시 나를 갉아먹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 스트레스의 원인은 해결되지 않았으니, 내 성격상 뇌의 한쪽 부분은 여전히 걱정/염러/근심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르완다에 우연한 기회로 온 것처럼, 모든 문제도 우연한 기회에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은 기도로부터 시작하니, 좀 기도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