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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라멜 Aug 23. 2023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스타일(style) 살리는 법 - E : expressive

"홍대 어떻게 가요?”

“뉴진스의 하입보이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렇게 되는건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설명이 길어지면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당연히 나도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요즘 대화를 알아듣는 것에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카톡에서… MZ세대(정확히 M세대의 경계에 있는) 동생들이 포함된 단톡방에서 내가 대화를 이해하는 비율은 많아야 절반쯤 된다. 하물며 잘파(a 세대 + z 세대) 세대는 말할 것도 없다. 방송기자를 하면서 중학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쉬운 말을 방송에서 써야 한다는걸 평생 지침으로 알았는데 이제 시대가 또 바꼈다. 이제 난 단톡방의 말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대화가 한참 지난 뒤에 "그런데... 위에 무슨 의미야?" 이렇게 표현하기도 그렇다. 꼰대 소리 듣기 딱이다. 과거에도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은 일화들이 많다.


동서고금을 통해 말투로 소위 어른들이 시비를 걸었던 적이 있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군기를 제대로 잡았다. 먼저 중국.



scene 1. 명청(明淸) 시대

명 나라(1368~1644) = 고려말~조선 인조

청 나라(1616~1912) = 조선 광해군~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중국 관련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인 외교관 출신의 백범흠 한중일협력사무국(TCS) 사무차장이 이런 얘기를 했다. 화려한 유산을 많이 남긴 중국의 명청시대에 역설적으로 글(문장)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과거 급제를 위한 모범 답안이 옛글인 고문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문장이 바로 팔고문이다.


팔고문(八股文). 요즘으로 치면 국가 공무원을 뽑는 과거에 써야되는 문장을 나라에서 정한다. 형식과 규칙은 예외없다. "유가 사상을 잘 드러내야하고, 사서(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사상인 의리(義理)가 글에 나타나야 한다." 여기까지는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면 그나마 괜찮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글을 쓰는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은 드러나서는 안된다." 헉. 글의 형식인 문체를 나라에서 통제하고, 일정한 형식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생각을 통제하겠다는 의미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는 상공업이 발달했고, 전통적인 유가 경전에 반하는 사상이 등장하자 위협을 느낀 명청 왕조가 지식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왕카이푸, 2015. 팔고문이란 무엇인가). 

생각은 글을 통해 드러나고, 자유로운 글은 자유로운 사상으로 이어져 결국 통치 철학이 무너질 것을 우려한 결과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수백 년 전 옛날 얘기다. 


scene 2. 정조 시대(1776~1800) 

반정(反正)은 뒤집어 바로잡는다는 말이다. 우리 역사에서 고려 시대가 조선 시대가 된 것은 왕조가 바뀐 것이다. 임금의 성씨가 왕 씨에서 이 씨로 바뀌고 새로운 나라가 탄생한다는 점에서 역성 혁명이다. 하지만 왕조는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의 왕을 폐위시키고 새로운 왕을 세우는 것은 반정이라고 한다. 뒤집어 바로잡는 것을 반정이라고 하니까 결국 반정이라고 말하는 쪽은 승자 즉, 뒤집은 쪽이다. 역사는 승자의 몫이다. 뒤집는 것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실패한 쿠데타가 되고 반정을 도모한 쪽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테니 말이다.


쿠데타를 반정이라고 기록한 것은 결국 승자의 역사인데 조선시대만 놓고봐도 반정이 2차례 등장한다. 중종반정과 인조반정. 반정의 대상이 되었던 임금은 두 명의 군(君)이었다. 역사는 그 두 명의 왕을 연산군과 광해군으로 기록했다. 반정에 성공한 이들은 새로운 왕을 옹립하고 함께한 동료들을 공신으로 정국을 장악했다. 


그런데, 역사 속에는 또다른 반정도 있다.

지금부터는 그 시대에 유행하는 문체를 가지고 왕이 직접 나섰던 얘기다. 200년도 훨씬 전인 18세기 후반 글쓰기 문제로 당시 임금인 정조가 문제를 삼기 시작했다. 1791년 정조는 과거 시험 응시작의 문체가 당시 유행하던 소설체가 만연하는 것을 바로 잡기 원했다. 


