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은 물건이나 작품, 사람들의 작업, 퍼포먼스 등에 점수를 매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뭔가를 평가하다는 뜻의 단어가 많이 떠오르지 않아서 챗GPT에게 물어봤습니다. 챗GPT의 프롬프트는 “평가라는 의미의 단어를 있는대로 모두 골라서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다양한 단어들을 제시했지만 대충 분류해보면 이렇습니다.
1. 가치중립적인 평가 행위
평가/판단/판별/검토/분석/측정/점검/검증/평정/심사/채점/진단/산출/계산/판가름하다
2.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의미를 둔 행위
등급을 매기다/순위를 정하다/좋고 나쁨을 따지다/성과를 평가하다/의미를 부여하다
3. 긍정적인 평가
칭찬/찬사/인정하다
4. 부정적인 평가
비판/비난/폄하/평가절하하다
우리는 대부분 평가를 받습니다. 시험을 치면 점수가 나옵니다. 영화, 드라마, TV 프로그램은 전문가들이나 시청자들이 평점을 매기거나 그걸 본 시청률로 간접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소비자들은 전문가들의 평가를 보고 와인을 살지, 프로그램을 볼지 결정하기도 합니다. 배민이나 쿠팡이츠에서 중요한 건 요리사나 가게 주인의 실력이나 음식 사진보다도 먹어본 사람들의 후기와 실제 배달된 음식 사진과 평점입니다.
그림도 그렇습니다. 갤러리를 운영하시는 분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내 그림을 관객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마라. 결국은 소비자가 평가하는 것이다. 갤러리는 그림에 값을 매기지만 그 가치는 소비자인 관객이 결정한다. 비싸다면 팔리지 않을 것이고,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면 선뜻 돈을 지불할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관객이 그 그림에 대해 금액을 지불한 만큼 만약 그림에 문제가 생긴다면 전자제품과 같은 AS를 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이 지나도 그림이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의 그림 품질에 대한 책임이 작가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작가는 그림에 대한 책임을 진다. 신선하고 일리가 있었습니다.
요즘 어디를 가나 주식이나 가상화폐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 변곡점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난 이후인 듯 합니다. 모두가 투자를 얘기하고, 지금 주식이나 가상화폐를 사지 않으면 바보가 된 듯 합니다. ‘FOMO(Fear Of Missing Out)’는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쉽지 않습니다. 특히 삼성전자 주식을 갖고 계신 분들의 박탈감은 더 큰 거 같습니다.
삼성전자의 겨울
삼성전자는 국민기업입니다. 과거 해외여행을 가서 삼성 마크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습니다. Korea는 몰라도 Samsung, Hyundai는 모르는 외국인들이 없던 시절입니다. 터키 여행을 갔는데, 벤츠 버스를 모는 기사의 휴대폰이 삼성이었습니다. 한달 월급과 그 당시 자신의 삼성 휴대폰 가격이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 삼성전자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주주들이 최근 6백만 명을 넘었습니다. 주변에서 삼성전자 주식 안 가지고 있는 분들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의 주식이 코스피 지수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 큽니다. 그런 삼성전자가 코스피를 무겁게 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에 계신 분들을 가끔 만날 일이 있습니다. 그분들도 삼성전자 주주들이죠. 대부분 물려 있었습니다. 비자발적 장기투자중인 직원들인 셈입니다. 제 지인들 중엔 5만원 대의 주식을 7만원 8만원대에 사서 들고 계신 분들도 종종 있습니다. 말을 못하고 있을 뿐이죠. 그런 삼성전자의 2024년 지금은 겨울입니다. 반도체는 사이클이 있습니다. 한 증권가의 애널리스트는 반도체의 겨울이 아니라 삼성전자의 겨울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같은 반도체 기업인데 SK하이닉스는 창사 이래 최고의 황금기를 지나고 있으니까 말이죠. 하이닉스 직원들도 고생을 했지만 선장을 잘만난 하이닉스호의 선원들은 올해 역대급 보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HBM 덕분입니다. 다만, HBM 같은 어려운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 삼성전자의 주가는 저렴한 것인가?
삼성전자에 대한 평가는 누가 할까요? 삼성전자의 주가는 소비자들의 평점입니다. 주주들이 인정하는 가치의 평균이죠. 삼성전자의 주식이 회사의 실적에 비해 고평가되었다고 하면 주주들은 주식을 내다팔 겁니다. 반대로 삼성전자의 미래가 밝다면, 사람들은 삼성전자의 주식을 사서 모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삼성전자의 주식은 왜 오르지 못하고 있을까요? 외국인들이 팔아서? 주식수가 많아서?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 때문에? 엔비디아 납품이 언제될지 몰라서? 5세대 HBM를 언제 양산하고, 불량품 비율인 수율이 언제 높아질지 몰라서?
