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가방끈이 대학원으로 이어지기까지
회사 생활 20년차였다. 적어도 10년은 쉬웠고 뭐든지 잘됐다. 그랬던 회사 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쯤 전이다.
회사에서 자신의 의사를 밝혀야 할 시기는 해마다 찾아온다. 첫번째가 인사철이다. 인사 시즌이 되면 부서장들은 소위 소원수리를 받기 시작한다. 인사희망원. 대학 입학 이후 잊혀졌던 희망 근무 부서를 써내야 할 시즌이다.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말이 1, 2지망이지 사실상 대부분 1지망에서 다음 부서가 결정된다. 왜? 사람들이 몰리는 부서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랬다. 소위 잘나가는 부서는 1지망 희망자들이 넘쳐난다. 잘 나가는 팀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그 회사의 얼굴인 부서도 되고, 주로 앞을 이끌어가는 부서들이다. 말하자면 몸은 힘들어도 주목받는 일을 하는 부서다. 물론 이것도 과거의 이야기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나름이어서 대학의 인기있는 학과나 전문의 시험에서 인기있는 과를 보면 20년 전과 10년 전이 다르고 지금이 또 다르다. 그만큼 빨리 변한다. 반면, 기피 부서는 어디를 가나 있고, 회사마다 하는 일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기 싫어하는 나름의 이유들도 비슷하다. 주로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데 남을 위해 희생하고 도와줘야 되고...
그런데 난 안됐다. 항상 기타 부서에 배정이 됐고 초년병 시절에는 더욱 그랬다. 희안하게 인생의 계획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싶으면 바쁜 부서에 가게 되고 정말 한가해서 정말 가고 싶은 부서에 가고 싶을 때엔 예상치도 못했던 부서로 배정이 됐다. 부서 T/O가 정해져 있는 까닭에 누군가가 그 자리를 가고 싶으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30대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12월에 가장 바쁜 몇 해도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말할 것도 없고 12월31일 자정과 새해 보신각 종소리를 일을 하다가 듣게 되기도 했다. 새해 동이 틀 무렵 선배들과 해장국 집에서 연말연시를 기념하는 소주를 마신 뒤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직장 생활에서는 다양한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보너스라는 이름의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회사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주주 이익을 대변하고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주식회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기 때문이다. 돈이 다는 아니지만 직장 생활에서 성과와 보상은 (모두가 겉으로 드러내놓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근무 의욕과 사기, 일에 대한 만족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
원하는 부서에 갈 수 있는 것이 그나마 최고의 보상인데, 그렇지 못하다면 사원 연수나 교육, 해외 근무 등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센티브다. 초년병 시절에는 선배들의 눈치를 보느라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대충 지원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고 느낀 시점은 10년차 이후였다. 지원했던 선배들이 대충 다 다녀오고 지원자들의 연차가 위로 1~2년 정도로 내려왔을 때쯤이었다. 간혹 후배들도 지원해서 다녀오기 시작했다.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고 나름대로 부지런히 지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진했다. 그냥 열심히 일한만큼 이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 됐다. 지원서가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해마다 바꿔써보기도 하고 매번 열심히 업데이트를 했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한 때는 회사 외부 지원이 오랫동안 끊기기도 했고, 막상 갈 수 있을 때가 왔다고 생각하자 선배 지원자들이 몰렸다. 기회가 왔다고 생각할 때는 가장 바쁜 부서에 배정이 되서 아예 지원서를 낼 수조차 없었다.
어차피 여러번에 걸친 선발 기회를 모두 통과해야 하는 만큼 지원할 당시 동료들에게 잘 보여야 가능성이 높아진다. 말 많고 핑계대는 후배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한 후배에게 인센티브의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렇게 살려고 했고, 그렇게 일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선배들의 평가는 내 생각을 정확히 빗나갔다. 평소에 가장 믿고 따랐던 선배들이 뒤에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그 날은 일생일대 가장 충격을 받은 날이었다. 선배들의 지시를 따르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될 때'는 할 말은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난 시키는 명령을 소리없이 잘 따르지 않는 소위 피곤한 스타일의 후배로 찍혀있었다.
막상 듣지 말아야 할 얘기를 우연히 전해듣고 내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른 동료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나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회사에서 사람에 대한 기대는 조금씩 낮아져갔다. 이후 10년 동안 해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지원했던 다양한 인센티브에 대한 기대도 완전히 사라졌다. 아쉽게 선발되지 않았다며 다음 기회에 다시 도전해달라는 메일과 휴대전화 메시지에 익숙해졌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했지만 준비를 하고 있어도 오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사람은 그렇게 늙고 철이 들어간다. 쉽게 잘 되었던 것은 다만 운이 좋았을 뿐이다. 실력만큼 운도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 계기는 이후에 찾아왔다. 개인적인 일, 집안 문제, 건강 등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게로 느껴졌고, 그 결과가 '번아웃'인걸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잠시 일을 쉬게 됐다. 논문을 접하고 본격적으로 읽게 된 것 그즈음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