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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Oct 06. 2021

사는 게 힘들까? 파는 게 힘들까?

손해를 보는 게 잃는 것만을 의미할까?

물건을 사는 게 힘들까? 파는 게 힘들까? 

언뜻 생각해보면 사는 건 돈이 있어야 하고, 파는 건 있는걸 그냥 내다 팔면 되니 파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우리 생활에서는 사는 것보다 파는 게 어렵다. 주식 투자가 그렇고 부동산 매매가 그렇다. 주식을 한 번이라도 사 본 사람들은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할 수 있다. 증권회사 광고에도 파는 타이밍을 정확히 알려준다며 새로운 상품을 내놓는다.


파는 게 어려울 때는 이익을 내고 있을 때 보다 손해를 보고 있을 때는 특히 더 타이밍을 잡기 힘들다. 왜 그럴까? 이익을 내고 있을 때는 조금만 더 있으면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심리가 있다. 인간의 심리는 지금의 추세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오르막이면 계속 오를 것으로 내리막이면 계속 내려갈 것으로 예측하는 게 편하다는 의미다. 이게 무너지는 순간이 변곡점이다. 플러스가 마이너스가 되고 마이너스가 플러스가 되는 순간이다. 변곡점의 순간은 언제나 온다.


주식 투자에서 손절은 내가 산 가격보다도 낮은 가격에 내다 파는 것을 말한다. 로스컷(loss cut)이다. 더 이상 손해를 보지 않겠다고 끊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 손에 있는걸 크게 생각한다. 앞으로 벌 수 있는 가능성보다도 당장 내 손안에 있는 게 줄어드는 손해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심리다. 주식 투자 전문가가 유튜브 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다. 투자를 하다 보면 마이너스 5%, 10%의 순간은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는데 그걸 견딜 수 있는 개미 투자자들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버티면 더 벌 수도 있지만 5%, 10% 마이너스에 주식을 바로 처분한다. 그래서 개미 투자자들의 잔고는 시간이 갈수록 크기가 줄어든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에게 '손실회피' 편향이라는 것이 있다고 설명한다. 지금 현재 상태에서 이득을 얻을 때보다 손실을 볼 때 잃을 값어치가 더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길 때 훨씬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심리는 확실히 얻을 수 있는 액수를 선호하고, 액수가 적어도 손실이 크지 않은 쪽을 선택한다. 전통적인 경제학의 효용 이론을 수정하게 만든 인간의 심리는 그래서 '손절'을 택하고 그것도 자주 선택하게 된다. 


인간관계 손절의 시대

사고파는 매매가 아니라 인간관계에 이를 대입해보면 어떨까? 미운 사람이 있다. 친한 관계가 아니면 연락을 끊으면 된다. 전화가 오면 받지 않고, 전화번호부에서 삭제하면 된다. 문제는 친한 관계이거나 인연을 끊을 수 없는 경우에 찾아온다.


교제 중인 연인이라면 헤어지는 것이 손절이다. 헤어지자고 말하는 쪽이 손해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며 손절을 실행하는 사람이 된다. 관계를 지속해봐야 싫은 사람이 좋아지는 변곡점이 오거나 이익이 생길 것 같지 않다고 생각될 때 손절을 택한다. 꼭 손해는 아니라도 시간만 지속되는 지지부진한 권태기가 오래 지속될 때도 연인들은 손절을 생각하게 된다.


부부간의 손절은 이혼이다. 타인의 이혼에 대해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제3자는 모르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에게 손절은 서로에게 윈윈이 될 수도 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의 이혼 사유의 단골 메뉴는 성격차이다. 하지만, 정말 연애기간이 짧거나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결혼 전에 상대방이 대충 어떤 성격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첫눈에 반해 결혼했다면 앞으로 알게 될, 나와 맞지 않은 배우자의 행동들은 참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 이런 경우에 발생한다. 결혼하면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거나 예전에는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다. 


과거에 비해 손절을 결심하는 기간이 짧아졌다. 세상이 변해가는 속도 탓도 있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슛폼 콘텐츠의 시대에는 길게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 1시간짜리 영화도 첫 5분에 더 볼지, 다른 것을 볼지 여부가 결정된다. 주식투자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렇다. 왜 그럴까?


내가 호구냐?... 손절의 알고리즘

호구(虎口)는 호랑이의 입이다. 호랑이의 입 속만큼 위험한 곳이 없다.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처지다. 바둑에서 호구는 상대방의 돌 석점에 중간이 빈 공간이다. 돌을 놓는 순간 바로 죽는다. 지뢰밭인 셈이다. 그런데 호구라는 말은 요즘 이럴 때 더 많이 쓴다. 내가 호구냐? 


매달 월급명세서에 정부에서 거둬가는 세금은 늘어만 가는데 돌아오는 것은 없다는 직장인.

외제차 굴리며 건물 몇 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의 탈세 소식을 접해야 하는 서민.

돈 부탁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나에게 전화 오는 친구.

다른 형제들 다 놔두고 나에게 먼저 어려운 얘기 꺼내는 가족.

삼시 세끼 챙겨주는 아내의 고마움은 모르고 집안일을 도와주기는커녕 큰 소리만 치는 남편.


이런 사람들을 보고 “내가 호구냐?”를 외치는 순간은 상대방이 손절의 시기를 진지하게 저울질하고 있다는 말이다. 



손절의 미학 '산택손'

주역에는 2개의 ‘손’ 괘가 나온다. 41번째의 '산택손’과 57번째의 '중풍손’이다. 산택손은 손절의 괘이고 중풍손은 손이 2개가 겹쳐 흔들리는 수동의 의미다. 여기서는 산택손이다. 어려운 얘기지만 주역에서 앞(정확히는 외괘, 상괘)에 산이 나오면 일단 뭔가 답답한 상태다. 막히고, 잘 안되고, 일단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심심풀이로 괘을 봤는데 앞에 산이 있는 괘가 나오면 일단 기대는 말아야 한다. 주역을 나열해보면 산이 먼저 나오는 괘는 26번째 산천대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풀이될 때가 많다.

산택손은 산 아래 연못, 막혀 있는 연못, 연못을 퍼서 산을 쌓는 다양한 의미로 풀이된다. 핵심은 내 것을 덜어내는 것에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기면 당장은 손해로 보인다.


하지만, 주역은 얘기한다. 손실을 보는 것이 잃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당장은 마이너스지만 결국에는 플러스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당장 손해를 보면 타인의 원망을 들을 일이 없다. 100인데 반반 나누지 않고 60대 40으로 내가 조금 덜 가지면 상대는 괜히 미안해한다. 그리고 내 마음은 오히려 편해진다. 최고의 협상은 모두가 만족하는 결말이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손해 봤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옳은 길이라면 지금은 당장 손해를 봐도 결국에는 이익을 얻는다고 주역은 말한다.

  

일단 손절을 마음먹었으면 그다음은 타이밍이다. 주식에서 손절의 시기를 놓치면 비자발적 장기투자가 된다. 손실을 만회할 때까지 기다리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그렇지 않다. 인간의 성격은 바뀌기 힘든 경우가 많다. 물건은 고쳐서 쓴다지만 몇 번의 기회에도 바뀌지 않는 나와 맞지 않는 타인의 성격은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서 참고 살라는 부모님이나 윗사람의 얘기는 요즘 세대들에게 더욱 와닿지 않는다. 내가 호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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