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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Nov 07. 2021

언제 쉬어야 할까?

벽에 부딪힐 때 제대로 멍 때림을 해야 하는 이유

멀티태스킹에 대한 반론

부지런한 사람들 가운데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1시간을 다시 2개로 나누어 30분 단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1일 48시간을 살며 2배의 성과를 내는 분들의 특징 - 적게 자고, 계획대로 살며, 실수에 대한 복기(feedback)가 빠르며, 일기를 쓰고,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 

멀티태스킹에 대한 짧은 생각. 사실 개인적으로는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누군가와 있을 때 다른 이의 전화를 받거나, SNS를 하거나, 얘기가 길어지면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를 원하거나, 나름대로 결론을 맺고 싶어 한다. 한마디로 상대방이 나에게 집중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나의 관심도 멀어진다.

 

인간의 뇌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 힘들다. 수없이 많은 정보에 노출되지만 대부분 그냥 지나갈 뿐 나의 주의를 이끄는 것이 잘 없는 것은 뇌가 그만큼 ‘멍’을 때리고 있기 때문이다. 뇌의 디폴트 값은 ‘멍’을 때리고 있는 것이라고 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뇌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멀티태스킹은 말하자면 2기통 뇌 엔진을 돌리는 것과 같다.


공부·일에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공통점

학창 시절부터 하루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전교 1등을 하는 형의 친구에서, 공부 잘하는 같은 반 동료는 항상 관찰의 대상이었다. 직장에 들어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관찰하는 습성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관찰한 그들은 다이어리를 꼼꼼히 적고, 항상 전화로 덜컥 만나기보다는 약속을 통해 예정된 만남을 갖기를 좋아했다. 같은 시간을 일하고, 먹고, 보냈는데 성과가 난 사람들은 수면시간이 적은 것일까?


첫 번째 해답은 ‘몰입(flow)’이다. 이제는 너무도 많이 언급되고 알려져서 ‘몰입’을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다. 집중해서 성과를 올린다는 개념인데, 뇌가 얻는 즐거움까지 크니 이상적인 두뇌의 활용 상태라 하겠다. 다만 몰입은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빠져들기까지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한다. 학교에서 문제를 풀 때도,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주변이 조금 시끄러워도 몰입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얘기를 듣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듣지 못했다는 친구나 동료들의 공통점은 몰입이 가능한 부류였다.


두 번째는 쉴 때 확실히 쉰다는 점이다. 공부를 잘하거나,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놀 때 제대로 노는 경우가 많았다. 시험을 볼 때까지 말도 잘 없던 애가 시험이 끝난 직후 아예 책과 담을 쌓아놓고 당구장에서 사는가 하면, 가방 하나 매고 전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친구도 있었다. 며칠간 연락을 끊고 실컷 놀다가 나타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세 번째는 해보다가 안되면 미련을 갖지 않고 포기했다. 말하자면 끙끙 앓는 경우가 없었다. 내 능력보다 약간 어려운 문제나 일을 맡아서 해결할 때 성취감이 가장 높다고들 한다. 너무 쉬워도, 너무 어려워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아예 포기하게 된다. 그 난이도의 수준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능력과 실력에 대한 메타인지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는데, 사실 이것도 상당히 어렵다.


휴식은 제대로 무료하게 멍 때려야

칼 뉴포트(Cal Newport)의 저서 <딥 워크(deep work)>를 보면 몰입과 휴식에 대한 혜안을 얻을 수 있다. 완전한 집중 상태를 통해서 일의 최대 성과를 내는 것이 딥 워크다. 1년에 2번 이른바 ‘생각주간’을 갖는 빌게이츠와 해리포터를 집필할 때는 모든 SNS를 차단하는 조엔롤링의 사례도 나온다. 딥 워크를 방해하는 네트워크 도구를 끄는 것이 공통점이다.


하지만, 나에게 더 눈에 띄었던 것은 휴식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다. 뉴포트는 인간의 의지력이 유한한 만큼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몰입에는 습관과 시간, 장소가 필요한 만큼 그 시간에 쓰일 수 있는 내 의지력의 원천이 없어지지 않도록 휴식 시간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휴식 시간에는 인터넷이나 전화, SNS도 하지 말아야 한다. 뇌가 쉴 수 없기 때문이다. 통찰력과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부와 공부, 일과 일, 업무와 업무 사이에 극단적으로 무료한 멍 때리기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어떤 것이 제대로 된 휴식인지 정확한 설명이라고 하겠다.

