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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독한 기타맨 Aug 27. 2019

04.결국 한 번뿐인 삶이다.

퇴사를 결심하고, 아내의 허락을 얻고, 결국 사표를 제출하고, 퇴사 날짜가 확정됐다. 한줄로 정리되는 이 일은 사실 꽤 힘든 과정이었다. 긴 시간의 고민과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이런 과정들이 두려워 퇴사를 미루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사표가 수리되고 이후의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회사도 나도 뭉기적거릴 이유가 없었다. 딱 한달 간의 정리 기간이 주어졌다.


시원할 줄 알았다. 홀가분하고 가슴이 뻥 뚫릴줄 알았다. 잠도 잘오고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 나올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그냥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퇴사를 고민하는 많은 직장인들도 같은 예상을 할 것이다. 시원하고 통쾌할 거라고.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 가는 기분일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생각만큼 통쾌하지 않았고, 홀가분하지도 않았으며 여전히 잠은 잘 오지 않았다. 반대로 뭔가 잘못 먹은 것처럼 속은 더부룩했고, 덜 닦은 엉덩이처럼 찜찜했고, 왠지 모를 불안감이 찌꺼기처럼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착착 진행되어가는 퇴사의 과정은 '나는 이 회사에서 결국 이런 존재밖에 되지 않았던가?' 라는 자괴감으로 돌아왔다.


'애냐? 아직 정신 못차리고, 갈데도 없으면서 그 좋은 회사를 왜 관두냐? 미친놈아.' 라는 친한 형의 과격한 격려에서부터 '무얼하든 잘할거야, 잘되길 바란다'는 진심어린, 또는 같은 말이라도 왠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격려까지, 주변에 퇴사를 알리자 여러 형태의 격려의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힘이 되기도 했지만 부담 또한 쌓이고 있었다. 그 부담감은 '잘못한 건 아닐까? 정말 잘한 일일까?' 라는 물음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해보고 싶은 일을 해봤으니 지금 죽어도 아쉽지는 않겠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있어서 자전거 세계여행이 그중 하나이다. 몇년 전 우연히 접한 자전거 여행자의 블로그로 인해 자전거 세계 여행은 나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나 같은 약골에, 겁 많고, 깔끔떠는 성격의 소유자가 힘들고, 고생스럽고, 위험하기까지한 자전거 여행을 할리는 만무하다. 해보고 싶지만 절대 하지는 못할 일인 거다. 그저 대단한 용기와 도전 의지를 가진 멋진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읽으며 대리 만족을 느낄뿐. 


그렇게 몇개의 자전거 여행자들의 블로그를 정기 구독중이었다. 그 중 한 여행자가 드디어 오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블로그에 올렸다. 무던히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오랜 꿈이었던 자전거 세계 여행에 도전했던 그는 막 귀국행 비행기에 오른 참이었다. 한참을 잘 가던 비행기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추락하듯 급하강하기에 이른다. 승객들은 모두 겁에 질리고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고 누군가는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겁에 질려 이대로 죽는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그에게 든 생각은 의외로 '해보고 싶은 일을 해봤으니 지금 죽어도 아쉽지는 않겠다' 였다고 한다. (물론 그는 집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


만약 내가 지금 당장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가족에 대한 걱정, 안타까움을 제외하고서 오로지 나에 대한, 나의 인생에 대해서만 돌아보았을때 '나는 하고 싶은 일들 해봤으니 그것으로 인한 아쉬움은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난 그 반대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들, 해보고 싶은 일들,  아직 못해본 일들때문에 이대로는 죽을 수 없다며 울부짖었을 것이다. 하고 싶고, 해보고 싶은 일을 하나도 못했본 건 아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하며 찔끔찔끔 겉핧기만 해본 것으로는 제대로 해보았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퇴사에의 결정을 죽음의 위기와 비교하는 건 아무래도 과한 비약이다. 하지만 한 번뿐인 인생의 대부분을 원하지 않은 직장생활을 전전하다 노년을 맞이한다면 '나는 젊은 시절 뭘 했던가?' 라는 회의가 들지 않을까? 눈을 감는 순간에 아쉽지는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가장 건강하고 활동적인 3,40대를 직장생활로 써버린 것을 더 안타까워 하진 않을까? (그 시간을 낭비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렇게 이십여년을 직장생활을 해내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리라.) 그래, 당장은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그 어떤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분명 세월이 흐른 어느날에는 '그때 그 선택이 나쁘지 않았어' 라고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You Only Live Once


'YOLO' 열풍이 지난지 오래지만, 다시 한번 YOLO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차피 한번뿐인 인생이다. 결국은 한 번만 주어지는 삶인 것이다. 그렇게 힘든 결정의 시간을 거쳐, 어렵게 내어 놓은 퇴사의 결정을 '정말 잘한 일인가?, 잘못한 일은 아닐까?' 라는 되새김질로 힘들어지는 마음을 이렇게 다잡았다. '현대판 노예라는 직장인으로 평생 살고 싶지는 않자나, 그렇게 살다가 늙어버리고 싶진 않자나, 이십년 넘게 했으니 이제 그만하면 됐어, 충분해' 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불교의 윤회사상에서 말하듯 다시 환생한다해도 이번생을 다시 살 수도, 기억할 수도 없다. 그래 결국 한 번뿐인 소중한 나의 삶이다.     


그렇게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퇴사를 맞이했다. 그리고 생각만 하고 있던 제주도 한달 살기를 실행하려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 만큼이나 걱정하던 아내의 카톡 프로필 메세지는 이렇게 바뀌어져 있었다. 

'인생 별거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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