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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Oct 09. 2021

말만 잘해도 먹고 살더라

쇼호스트의 스타일 L :  live

말이 직업인 사람들

저는 기자입니다. 직장 생활을 한지는 20년이 됐습니다. 아내는 쇼호스트입니다. 저보다 훨씬 오랫동안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누가 더 말을 잘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가 보기에는 아내가 훨씬 말을 잘합니다. 어떤 사안(생소한 것)에 대해 스토리텔링을 통해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능력은 탁월합니다. 얘기에는 기승전결이 있습니다. 


제 주변에는 뉴스가 어렵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자들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뉴스의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심지어 말까지 빠르다고 합니다. 요즘 TV를 틀어보면 그렇습니다. 말은 빠르고 좀처럼 잘 들리지 않습니다. TV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유튜브가 대세라고 하죠. 유튜브에서는 강호의 고수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매체 출신은 물론 신흥 강호들과 인플루언서들이 체급 없는 단판 승부를 벌이고 있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희는 종종 이런 얘기를 합니다. 말만 잘해도 먹고살더라…


말만 잘해도 먹고살 수 있을까요? 저의 경험으로 보면 맞습니다. 말은 많이 알아서 잘할 수도 있지만 말을 하는 능력은 제가 보기에는 지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기자들의 경우입니다. 기자들은 부서 이동을 자주 합니다. 1년에 한 번씩 출입처가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입처가 바뀌는 것은 취재 대상이 아예 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상이 달라지면 기자가 쓰는 말과 글의 내용이 전혀 달라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출입처에서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는 기자는 다른 부서에서도 말을 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탓에 취재를 잘하는 기자와 생방송 출연에서 말을 잘하는 기자가 꼭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말을 잘하는 기자들은 어떻게 말을 할까요? 기자의 말하기가 논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쇼호스트의 말하기는 설득입니다.


촉촉함인가 탄력인가?

먹방의 시대입니다. 요리 관련 TV 프로그램을 유난히 많이 볼 수 있는데요. 한 예능 채널에서 유명 요리 전문가가 운동선수 출신의 이른바 ‘요린이’(요리 + 초보자)들에게 음식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원료를 다듬는 것부터 칼 써는 것까지 요린이들의 요리 실력은 좌충우돌하고 있습니다. 도마 위의 칼은 외줄 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죠. 당연히 질문도 많습니다. 씻고, 다듬고, 자르고, 넣고, 볶고, 무치고, 데우고… 요리의 전 과정에서 요린이들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요리 전문가는 자세히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버럭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린이가 따라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수가 계속 나옵니다.


어떤 요리 연구가는 초보자도 알 수 있는 쉬운 방법을 개발해 “이것만 하면 훌륭한 요리가 된다”며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레시피를 알려줍니다. 이상하게 따라만 하면 어느 정도 맛이 나기는 합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너무도 많은 재료로 속도를 내는 탓에 아예 따라가기가 힘듭니다. 하나, 둘, 셋 이렇게 순서를 나눠 설명은 하지만 시청자들은 왜 저렇게 순서가 나뉘어 있는지 이유는 모릅니다. 그저 따라가기에 바쁩니다.


”아니 왜 저렇게 어떤 건 얇게 썰어야 하고, 저건 왜 크게 썰어야 하는지 근본 원리를 설명을 해주면 될 텐데... 원료에 따라 익는 시간, 간이 배는 시간이 다른 거잖아.”


과거 어느 때보다 젊은 세대들의 골프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밀접 접촉하는 운동이 어려워지면서 상대적으로 야외에서 일정한 거리두기가 가능한 골프가 여행과 운동의 대안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유튜브를 검색해보면 '골린이'들에게 골프를 가르쳐 주는 콘텐츠가 많습니다. 골프 프로들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저마다의 요령과 꿀팁(비법)을 전수해줍니다.

 

그런데 골린이들이 골프를 처음 시작하는 과정은 너무도 힘듭니다. 요린이가 달걀프라이 만드는 것조차 힘든 것과 같습니다. 어떤 프로는 골반을 잡으라고 하고, 어떤 프로는 팔을 고정시키라고 하고, 어떤 프로는 궤도를 일직선으로 가라고 하고… 그런 와중에 한 골프 프로가 진행하는 채널이 유난히 눈에 띕니다.


