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와 한계를 극복하는 법... '풍산점'
메타인지는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일입니다. 내가 아는 것과 내가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의외로 중요합니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할 때 연습 문제를 풀어봐야 하는 이유는 내가 모르는 것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섭니다. 요즘 이른바 ‘인강’을 듣는 분들 많으십니다. ‘인강’으로 공부할 때 아무리 1타 강사라 해도 강의만 듣고 있으면 이해가 되고 모든 것이 아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강의를 듣고 난 뒤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내 말을 이용해 설명해보는 것)을 거치지 않으면 ‘내가 알게 된 것’과 ‘내가 여전히 모르는 것’을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정확히 알고 모르는지 메타인지를 하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입니다.
메타인지는 지적 활동에만 쓰이는 게 아닙니다. 나의 능력을 파악하는 것은 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만큼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합니다. 또 사고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웨이트 운동을 할 때 내가 들 수 있는 최대 중량을 알고 늘려가는 것은 부상을 방지하고 체력을 기르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술 마시는 주량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량은 내가 마실 수 있는 알코올의 최대치가 아니라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적정 수준입니다. 누구는 그 자리에서 실수하지 않을 만큼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다음날 숙취에 시달리지 않고 온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도 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자기가 자신을 제일 잘 알기 때문입니다. 돈은 어떤가요? 내 재산에 대한 메타인지는 내가 투자할 수 있는 수준을 가늠하게 하고, 내 지출의 한계를 정해줍니다. 그래서 메타인지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의 한계를 아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한계는 사실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이 변하고 있다면 거기에 맞춰 한계도 바뀔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방향은 어디가 될지 모릅니다. 한계가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력이 퇴보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합니다. 한계치가 늘어나는 것은 발전입니다.
변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임계점을 돌파해야 합니다. 임계점은 참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어학사전을 찾아봅니다. 임계점(臨界點)은 영어로 ‘critical point’입니다. 말하자면 대단히 중요한 위치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물질의 구조와 성질이 다른 상태로 바뀔 때의 온도와 압력”이라고 정의합니다. 임계점은 물질의 한계점인 셈입니다. 그 점을 넘으면 원래 물질이 아닌 다른 것이 됩니다. 하지만, 임계점 직전까지는 물질이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부적으로 폭발적인 에너지가 모아지고 있는 상태일 뿐 겉보기에는 똑같습니다. 변화와 성장은 항상 임계점에서 이뤄진다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무리가 필요한 셈입니다. 역설적으로 임계점만을 유지한다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무리를 해봐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패는 당연하고 실패를 경험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 됩니다. 다음에는 실패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피크 퍼포먼스(peak performanc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최고의 성과를 낸다는 의미입니다. 말하자면 인풋과 아웃풋이 최대인 상태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한계 직전의 내 능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낸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 여기서 포인트는 한계 직전의 능력을 투입하는 방법입니다. 내 몸이 탈 나지 않으면서 한계 직전까지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근에 출간된 동명의 책(‘피크 퍼포먼스’ 브래드 스털버그⋅스티브 매그니스)에서는 적당히 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한계 수준의 노력이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지만 중간중간에 철저하게 쉬는 것이 탈나지(burn out) 않고 지속적으로 계속할 수 있는 비법이라는 취지의 내용입니다.
주역에서도 이 한계를 의미하는 괘가 있습니다. 53번째 ‘풍산점’입니다. 이 괘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바람 밑에 산이 있습니다. 또한, 산 위에 바람이 부는 모양이 될 수도 있고, 산에서 나무가 자라는 것으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날아오른다는 의미로 보면 더욱 설명과 이해가 쉬워집니다. 가만히 서있던 것이 날아가려면 물건을 위로 떠받드는 양력이 필요합니다. 비행기를 생각하면 됩니다. 수백 톤 무게의 비행기는 이륙을 위해 엄청난 속도의 가속력으로 공기의 흐름을 바꾸는 양력을 만듭니다. 이때 양력을 만드는 일정 속도가 바로 날기 위한 임계점인 셈입니다. 임계점 이하의 속도에서는 양력이 생기지 않으므로 아무리 활주로가 길어도 날아오를 수 없습니다. 임계점을 돌파하는 순간 서있던 비행기는 달리는 비행기에서 날아오르는 비행기로 구조와 성질이 바뀝니다.
주역의 ‘풍산점’ 괘는 정지했던 것이 날아가려면 힘이 축적되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하는데, 그 방법이 중요합니다. 임계점을 돌파해서 앞으로 나아갈 때는 단칼에 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할 것을 강조합니다. 도약은 점진적으로 해야 오래 날 수 있습니다. 착륙도 마찬가지입니다. 갑자기 내려온다면 착륙이 아니라 추락이 됩니다. 점진적으로 서서히 내려오는 소프트 랜딩(soft-landing)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변화는 갑작스러워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점’ 괘에서 배웁니다.
에필로그.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저 역시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하곤 했는데 그게 엄청난 짐이 됩니다. 그때부터 나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가 가동되기 시작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남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하기도 조심스럽습니다. 능력의 한계치까지 노력하라는 채찍질로 느껴질까 더욱 그렇습니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 대신 지나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 노력하라는 말로 바꿔봤습니다. 당장 부담은 없어지는데 지나고 후회하지 않은 때가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말이든, 그리스의 경구를 소크라테스가 해석했든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왜 명언인지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