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은 안 좋은 상태로 두는 것이 아니라 좋게 만들어야 한다.
기분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대상이나 환경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감정의 상태이다. 기분은 그때그때 대상이나 환경에 따라 달라지므로 내 주관적 의지에 의해 바꿀 수 없다. '기분이 좋아야 해!'라고 의지적으로 생각한다고 하여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맛난 음식을 먹으면, 멋진 풍경을 보면, 달콤한 라일락 향을 맡으면 기분은 시나브로(나도 모르게 조금씩) 좋아진다. 반대로 싫은 사람과 있으면, 음식이 맛없으면, 칙칙한 사무실에 계속 있으면, 썩은 냄새를 맡으면 기분은 나도 모르게 안 좋아질 것이다.
요 며칠 동안 기분이 좋다.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남산 산책을 하고 오는 것도 좋았고, 퇴근하여 집에 걸어오면서 지인들을 떠올려보고 기분 내키면 전화를 하여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과 무얼 먹을지 상의하여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 먹는 것도 좋았고, 퇴근길에 정육점에 들러 돼지고기를 사다가 카레를 끓여 한 그릇씩 먹는 것도 좋았다. 기분이 좋을 때는 무얼 하더라도 나쁘지 않고, 업무 때문에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크게 불만이 없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 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고, 전화를 받아 즐겁게 대화를 나누면 더 좋다.
그렇지만 마냥 기분이 좋을 수는 없는 법! 한동안 기분이 축 처져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뭘 해도 그리 흥이 나지 않고 누구를 만나거나 연락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점심 때도 혼자서 코뿔소처럼 한참을 걷고 돌아오는 길에 김밥을 한 줄 사다가 우적우적 먹는다. 꼭 들어가야 하는 회의도 가기가 싫어지고, 일할 때에도 별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억지로 대한다. 집에 돌아와서도 가족들과 얼굴 마주하는 것이 반갑지 않고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대충 저녁을 때우고 유튜브 영상을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고 있지만, 그걸 보다가 잘 시간이 되면 내가 왜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자책을 하고 우울해진다.
내 감정은 제 멋대로 튀어 올랐다가 푹 가라앉고 종 잡을 수가 없다. 난 즐겁게 지내고 싶지만 내 감정이 축 쳐져 있으면 무얼 하더라도 즐거운 마음이 되지 못한다. 반대로 기분이 업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뭘 해도 즐겁고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다. 난 늘 평온한 마음이길 바라지만, 내 마음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내 마음은 2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나의 생각 혹은 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감정이다. 내 생각이나 의지는 이성적 판단에 따른다. 좋고 싫음이 중요하지 않고, 옳고 그름이 중요하다. 그러나 나의 감정은 감성적 기분에 따른다.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고 좋고 싫음이 중요하다. 사람은 이성적 동물일까, 감정적 동물일까? 이성을 우선시할 것 같지만, 철저히 감정에 따른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아 가석방을 보류하는 경우가 많고, 배가 불러 기분이 좋으면 가석방 허가결정이 많이 난다고 한다. 같은 사안을 대하더라도 기분이 좋을 때와 기분이 좋지 않을 때의 결정은 전혀 달라진다. 상사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는 경우에 결재받기 어려운 사안은 상사가 기분이 좋을 때 받으러 가는 것은 국룰이다. 소개팅을 하러 가는 경우에도 자신의 기분이 좋으면 상대가 좀 더 멋져 보일 것이다.
내 생각이나 의지와 다르게 내 감정, 그러니까 기분에 따라 사안이 달라 보이고,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기분은 내 의지대로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내가 원하는 대상, 환경, 내음 등을 만나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네 일상은 대체로 크게 바뀌는 것 없이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도 기분 좋은 상태로 지내면 그만큼 즐거운 삶이 될 수 있고, 반대로 기분이 안 좋은 상태가 지속이 되면 우울하고 불행한 삶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즐거운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서든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
대상이나 환경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 것이니, 가급적 기분이 좋아지는 대상을 만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환경에 자신을 두는 것이 좋다. 물론 원치 않더라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을 직장에서 계속 만나야 하기도 하고, 월급에 묶여 있어 기분이 안 좋아지는 사무실에서 하루종일 지내야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내 기분을 나빠진 상태로 계속 두면 안 되므로, 자기가 좋아하는 환경, 상황에 의지적으로 자신을 노출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었던 오늘, 난 안 좋아진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점심에 탁구를 치고 회사 근처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땀나도록 탁구를 치고 또 빨리 걸으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머리가 맑아진다.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보며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고, 미소 지어지는 쇼츠 영상을 몇 편 보았다. 다시 기분이가 좋아져서 이렇게 브런치에 올릴 글을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