 

언제 쉬어야 할까? 수천수·택뢰수·수산건

그래서 얻은 결론은 쉴 때 제대로 쉬어야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쉬어야 한다. 그렇다면 언제 쉬어야 할까? 주역에서 해답을 찾아본다. 주역 64괘 가운데 쉬는 것을 주제로 얘기하는 괘는 모두 3개이다. 5번째 ‘수천수’와 17번째 ‘택뢰수’ 그리고 39번째 ‘수산건’이다. 모두 휴식을 얘기하지만, 그 상황과 해법은 차이가 있다.

 

먼저 나를 둘러싼 환경이 꽉 막혀 있거나 좋지않을 때는 ‘수천수’와 ‘수산건’의 상황이다. 주역에서 앞에 수(물)가 있으면 일단 나아가기보다는 멈춰 서야 한다. 주변 상황이 어떤지를 살펴보고 나에게 그래도 힘이 남아 있다면 즉, 실력이 있고 가능성이 있으면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만약 나의 힘도 소진되었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대로 쉬어야 한다. 해결할 힘이 없을 때는 포기가 빨라야 한다. 내려놓지 못하고 해결하려고 하거나 쉬지 않고 에너지를 쓴다면 더 큰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쉬면서 에너지를 축적하는 쉼의 메커니즘에 익숙해지지 못할 경우 이른바 슬럼프라는 장기간 침체에 빠질 수 있다.


수천수. 쓰일 때를 기다려 시련을 참고 기다린다. 앞에 장애가 있지만 내가 에너지를 품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천(하늘)인 만큼 서두르거나 조바심을 낼 것이 없다. 잠시 쉬면서 때를 기다리면 된다. 쉬는 것은 더 큰 전진을 위한 힘을 축적하는 방법이다. 때가 아닐 뿐이다. 나에게 필요한 실력이 있는지, 나에게 힘이 남아 있는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안다.


택뢰수. 쉬면서 기운을 축적한다. 비유하자면 이런 풀이가 있다. 어두워질 때는 집으로 들어가 쉬면서 기운을 모아야 한다고 공자는 풀이한다. 집에서 휴식을 취해야 피로가 회복된다. 주역 학자인 이기동 교수는 변화무상한 때는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풀이한다. 수시처변이란 말이 있다. 그때그때 변하는 것을 따라 일을 처리하는 지혜를 의미한다. 핵심은 한발 물러서야 이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해가 질 때는 밖에 있지 말아야 하고, 쉬는 공간은 아무 걱정 없이 무장해제될 수 있는 집 같은 공간이어야 한다. 


수산건. 꽉 막혀 있는데 힘도 없을 때는 쉬어야 한다. 산이 안개에 포위된 상황과 같다. 해결할 힘도 없고 어려울 때는 역시 쉬어야 한다. 이때는 어려운 일보다 내 능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하며 주위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공자의 팁은 이렇다. 솔루션을 찾을 때는 기존의 내가 가던 길이나 한 가지 만을 고집하지 말라고 한다. 멍 때리는 것이 뇌의 디폴트 값이듯 에너지 소비를 중단하고 쉬는 것이 해법이다.


에필로그.

오랜 직장 생활과 사회생활. 언젠가부터 한계가 찾아왔다. 뭘 해도 잘 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뭘 해도 안되기 시작했다. 원하던 것은 이뤄지지 않았고, 인간관계로 인한 힘듦과 고통은 내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었다. 방황의 시간도 있었다. 고무줄이 끊어지기 직전 가장 팽팽할 때 잡았던 고무줄을 놨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의 기간을 가졌다. 쉬어야 될 타이밍을 예전에는 몰랐다. 그런데 쉬어보니 이제 알 것 같다. 나는 수천수와 택뢰수, 수산건의 상황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자리에 있었다. 뭔가 안되고 있다면 내 앞에 물이 있지 않은지, 그리고 나에게 남은 힘은 있는지, 해가 졌는데 나 혼자 밖에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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