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비트코인 모르는 분들은 이제 없습니다. 직접 투자를 하든 그렇지 않든 하루에도 수십 번씩 TV와 인터넷, 각종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보고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고, 기차나 지하철,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시세를 확인하고 투자하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에 의한 가상화폐의 한 형태지만 대표 격인 비트코인은 그냥 보통명사처럼 쓰이기도 합니다. 비트코인(Bitcoin.org) 측이 밝히는 정의는 이렇습니다.
정의
1. 새로운 지불 시스템이자 완전한 디지털 화폐를 가능하게 하는 합의된 네트워크
2. 중앙 권력이나 중간 상인 없이 사용자에 의해 작동하는 최초의 분권화된 개인 간(P2P) 지불 망
3.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삼식 부기 시스템
4. '비밀-화폐' 개념의 최초의 구현
비트코인 측이 밝힌 정의가 이렇다면, 만든 것은 누구일까요?
1. 1998년 웨이 다이가 아이디어 제시
2.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 논문 제안
3.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 설계서와 개념 증명 출판
4. 2010년 사토시 나카모토 글 게시 중단 잠적
웨이 다이는 중국계로 비트코인의 전신이라 볼 수 있는 B-money의 창시자입니다. 실제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나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 모두 웨이 다이의 아이디어를 이용해 코인을 만들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자면, 사토시 나카모토는 누구일까요?
일본인, 데이브 클라이먼, 크레이그 라이트, 일론 머스크... and who?
이름만으로 보면 일본계로 보이지만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일단, 비트코인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웨이 다이는 자신이 아니라고 했고, 비트코인 전도사 격이자 자신이 회사인 테슬라도 엄청난 양을 보유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도 자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두 사람과는 달리 최근에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하거나 사토시의 유족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오래전에 사망한 미국인 데이브 클라이먼과 그 동업자인 크레이그 라이트입니다. 이들(측)이 서로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초창기에 채굴한 수십조 원 가치의 비트코인 100만 개 소유권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필명으로 책을 썼는데, 저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죽은 뒤에 책이 엄청나게 팔렸습니다. 막대한 인세가 들어오니 이제는 진짜 필자를 찾아야 하는데, 진짜 필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고, 책 집필에 관여했거나 알고 있던 사람들이 서로 자신이 필자라고 주장하는 재판이 지금 미국 플로리다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라피티와 뱅크시
비트코인에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상의 인물이 있다면 미술계에는 뱅크시가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미술계가 아닌 그라피티(graffiti)라는 일종의 벽화, 거리 미술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사실, 그라피티는 우리말로 정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생겨나서 확립된 현상이나 개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라피티라 불리는 다양한 거리 미술은 전 세계적으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라피티는 분무기로 그려진 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을 뜻하는 말을 뜻합니다. 길거리 여기저기 벽면에 낙서처럼 그리거나 페인트를 분무기로 내뿜어서 그리는 그림(우리말샘)으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특이할만한 것은 국립국어원이 2007년에 그라피티를 ‘길거리 그림’으로 순화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래하지 않은 개념을 억지로 우리말로 바꿀 경우 오히려 본래의 개념을 정확히 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라피티 역시 그렇습니다. 국립국어원의 정의를 따르게 되면 그림으로만 볼 수도 없고, 길거리 벽화에만 한정되지 않는 그라피티의 특성을 전달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그라피티 정의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인 낙서가 훨씬 정확한 개념으로 생각됩니다. 낙서는 아무 곳에나 함부로 쓰는 것입니다. 낙서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그라피티는 엄연히 저작물이 되고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다는 그라피티는 이제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거리 곳곳, 골목마다 그라피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걸음마 수준이라면, 유럽과 미국에서는 법적 쟁점이 되기도 합니다.
뱅크시(Banksy)는 베일 속에 가려진 인물입니다. 영화감독이기도 한 뱅크시는 자신을 알리지 않고 많은 그라피티를 남겼고, 뱅크시의 그라피티가 있는 곳은 유명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그냥 일반인이 벽에 낙서를 하면 현행범으로 체포될 가능성이 높지만 뱅크시의 작품은 이제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이런 뉴스도 나왔습니다. 뱅크시가 2005년에 남긴 'Love is in the Air'라는 작품입니다. 실제 작품은 아래와 조금 다르지만 이 작품이 만 조각으로 나뉘어 NFT(Non-Fungible Token : 대체 불가능한 토큰)으로 개당 1500달러 정도에 소유권을 판매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150억 원이 넘는 가치를 가진 셈입니다.