“저렇게 원리를 짚어주니 왜 그렇게 자세를 하라고 하는지 알겠네. 결국 말만 다를 뿐 다 같은 얘기인데…”


쇼호스트는 제품이나 상품을 시청자, 즉 직접 볼 수 없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파는 사람입니다. 시청자들은 방송을 하는 그 시간에 용케 채널을 돌리다가 맞닥뜨린 사람들입니다. 쇼호스트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예를 들어 TV 홈쇼핑이라면 그 시간대에 채널에 걸려든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구매로 이어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안 사겠다고 마음을 먹은 시청자들을 어느덧 구매에 나서게 만드는 쇼호스트의 말하기에서는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지금 무엇을 팔고 있는 것인가?   


쇼호스트의 메시지는 간결합니다. 흔히 화장품이라고 하는 미용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메시지가 많으면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고 다른 제품과 차별화가 되지 않습니다. 만병통치약이 우리 몸에 그다지 큰 효능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은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핵심을 부각한 뒤 원리를 설명하고 다양하게 반복합니다. 상투적으로 들리지 않게 이것저것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같은 얘기입니다. 


촉촉함과 탄력을 동시에 얘기하지 않습니다. 촉촉함을 무기로 내세운 제품이라면 탄력은 버립니다. 그래야 시청자들에게 각인되고 오래 남습니다. 그게 본질입니다. 피부에 광이 나고, 어려 보이고, 탄력을 주고, 주름을 없애주는 그런 화장품은 없습니다. 만병통치약이 없듯이 말입니다. 많은 얘기 끝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화장품은 의약품이 아닌 탓에 쓸 수 있는 단어, 할 수 있는 말 조차도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디에 좋다고 하고 싶은데 그렇게 무심코 말하는 순간 효능을 과대 포장하게 되고 방송 심의는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데까지 10년

혹시 자신의 말을 녹음해서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요즘은 유튜브가 나와서 그럴 기회가 더 늘었는지 모릅니다. 혹시 없다면 한 번쯤 녹음해서 들어보는 건 자신의 말투나 습관, 화법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원고를 쓰거나 인위적으로 말하는 상황보다는 상대방과 전화 통화할 때 녹음을 해봐도 좋고, 발표나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한다면 직접 녹화해서 보는 것도 좋습니다.

 

한번 해보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내 말이 생각보다 논리 정연하지 않거나 말을 어렵게 하거나 중언부언하거나 결론이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작할 때 전하려던 메시지가 다른 말로 끝나기도 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과한 기대입니다. 말하기는 단지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시작할 때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말을 어떻게 끝낼지를 대충이라도 생각해둬야 한다는 겁니다. 


생방송을 진행하는 쇼호스트는 입사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생방송에 투입됩니다. 하루에 몇 시간 이상 소화해야 하는 대본 없는 말하기입니다. 대본이 없는 말하기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아내는 정신 차리고 말하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때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느껴지고 들리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단계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이 상품을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까에 대해 고민해야 해. 핸드폰을 판다고 하면 그걸 들고 '얘는 어떤 거예요' ‘얘는 좋아요' '얘는 달라요' '얘는 최신이에요'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피드백은 어떻게 오고 있고, 주문은 어떻게 오고 있고, 어떤 말을 했을 때 반응이 오고, 어떤 부분에서 채널이 돌아가는지 끊임없이 체크하는 눈치의 말하기가 필요해. 그 순간에 나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까, 볼펜을 들까, 말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다음 말은 무엇을 하고, 순간순간 어휘 선택 전략을 생각해. 내 말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들릴까?”


TV를 봅니다. 출연자들의 얘기를 듣습니다. 어떤 말은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고, 어떤 말은 나쁜 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가, 결국은 나쁘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팩트인 사실은 없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 분석만을 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논쟁을 피하기 위해 양비론을 쓰거나 답답한 말하기, 책잡히지 않기 위한 말하기, 상대의 질문과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말하기는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무책임한 말하기입니다.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지라는 의문은 채널을 돌리게 합니다.


글에 문체가 있다면 말에는 어투가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문체는 글의 몸통이고 어투는 말을 하는 버릇이나 본새입니다. 문체와 어투는 글과 말의 몸통이나 뼈대지만 내용 자체보다는 그걸 어떻게 전달하는지 그 방식을 의미합니다. 혹시 모르는 사람의 글을 읽었을 때 누가 쓴 건지 필자가 떠오른 적이 있으신가요? 소위 글발이 좀 있는 대가들은 말이나 글에서 개성과 힘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자주 쓰는 단어가 있을 수 있고 글을 시작하고 끝맺는 방식에서도 특징이 드러납니다. 일종의 습관이라고 볼 수 있는 스타일이 있습니다. 이 스타일이 재미있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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