정조가 삼국지를 싫어했던 까닭은...

조선왕조실록의 정조23년 5월5일에 이런 얘기가 있다.

정조는 "당시의 폐단이 동서남북이나 이쪽저쪽 할 것 없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괴이한 문체나 <패관잡기>를 정말 열심히들 읽고 있다"고 탄식한다. 사실 탄식 수준이 아니다. 정조는 "말이 여기에 미치니 춥지도 않은데 몸이 떨린다"(조선왕조실록)고 했다. 제대로 화났다는 말이다더 재미있는 정조의 얘기. “나는 본래 잡된 책을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삼국지> 등과 같은 책도 한 번도 들여다 본 적이 없다.”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의 시기 문집과 소설 등 해외에서 다양한 책과 글이 조선에 유입됐고 양반층에게도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이 없다.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다.

박지원과 이옥. 한 사람은 아예 과거에 나서지 않았고, 한 사람은 줄기차게 이른바 고문의 형식을 따르지 않았다. 정조에게 제대로 혼난 박지원의 책은 <열하일기>다. 성균관 유생으로 머물며 대과를 준비했던 이옥은 끊임없이 소설체의 문장을 써서 결국 과거 시험 응시를 막았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문체를 고집했던 이옥도 대단하지만, 너가 아무리 똑똑해도 글 고치기 전까지 너는 안돼라고 제대로 군기 잡았던 정조도 대단하다. 


정조의 말투 군기잡기에 대항했던 글쓰기 고수들...

박지원은 박제가에게 이옥이 처한 처지를 들어 “순수하고 고풍스러운 풍습을 만회하는 동시에 크고 고아한 글쓰기 풍토를 진작할 수 있는 일대의 기회”라며 임금에게 백의종군하자는 글을 써서 올릴 것을 권유(사실상 지시)한다.


박제가의 글이 또한 지금 읽어도 명문이다(from 비옥희음송인).

“소금이 짜지 않고 매실이 시지 않고 겨자가 맵지 않고 찻잎이 쓰지 않음을 책망한다면 정당하지만 왜 기장에게 좁쌀 같지 못하느냐고 하거나, 국과 포에게 왜 제사상 앞으로 가지 않느냐고 하는 것은 실정을 모르고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이니 천하의 맛있는 음식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썼다. 조선시대 말기의 문체 어벤저스의 글은 오늘날 읽어봐도 명문이다. 스타일 제대로 살리는 법이 넘친다. 



글 쓰는 방식에도 유행이 있다. 그 당시 만의 문체가 있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단어도 등장한다. 조선시대 문체반정을 보면서 요즘 세대들의 말글 문화가 그 시절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모바일, SNS에 길들여진 세대들은 쓰기와 읽기에 최적화된 그들만의 말과 글을 쓴다. 긴 단어는 첫글자만을 따서 줄여쓰고,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를 온전히 갖추지 않는다. 그래도 의미는 전달된다. 정작 이걸 보는 부모나 어른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학교나 언론이 우리말 파괴 현상을 꼬집으며 비문을 쓰지 말고 아름다운 한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해온지가 오래됐지만 디지털과 모바일 읽기와 쓰기에 최적화된 언어 문화는 그렇게 자리잡았고 지금도 변해가고 있다. 꼰대들이 문제삼을 일은 아닌지 오래다. 유행을 따르는 말과 글이 표현력이 뛰어날까(expressive), 개성을 강조할 때 표현이 더욱 풍부해질까.


에필로그.

최근 수능의 난이도가 문제가 됐다. 학교에서 정규 교과과정을 통해 풀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소위 ‘킬러 문항’이 수능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유가 무엇이든 대상은 다르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가 시험(과거는 고시요, 수능은 입시니 다르기는 하다)의 내용(문체는 답을 쓰는 사람을 문제 삼는 것이고, 문제의 난이도는 문제를 내는 사람을 문제 삼는 것이지만 결론적으로 바람직한 모범 답안의 예시를 들며 잘못된 예를 콕 집었다는 점에서는 같다)을 지적했다는 점은 비슷하다. 모범 답안과 정답 맞추기 속에 스타일과 개성(expressive)은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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