뱅크시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거리 미술가는 그림 실력만큼이나 신출귀몰한 능력과 그 메시지로 작품의 가치가 더욱 상한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라피티 자체가 애당초 불법이었으니 뱅크시는 자신의 이름을 철저히 숨기고 일을 시작했을지 모릅니다. 작품의 수준과 속도를 볼 때 도와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일부 작품은 개인이 아닌 팀으로 활동한 결과라는 얘기도 합니다. 뱅크시를 아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고, 성장 과정을 얘기하는 주변 인물들의 증언도 소개되지만 뱅크시는 현재까지 베일에 쌓여 있고, '부캐' 뱅크시의 작품은 진품임을 인정받으려고 NFT로까지 개발되어 팔리고, 경매장에서 고가로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부캐' 활용법... 산지박·지뢰복·지화명이
'부캐'는 기성세대들에게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게임을 할 때 자신이 쓰는 주요(主) 캐릭터 외에 서브 개념의 부(副) 캐릭터를 의미하는데 이걸 다시 줄여서 '부캐'라고 한다고 합니다. 근데, 요즘은 평소의 내가 아닌 다른 나를 '부캐'라고 더 잘 씁니다. 메타버스 등 디지털 환경에서는 얼마든지 '부캐'가 가능합니다. 이런 현상과 활용법의 단초를 주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캐'는 어떨 때 쓰고 왜 쓰는 것일까요?
주역의 23번째 괘는 '산지박'입니다. 산이 땅 위에 있는데 붙어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날짜로는 음력 9월이니 초겨울에 가깝습니다. 산지박의 의미는 '죽음'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즉, 기력이 다했을 때는 새 생명을 도모하는 것이 해법일 수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본캐'는 힘듭니다. 뭔가 잘 되고 있을 때도 그렇지만 잘 안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본캐'는 운신의 폭도 좁습니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랴, 가정, 직장에서 내가 처한 위치에 맞게 행동하랴, 수없이 많은 내가 있습니다. 그냥 내 이름 석자를 떼어놓고 한번 살아보고 싶습니다. 그럴 때 '부캐'가 필요합니다.
'산지박'이 뒤집어진 24번째 괘는 부활을 의미하는 '지뢰복'입니다. 음력 11월을 의미하기도 하고 봄을 앞두고 땅 밑에 기운이 들썩거린다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다만 부활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반복해서 새로운 것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이것도 요즘 말로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부캐'로 나름대로의 의미도 찾고 나아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본캐'의 부활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본캐'에게는 '부캐'가 필요합니다. 주인공 하나만 고집하다가 주인공이 한계에 다다르면 더 이상 나아가기 힘듭니다. 하나의 직업, 하나의 삶의 방식, 하나의 가치관으로 막힘없이 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부캐'를 활용해 부활을 시도해봅니다.
조금 다른 의미지만 36번째 주역의 괘는 '지화명이'입니다. 일단 의미는 땅 밑으로 불이 들어간 상황입니다. 어두워졌을 때는 억지로 밝히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이 괘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둠은 감춰진 것이고 은둔을 의미합니다. 어두워질 때까지는 최선을 다하되 정말 어둠이 찾아왔다면 완전히 쉬어야 한다고 이 괘는 말합니다. 애써 밝히지 말라는 것을 역시 '본캐' '부캐'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내 이름 석자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왠지 아무것도 되지 않고 막다른 골목에 처한 상황입니다. 그냥 방전된 느낌이고 의욕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나의 '본캐'는 쉬게 내버려 둡니다. '본캐'를 off(플러그를 뽑고)하고 '부캐'를 on 해보는 겁니다. '본캐'의 휴식 시간은 언제까지 일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등판 일정을 재촉해서도 안됩니다. 지화명이의 지혜가 그렇습니다.
에필로그.
사토시 나카모토와 뱅크시의 '본캐'는 어떤 사람들일까요?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이뤄왔고, 앞으로 이룰 것을 생각한다면 굳이 영원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분명 시작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 나쁘지 않았고,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현대인의 정신 건강을 치유하는데 이 '부캐'도 훌륭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수많은 작가님들도 다들 필명을 사용합니다. 나름대로 '부캐'인 셈입니다. 우리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궁금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에게는 비트코인을 발명한 사람의 신원은 종이를 발명한 사람의 신원만큼의 의의만 있을 것이다." (Bitcoi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