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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Oct 06. 2021

언제까지 버티고 참아야 할까?

이것 또한 지나간다고?

존버는 무책임하다. 

혹시 고민을 털어놨는데 상대방으로부터 그냥 참으라는 얘기를 들었거나 버티라는 말을 들으면 실망이 앞선다. 뭔가 해결책을 바랐는데 현재 상황을 바꾸려고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참고 기다리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버텨야 할까?


상담자의 고민에 대한 책임 있는 조언이 되려면 적어도 존버하되 언제까지라는 기간을 정해줘야 한다. 보통 존버하라는 사람들은 그 기한을 명시하지 않거나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말하는 대부분은 직장 상사나 윗사람이다. 참지 말고 하고 싶은데로 하라는 사람은 희한하게 친구가 많고 그 장소는 술자리가 된다. 알코올의 힘은 인내보다는 행동에 더 잘 공급되고, 없어지면 무섭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관성이 있다.


고전과 역사는 결과론이다.

결과가 들어맞고 현재까지 틀리지 않은 이론과 승자의 역사만이 지금 우리에게 전해온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법칙이나 옛글에는 유난히 참고 인내할 경우 결국 이긴다거나 결과가 좋게 나온다는 내용이 많다.


병법 36계에는 이일대로(以逸待勞)라는 말이 있다. 편안한 상태에서 기다린다는 뜻인데 기다리면서 상대를 지치게 만들어 이긴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곧바로 행동에 나서지 말라고 한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되 실제로는 준비를 한 상태에서 행동에 나서지 않고서도 이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말처럼 최소의 인풋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으면 경제학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결과다.


일본의 역사지만 울지 않는 새를 울게 만드는 방법을 놓고 서로 다른 대응을 나타낸 얘기는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500년대 우리에게는 아픈 역사의 주인공이자 적장이다. 다만, 인내의 관점에서 3명의 일본 무장과 관련된 비유(일본의 시조에 언급되었다고 한다)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시사점을 주기에 자주 언급되는 편이다.


울지 않는 새가 있다. 새를 울게 하기 위해서는?  

    죽여버린다며 행동에 나선 오다 노부나가

    울게 만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성격이 급한 오다는 용장(勇將)이나 맹장(猛將)이라 할 수 있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결과를 만든다는 도요토미는 지장(智將), 끝까지 기다린다는 도쿠가와는 말하자면 덕장(德將)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의 백미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도쿠가와에 있다. 전국시대를 통일한 뒤 마지막 승자인 만큼 온갖 고초를 견디고 자존심을 굽힌 행동을 높이 산 것은 당연하다. 역사는 시기와 맥락에 따라 다르다. 지금 만약 어려움에 처했다면 과연 누구의 행동이 가장 효율적인 솔루션일까? 기다려야 한다는 그때는 과연 언제까지 일까?


인내의 '중지곤'

주역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의 괘사는 많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냥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고, 쉬어야 할 때도 있고, 기다리되 뭔가를 갈고닦을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인내의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하고 있는 것은 인내의 왕은 음이 6개 모인 중지곤이다.


사실, 곤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괘이다. 태극기에는 땅을 의미하는 곤이 있다. 그 땅이 2개 겹쳐 있는 것이 주역의 2번째 괘사인 중지곤(곤위지)이다. 하늘이 2개 겹친 중천건과 함께 뒤집어도 모양과 의미가 바뀌는 않는 같은 괘이다. 주역의 묘미는 뒤집었을 때 나온다. 양이 음이 되고 음이 양이 된다. 좋을 때 나쁜 징조가 시작되고, 힘들 때 좋은 일이 시작된다. 그만큼 변화무쌍한 인생사를 보여주는데 뒤집어도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은 그만큼 변하지 않는 힘이 있다.

 

주역의 원문과 공자의 풀이 등을 종합해보면 땅의 기운은 포용이며 순종하고 인내하는 것이다.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침착하게 판단할 것을 얘기한다. 앞서고 싶을 때 나아가지 말고 입을 열고 싶을 때 말부터 하지 말라고 한다. 투명인간처럼 가만히 있는 정지가 아니라 다음 시작을 위해 참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출발선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 출발할지도 도른다. 1년 12개월로 볼 때 곤은 10월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겨울의 중심에 있는 10월은 정리하는 달이자 수확이 끝난 달이다. 수확할 것이 없다고 섣불리 다음 새해 계획표를 세우는 달도 아니다. 1년을 돌아보고 한해의 마지막을 맞으면 된다.


인내는 돌아보고 참는 것이다. 출발하기만을 기다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뒤를 돌아보고 참으면서 다음을 준비하라는 의미다. 존버가 그렇다. 세상이 바뀌기만을,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기만을 기다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있는 곳이 내리막인지, 바닥인지, 바닥을 쳤는지, 오르막인지는 모른다. 더 내려갈 수도 있고, 이제는 올라갈 일만 남았을 수도 있다. 그냥 지나간 과거를 복기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존버다. 


존버와 인내의 끝은 유레카!

심리학에서는 부화라는 용어가 있다. 부화 효과(incubation effect)는 어떤 문제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 닭이 알을 품는 것처럼 가만히 뒀다가 어느 순간 해결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꽤 유용하고 실제로 그렇게 될 때가 많다. 군대에서 힘들었던 시절 소위였던 초임 장교(실제 그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PC 오락을 좋아했다)가 했던 이 얘기가 그렇게 내 인생에 도움이 되고 남들에게 조언도 하게 된다. 존버와 인내의 최고 결과는 유레카!라고 외치는 순간이 찾아오는 부화 효과라고 하겠다.


에필로그.

주식 투자를 하다 보면 존버하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유튜브나 언론을 통해 많이 나온다. 주식을 샀으면 계좌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라거나, 주식은 파는 게 아니라거나, 주식은 박막례 할머니처럼 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참고 버티면 언젠가는 올라간다는 얘기인데 냉정하게 얘기하면 틀린 말이다. 모든 주식이 언젠가는 올라가지 않는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기회비용과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존버하라는 충고를 남에게 할 때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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