삼성전자의 미래가 밝다면 사지 말라고 해도 사람들은 주식을 사서 모을 겁니다. 삼성전자 임원들이 덜컥 10조원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주식시장이 끝난 뒤에 '드라마틱'하게 발표하며 '주주 가치 제고'를 내걸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미지근합니다. 과거와는 다르다는 얘깁니다. 뉴스 생산 매체가 한정되어 있고,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적었던 시절에는 그게 먹혔습니다. 신문 기사를 보고 바로 다음날 반응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삼성전자와 투자자들의 정보 비대칭이 과거처럼 심하지 않다는 얘깁니다. 과거에는 내부에서만 알았을만한 얘기들도 이제는 어렵지 않게 주변에서 전해지는 걸 봅니다. 디지털 시대에 가장 무서운 것은 정보 비대칭의 해소와 빠른 확산입니다.
삼성전자는 억울하다고 합니다. 회사에 대한 평가가 너무 냉혹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손해보고 싶어하는 투자자들은 없습니다. 이제 국내 기업에 투자하는게 애국이라는 말을 하기에 우리들의 주머니 사정은 너무도 어려워졌습니다. 어려워진 살림에, 줄어드는 월급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옮겨가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본능입니다.
경쟁상대 없는 극장표, 치킨값 논쟁의 본질
얼마전 영화배우와 영화감독이 극장표를 놓고 발언을 한 것이 논란이 됐습니다. '비싸다' '싸다' 얘깁니다. 사실 필요없는 논쟁입니다. 비싸다면 사람들이 극장을 찾지 않을 것이고, 그만큼의 기회비용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극장을 찾을 겁니다. 다른 물건, 서비스 가격과 비교해보겠죠. 마찬가지로 교촌치킨을 놓고도 말들이 많습니다. 치킨 한마리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거죠. 배달비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경쟁자가 없는 독과점 상태에선 사람들이 울며겨자먹기로 계속 사먹지만, 그걸 깨뜨린 누군가가 나오면 함께 맞춘 듯한 가격은 무조건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시장이 바로 커피 시장입니다. 한때 5~6천 원 대의 커피를 매일 마셨지만, 지금 저희 회사 앞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커피의 평균 가격은 3천 원 안팎입니다. 몇 개 프랜차이즈의 독과점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가 모든 걸 만들어낼 때 사람들은 삼성이 만든 아파트에 살며, 삼성 전화기로 전화를 하고, 삼성 제품을 보며, 삼성 제품으로 음식을 만들고, 삼성 제품으로 세탁을 하고, 삼성이 1등인 스포츠 경기를 야구, 농구, 배구, 축구 전 종목에 걸쳐서 봤고, 삼성 자동차를 탈 때도 있었으며,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망하지 않는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말하는 사람들이 2024년 지금 늘고 있습니다. 삼성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그걸 해낼 때 그렇습니다. 언젠가 SK하이닉스도 자신들의 치킨 가격을 내려야 할 시기가 올 겁니다. 그건 바로 삼성전자가 지금의 SK하이닉스처럼 '맛있는 치킨'을 합리적인 가격에 시장에 내놓을 때입니다.
지금의 삼성전자는 중수감이자 택수곤
주역의 29번째 괘는 중수감, 47번째 괘는 택수곤입니다.
먼저 중수감.
물 위에 물. 물이 두개 겹쳤습니다. 주역에서 물(☵)은 좀 안좋은 쪽으로 풀이됩니다. 이전투구나 어려운 양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 물이 두개입니다. 늪으로 풀이됩니다. 거듭되는 위험에는 자기 성찰의 시기입니다. 속이 보이지 않는 암흑과 같은 물이 마음을 다 잡아야 합니다. 다만, 주의할 것은 하나의 위험이 지나갔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입니다. 방심하다가 다음 위험이 닥칠 경우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택수곤.
연못 밑에 물이 있습니다. 연못(☱)에서 물(☵)이 빠진 셈입니다. 어떤 상황일까요? 네 결핍입니다. 문제는 연못에 물이 빠진 걸 모를 때입니다.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자칫 움직이다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어려운 상황을 참고 견디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려울 때는 움직일수록 더 힘들어집니다.
지금의 삼성전자가 그렇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십여년 전 오판의 결과입니다. 그 후유증이 지금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움직이려고 합니다. 시장에 내는 메시지는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고, 말그대로 스텝은 더 꼬이고 있습니다.
평가받지 않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평가는 나를 도태시키지 않는 백신입니다. 때로는 평점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지만, 최고점과 최하점을 제외하고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평점을 줬다면 일단 많이 틀리지는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